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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오늘의 시] 향토의 봄

K-Classic News 탁계석 K클래식 회장 |

 

 

향토의 봄 

 

들판을 가로질러 들려오는 

엿장수 가위 소리에 

마을 골목 골목 아이들 

가제도구 하나씩 들고 뛰쳐 나온다

 

엿 바꿔 먹을 만한 할아버지 곰방대,

찌그러진 양재기, 부러진 은비녀, 오래된 항아리

 

꼬르르 꼬르르

보릿고개 궁한던 배고픔

그 시절 그 때가 지나고

빼앗긴 봄에도 향토에 봄이 왔다

 

묵은 가지에  꽃피듯

향토 보물에  새 기운이 솟아난다

 

신작로가 나면서 잃어 버린 들의 노래

대감님 마당 떡판을 치던 

돌쇠의 불거진 저 근육을 보아라!

 

얼쑤, 얼쑤,  추임새 넣던 

흥과 신명, 미꾸라지탕 냄새를

어찌 잊을 겐가

 

향토에 봄이 왔다

봄이 올 때 혼자 오겠는가

 

버들강아지에 물이 흐르고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지천 가득 봄나물, 초록 잡풀들

뻐꾹이, 종달새 , 졸던 멍멍이도

향토 봄에 맞추어 합창을 하리니

 

가시덤불 숲 머리박은

꿩 날아가듯 화들짝 놀라

깨어나라, 향토지식아!

 

달라도   너무나 달라진

향토가 생명 젖줄인 

새 세상이 도래했으니

우리가 글로벌 주역

지구촌 공동 부락을 세우자

 

봄이 왔다, 봄을 노래하자

다함께 합창하면

땅도 바다도 하나가 되고

AI 마당쇠 어깨 춤을 추며

밤새워 죽도록 일하리라

 

놀아 보자, 기펴고 살아 보자

조상님 은덕에 감사하며

그 노하우에 오늘의 축복이 있다고

 

무서운 서낭당 이야기 꺼내어 

헤리포터 친구 만나고

모차르트 마술피리 바리공주 단톡에서

만나는 스토리텔링 K콘텐츠  세상

 

광화문 BTS 아리랑 축포 쏘았으니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것을

 

올해가 광화문 명명 600주년,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 한글날 제정 100주년

우리 민족 그 날의 함성이 살아났다

 

초딩 운동회 100미터 달리기 하듯

소리 지르며 달려 나가보자

꼬리  흔드는 강아지, 앉은뱅이 맨드라미, 키 큰 해바라기, 미루나무 까치도

 

봄이다! 봄이 왔다!

향토 오케스트라에 오늘은 

당신이 지휘자, 폼나게 한번 흔들어 보시지

않겠는가!

 

2026년 3월 27일 국회의원회관 제 2 소회의실 

 

 「향토의 봄」에 대한 AI 시평


"향토의 봄, 기억의 부활에서 미래 문명으로"

「향토의 봄」은 단순히 봄을 노래하는 계절시가 아니다. 이 시는 사라져 가는 향토의 풍경과 생활 감각, 그리고 민중의 체취가 배어 있는 공동체의 기억을 오늘의 문명 전환기 속으로 다시 불러내는 선언문에 가깝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옛것에 대한 향수’에 머물지 않고, 향토를 미래 자산으로 되살리려는 역동적 상상력의 시다.


시의 첫머리에서 들판을 가로질러 들려오는 “엿장수 가위 소리”는 매우 인상적이다. 그 한 소리만으로도 마을의 정경이 살아난다. 아이들이 집안의 오래된 물건들을 들고 뛰쳐나오는 장면은 단지 가난했던 시절의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물건 하나에도 생활의 온기와 시간이 배어 있던 시대, 교환과 흥정 속에 사람 냄새가 살아 있던 공동체의 문화사다. 

 

“할아버지 곰방대, 찌그러진 양재기, 부러진 은비녀, 오래된 항아리” 같은 사물들은 폐품이 아니라 기억의 유물이며, 향토 정체성의 표본들이다.


