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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의 소소한 이야기] 엄마에 대한 추억

K-Classic News 이현숙 

 

 


엄마가 돌아가신지도  어느덧 13년이 되어간다. 요즘 엄마의 기일이 되어가 면서 엄마가 문득 생각이 자주 난다. 나도 이렇게 엄마가 눈에 선한데 혼자 사시는 우리 아버지는 오죽하실까? 엄마가 떠나고 지난 13년 내 세월 동안.


혼자 지내시는 아버지는 마치 애인 없는 젊은이들이 너구리가 시리다고 하는 것처럼 홀로 그 외로움을 참으시면서 굳건하게 버텨오셨다. 나 역시 아버지가 혼자 계시는 세월이 얼마나 길고 외로우셨을까를 생각하면서 오늘도 아침부터 아버지께 문안 인사를 올린다. 물론 전화를 하면 이틀도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다시 나에게 전화를 하신다. 어떻게 아버지가 궁금하지도 않냐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래도 기죽어. 의기소침해 하시는 아버지보다는 이렇게 쩡쩡한 목소리로 혼을 내시는 아버지가 계셔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한다.

 

엄마는 지난 세월 일찍 홀로 대신 시아버님과 울 아버지 두 깐깐한 남자를 모시고 살았다 남편과 시아버지 그리고 다섯 아이들을 키우느라 쉴 틈 없이 살았다. 경기도 파주에 살면서 다섯 아이들을 모두 서울로 학교를 보내고 남은 시간은 부엌일과 텃밭 밭농사까지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이셨다. 그렇게 몸을 많이 쓰시면서 살았던 탓일까? 젊은 시절 너무 과한 노동을 하셨던 걸까? 아이들 다 키워 놓고.


13년 전 일찌감치 하늘로 가셨다. 예전에 비하면 형편도 좋아졌는데 왜 그리 급하시게 일찍 하신 걸까? 생각할수록 마음이 먹먹하다 엄마는 동네에서 키도 크시고 얼굴도 예쁘시고 음식도 잘하시기로 유명하셨다. 엄마가 하는 개성 보쌈 김치는 노란 배추 속으로 속을 감싸고 그 안에 밤과 잣을 비롯해 갖은 양념을 한 작품 같은 김치였다. 나는 김치를 먹을 때 이렇게 예쁘게 꾸민 김치는 우리엄마 김치밖에 먹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나박김치는 얼마나 예쁘고 맛있게 담구셨는지 빨갛게 색이 우러 나오고 맛은 얼마나 시원했던지 남편 역시 우리 장모님 김치처럼 맛있는 물김치는 세상에 없을 거라고 할 정도였다.

 

아직도 김장철 그때 그 모습이 눈에 떠오른다. 나의 어린 시절 온동네 다 같이 모여 몇백 포기씩 김치를 하던 그 시절 말이다. 하루는 꼬박 배추를 절이고 속을 마련해 그다음 날 속을 버무리고 채워 놓는다. 엄마는 이때 김장하는 상황을 재밌게 표현하셨는데 사람들은 일할 때는 5명 밥 먹을 때는 10명이라고 하셨다. 일을 안 하고 멀리서 와도 먹을 것만큼은 아끼지 않았던 푸근한 인심의 그 시절 훈훈한 이야기가 지금도 그립다.

 

엄마는 세월이 흘러 환갑쯤 되자 아이들도 하나 둘 자기들 갈 길 찾아 떠나고 그 허전함 빈둥지 증후군을 메우시려고 붓글씨를 시작하셨다. 하지만 막상 엄마 나이에 붓글씨를 시작하니 팔과 목이 여기저기 힘들어. 어려움을 겪으시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많은 작품을 남기셨다 자식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 평생 두고 보아도 좋은 글들을 서예지 위에 오로시 담아 내셨다.

 

결혼하는 손주들을 위해 할머니가 전해 주고 싶은 말 딸과 사위에게 전하고 싶은 사랑에 관한 글들을 액자에 담아 매일 걸어 두고 보라고 그렇게 우리에게 주고 가셨다. 지금도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사랑받는 아내 되어 존경받는 남편 되어  이 글씨 하나하나에 행복하게 살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이 글을 마치며 엄마의 마음으로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살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