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
“의자에 앉은 권력, 소파에 기대는 취향!”
― 바로크의 무대에서 로코코의 살롱으로
역사는 왕의 연대기로만 기록되지 않는다. 역사는 의자의 높이, 소파의 곡선, 테이블의 위치 같은 사소한 선택들 속에도 숨어 있다.
인간이 어디에 어떻게 앉았는가를 보면, 그 사회가 인간을 어떤 존재로 상상했는지가 드러난다. 말하자면 가구는 시대가 인간에게 건네는 무언의 지시문이다.
17세기 바로크와 18세기 로코코의 차이는 바로 이 지시문의 어조 변화에 있다.
한쪽은 명령형이고, 다른 한쪽은 권유형이다. 한쪽은 “똑바로 앉으라” 말하고, 다른 한쪽은 “편하게 기대도 된다”라고 속삭인다.
바로크: 가구가 사람을 바라보던 시대

바로크 가구 앞에 서면, 먼저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이 가구는 나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왕좌형 의자의 높은 등받이는 척추를 지지하기보다 신분을 지지한다. 앉는 순간 사용자는 ‘편안한 개인’이 아니라 ‘권력을 전시하는 존재’가 된다. 말하자면 바로크 의자는 인체공학이 아니라 정치공학의 산물이다. 허리가 아파도 상관없다. 허리가 아프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던 시대였다.
캐비닛은 수납 가구이지만, 그 안에는 속옷보다 세계가 들어 있다. 이국의 목재, 상아, 보석으로 빼곡한 서랍은 “나는 이 세계를 수집할 수 있다”라는 선언이다. 오늘날로 치면, 글로벌 컬렉션을 자랑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가깝다. 단, 팔로워는 없고, 권위만 있다.

샹들리에와 촛대는 빛을 밝히기보다는 빛을 지배한다. 촛불은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마저 계산되어 금박과 거울 위에서 장엄한 명암을 연출한다.
바로크에서 빛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신과 국가를 대리하는 조명 감독이다. 바로크 실내는 하나의 거대한 무대다. 인간은 그 무대 위에서 절대 권력을 위한 배우로 살아간다. 즉흥 연기는 허용되지 않는다. 대사 또한 이미 절대 권력에 의해 정해져 있다.

로코코: 가구가 사람에게 말을 거는 순간

18세기에 들어서면, 가구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다.이제 가구는 인간을 내려다보지 않는다. 대신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건다. 파퇴유 앙 카브리올레(fauteuil en cabriolet) 의자는 정면을 강요하지 않는다. 몸을 약간 틀어도, 다리를 꼬아도, 옆 사람에게 고개를 돌려도 괜찮다. 이는 단순한 곡선의 문제가 아니다. 대화가 중심이 되는 사회가 도래했음을 알려주는 구조적 증거다.
베르제르(fauteuil en bergère) 의자는 안락함을 숨기지 않는다. 푹신한 패딩과 감싸는 구조는 “편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한다. 바로크라면 죄책감이었을 자세가, 로코코에서는 하나의 미덕이 된다. 편안함이 사치가 된 순간이다.

듀셰스 브리제(duchesse brisée), 즉 분절형 리클라이너는 로코코의 정신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 가구는 “이렇게 앉아야 한다”는 규칙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기대도 되고, 눕다시피 해도 되고, 대화를 나누다 잠시 멍해져도 된다. 바로크가 훈육된 신체의 시대였다면, 로코코는 허용된 나른함의 시대다. 물론, 아주 우아한 나른함이다.

듀셰스 브리제(duchesse brisée)은 분절 구조 덕분에 고정 배치가 아니라 상황 대응형 배치 가능해 살롱의 벽면을 따라 두어 동선을 막지 않으면서 체류를 생성하며, 중앙을 점유하지 않고 주변부에서 공간의 리듬을 늦추는 효과를 가졌다.
듀셰스 브리제(duchesse brisée)에 앉으면 낮은 좌면과 부분적 등받이로 시선은 낮고 수평적이어서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교를 관찰하되, 상호 응시를 강요하지 않아, ‘보되 개입하지 않는’ 시선을 설계한다.
살롱의 발명: 권력 대신 관계가 중심

로코코 가구는 ‘살롱’이라는 공간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살롱은 공식 회의실이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적인 공간도 아니다. 살롱은 사적인 취향이 공적 교양으로 변환되는 중간지대다.
카나페(canapé)는 한 사람의 중심 자리를 없앤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동시에 누구도 주인공이 아닐 수 있다. 카나페 (canapé)는 로코코 궁정 가구 가운데 관계의 밀도를 설계하는 장치로서 핵심적인 소파이다. 단순한 다인용 소파가 아니라, 살롱의 프로그램·동선·시선을 조직하여 사교의 범위와 속도를 조절하는 기능이다.
즉 카나페(canapé)는 무겁고 길이가 길어 고정 배치가 기본이라, 벽면 또는 공간 가장자리에 두어 중앙 동선 확보하며, 사람들의 이동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관계의 정착 지점을 만들어내는 지점이었다.