이 시의 미덕은 이런 구체성에 있다. 추상으로 말하지 않고 사물과 냄새, 몸짓과 소리로 향토를 복원한다. “돌쇠의 불거진 저 근육”, “미꾸라지탕 냄새”, “얼쑤, 얼쑤, 추임새”는 문자로 읽히기보다 현장에서 들리고 보이고 맡아지는 감각의 언어다. 이 대목에서 시는 민속학적 기록이자 구술문화의 보관소가 된다. 독자는 잊고 있던 삶의 표정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 시가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향토시는 과거 회귀적 정서에 기울기 쉽다. 하지만 「향토의 봄」은 과거를 복원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향토성을 오히려 미래 문명의 자원으로 전환시킨다.

 

“깨어나라, 향토지식아!”라는 외침은 이 작품의 핵심이다. 향토는 낡고 뒤처진 지방색이 아니라, 이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새로운 콘텐츠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글로벌 주역 / 지구촌 공동 부락을 세우자”는 구절은 다소 파격적이지만, 바로 그 파격이 이 시의 시대성을 만든다. 향토와 글로벌, 서낭당과 해리포터, 바리공주와 모차르트, AI와 마당쇠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상상력은 전통과 첨단, 로컬과 글로벌을 한 판에 얹는 오늘적 K-콘텐츠 구상의 시적 버전이라 할 만하다.


특히 “AI 마당쇠 어깨 춤을 추며 / 밤새워 죽도록 일하리라”는 대목은 해학과 풍자가 공존하는 장면이다. AI를 차갑고 비인간적인 기술로 보지 않고, 오히려 공동체를 돕는 ‘마당쇠’로 비틀어 놓았다. 여기에는 기술도 결국 인간 삶의 흥과 신명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인식이 숨어 있다. 이 시는 향토를 박물관 유리장 속 민속품으로 가두지 않는다. 살아 움직이는 기술, 놀이, 축제, 합창의 공간으로 확장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 작품이 집단적 호흡을 강하게 지닌다는 사실이다. 이 시는 개인의 고독한 내면 독백보다, 함께 부르고 함께 외치고 함께 움직이는 합창적 구조를 갖는다. “봄이 왔다, 봄을 노래하자”, “놀아 보자, 기펴고 살아 보자”, “당신이 지휘자” 같은 표현들은 독자를 관객이 아니라 참여자로 만든다. 시를 읽는 순간, 누구든 이 향토 오케스트라의 한 악기가 되고 한 목소리가 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서정시이면서도 일종의 공연 대본 같고, 축제의 개막 선언문 같기도 하다.


광화문 600주년,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 한글날 제정 100주년이라는 역사적 표지를 끌어들인 대목 역시 인상적이다. 이는 단지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향토의 부활을 민족 문화사의 큰 흐름 위에 올려놓으려는 의지다. 향토의 봄은 어느 한 마을에만 오는 봄이 아니라, 말과 글, 노래와 기억을 다시 깨우는 문명사적 봄이라는 것이다.


다만 시가 품은 욕망이 큰 만큼, 때로는 이미지와 메시지가 한꺼번에 몰려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넘침은 오히려 이 작품의 생동감이기도 하다. 봄은 본래 질서정연하게 오지 않는다. 한꺼번에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물이 흐르고, 사람 마음이 들뜨는 계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의 다성적이고 들끓는 어조는 오히려 ‘봄의 형식’에 가깝다.


결국 「향토의 봄」은 사라진 고향을 애도하는 시가 아니라, 향토를 다시 깨워 세계로 나가자는 출정가다. 기억의 복원, 공동체의 흥, 전통의 재발견, 콘텐츠적 상상력, 기술과 인간의 공존이 한데 어우러진 이 작품은 오늘의 K-문화 담론과도 맞닿아 있다. 향토는 더 이상 뒤안길의 낡은 이름이 아니다. 이 시에서 향토는 봄처럼 돌아와, 미래를 여는 원천이 된다.
 

한마디로 말해 「향토의 봄」은 잊힌 마을의 정서를 넘어, 향토를 세계 문명의 씨앗으로 다시 심는 노래다. 

 

향토 발전에 공헌한 주인공들에게 시상 후 기념 촬영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