카나페는 왕좌처럼 권력을 단독으로 집중시키지 않는다. 동시에, 개인 좌석처럼 권력을 분산시키지도 않는다. 이처럼 로코코 살롱에서 카나페는 ‘권력이 합의의 형태로 나타나는 순간’을 연출한다. 누가 말하고 누가 듣는지가 계속 바뀌며, 권력은 한 사람의 자세가 아니라 집단의 배치 속에서 작동하던 시대가 바로 로코코 시대의 본질이다.
게리동 (guéridon) 같은 작은 테이블은 대화의 흐름에 따라 공간을 옮겨 다닌다. 로코코 시대 살롱 공간은 고정되지 않고, 관계에 따라 재편된다.

게리동(guéridon)은 낮은 높이와 작은 면적으로 인해 살롱 안에서 시선 차단 거의 없어 사교의 장에 무척 어울렸다. 물건을 올려놓아도 사람의 얼굴·몸을 가리지 않아, 사교의 시각적 연속성 유지할 수 있는 장치이었다.
게리동은 바로크시대 거대한 왕좌처럼 권력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이 작동하는 조건을 준비한다.
로코코 살롱에서 권력은 대화·관찰·기록·휴식이 끊이지 않고 이어질 때,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게리동은 이 연속성을 보장하는 보이지 않는 로코코 시대 살롱의 중요한 인프라이었다.
보뇌르 뒤 주르 (bonheur du jour)를 직역하면 ‘하루의 작은 기쁨’이다.
이 소형 책상은 로코코 시대 변화의 상징이다.
바로크의 대형 집무 책상이 사라지고, 서신과 독서, 사적인 기록을 위한 작은 가구가 등장한다. 드디어 국가의 문서 대신, 감정과 취향의 문서가 기록되기 시작한다.

보뇌르 뒤 주르 (bonheur du jour)는 대형 서재 책상처럼 장시간 몰입을 요구하지 않으며, 짧고 반복적인 사용을 전제로 한다.
이 로코코 시대 책상은 살롱이나 방 한가운데가 아니라 벽면·창가·코너에 배치되어 사용자는 서서 혹은 짧게 앉아 빠르게 접근과 이탈을 할 수 있어 동선을 멈추게 하지 않고 동선의 순환을 방해하지 않는다.
상부 캐비닛은 작업 영역을 시각적으로 프레이밍 또한 아름답다. 그리고 펼쳐지는 테이블에서 무언가를 쓰더라도, 다른 이의 시선에서는 무엇을 쓰는지 명확히 보이지 않아 부분적 은폐성과 사용 중 가시성이 서로 균형을 잡으며 로코코 시대 살롱의 필수 아이템이 된다.
로코코 살롱에서 권력은 대화와 사교뿐 아니라 메모, 편지, 목록 같은 사소한 행위를 통해 축적되었다. 보뇌르 뒤 주르는 이 저강도 행위들을 합법화·가시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살롱은 끝나지 않는다 — 연결의 공간으로서 로코코

로코코 살롱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 작동 방식은 사라지지 않았다.그곳에서 발명된 것은 특정한 장식 양식이 아니라, 사람이 공간 속에서 관계를 맺는 새로운 태도였기 때문이다. 로코코 살롱에서 사람들은 엄숙한 침묵 대신 말을 건넸고, 중심 대신 주변을 선택했으며, 목적 대신 체류를 허락했다. 의자는 더이상 신분을 증명하지 않았고, 테이블은 명령을 내리지 않았으며, 빛은 권위를 강조하기보다 얼굴을 고르게 비췄다. 공간은 사람을 통제하지 않고, 머물게 했다.
이런 감각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카페의 소파, 거실의 라운지 체어, 공동 작업 공간의 유연한 배치 속에서 우리는 로코코 살롱의 잔향을 발견한다. 누군가의 말에 몸을 기울이고, 잠시 집중했다가 흐트러지고, 대화와 침묵 사이를 오간다. 이는 바로크적 질서가 아니라, 로코코적 관계성에 가깝다.
가구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바로크의 가구가 “너는 어디에 속하는가”를 물었다면,로코코의 가구는 “너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오늘날의 공간 역시 우리에게 특정한 몸짓을 요구한다.똑바로 앉게 하는 회의실, 자유롭게 기대게 하는 라운지, 빠른 회전을 요구하는 카페 테이블 등의 모든 것은 현대판 미학적 선택이자 사회적 선언이다.
로코코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공간이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수용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살롱은 권력의 종착지가 아니라, 관계의 실험실이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로크에서 로코코로의 이동은 종말이 아니라 방향 전환이었다. 권력의 무대에서 취향의 살롱으로, 명령의 공간에서 대화의 공간으로, 고정된 중심에서 유동하는 관계로, 이 흐름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우리가 어떤 의자를 고르고, 어떤 공간에 머무르며, 누구와 어떤 거리를 유지하는지는 여전히 미학적이면서 정치적인 선택이다. 그러므로 로코코 살롱은 과거 속에 닫힌 방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다른 이름으로 열려 있다.

태양왕 루이 XIV 같은 연주자 중심의 일방적 통행 장소인 공연장 객석에서 벗어나, 소수의 친밀한 이들이 만나 하우스 콘서트에서 상호 친밀함의 밀도를 끌어 올리는 클래식 음악 선율의 한 가운데에서,조금 더 편안한 의자에서,조금 더 느슨하고 나른한 대화 속에서,그리고 우리가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방식 속에서, 로코코는 그렇게, 지금도 우리 곁에 앉아 그 시대를 들려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