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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양정윤, '릴리 오브 프랑스 III' 개최

리듬과 블루스로 벨 에포크를 깨우다
4월 2일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서 열리는 시리즈의 세 번째 여정

K-Classic News 오형석 기자 |바이올리니스트 양정윤이 오는 4월 2일(목)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독주회 ‘릴리 오브 프랑스(Lily of France) III’를 개최한다. 지난 2023년부터 시작된 ‘릴리 오브 프랑스’ 시리즈는 프랑스 음악 특유의 섬세한 화성과 유려한 음색,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예술적 감수성을 깊이 있게 조명해온 양정윤의 대표 프로젝트다. 이번 세 번째 무대는 라벨, 미요,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을 중심으로, 춤곡과 블루스, 그리고 벨 에포크 이후 유럽 음악의 다층적인 감각을 입체적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이번 공연은 양정윤이 오랜 시간 쌓아온 프랑스 음악 해석의 정점을 보여주는 자리다. 그의 프랑스 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은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피에르 아모얄(Pierre Amoyal)에게 사사하던 시절부터 본격화됐다. 아르투르 그뤼미오의 해석 세계에 깊이 공감해온 그는 아모얄과의 수학을 통해 단순한 연주 기량의 향상을 넘어, 작품을 바라보는 태도와 미학적 시야 자체를 새롭게 확장하는 경험을 했다. 양정윤은 이 시기를 두고 “테크닉보다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집중했던 시간이 무척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회고하며, 당시 연구했던 프랑스 레퍼토리들이 오늘의 ‘릴리 오브 프랑스’ 시리즈를 가능하게 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릴리 오브 프랑스’ 시리즈는 첫 공연부터 선명한 기획 의도를 드러냈다. 지난 2023년 선보인 시리즈 1에서는 생상스, 풀랑, 이자이 등을 통해 프랑스 음악 특유의 음색과 화성을 밀도 있게 조명했고, 2024년 이어진 시리즈 2에서는 드뷔시와 포레를 중심으로 벨 에포크 시대 예술가들의 교류와 영감의 흐름까지 무대 위로 확장해 큰 호응을 얻었다. 자칫 대중에게 낯설 수 있는 레퍼토리였음에도 공연 후 “음반으로도 만나고 싶다”는 반응이 이어질 정도로, 양정윤의 섬세한 해석과 색채감 있는 기획은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반응은 이번 세 번째 시리즈를 이어가는 중요한 동력이 됐다.

 

이번 공연의 중심에는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이 있다. 양정윤은 라벨을 두고 “음악가로서의 존재를 감사하게 하고, 환희에 가득 차게 만들어주는 작곡가”라고 말한다. 당초 그는 라벨 탄생 150주년이었던 지난해 이 프로그램을 구상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무대에 올리지 못했다. 때문에 1년을 기다린 끝에 성사된 이번 공연은 연주자에게 더욱 특별하고 뜨거운 의미를 지닌다. 양정윤은 라벨의 음악이 지닌 ‘세련되고 계산적이면서도 친숙한’ 특질에 주목하며, 특히 바이올린 소나타 2번 2악장 ‘블루스’에서 드러나는 장르적 감각과 시대성이 이번 독주회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기존의 유럽적 소나타 형식 안에 블루스라는 동시대적 요소를 과감히 끌어들인 라벨의 시도는, 이번 무대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미학적 축이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이번 프로그램은 ‘특징적인 리듬이 있는 춤곡과 블루스’라는 콘셉트로 구성됐다. 공연은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유작’으로 시작된다. 짧지만 응축된 서정과 초기 라벨 특유의 감수성을 담은 이 작품은 공연의 문을 여는 프롤로그이자, 이후 펼쳐질 보다 다채로운 리듬과 색채의 세계를 예고한다.

 

이어 연주되는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의 ‘브라질의 향수(Saudades do Brasil), Op.67’는 이번 무대에 보다 강렬한 리듬적 생동감을 더한다. 미요는 프랑스 6인조의 일원으로서 프랑스 음악 어법 안에 브라질 체류 경험에서 비롯된 이국적 감각과 원색적 활기를 적극적으로 불어넣은 작곡가다. 양정윤은 “라벨이 모네의 수련을 떠올리게 한다면, 미요는 태양 아래의 축제를 연상시킨다”고 말하며, 이 작품이 지닌 생생한 에너지와 정열, 그리고 지역명에 담긴 이미지적 서사를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지명을 제목으로 한 각 곡은 나른함과 활기, 서정과 열정을 넘나들며 프랑스 음악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또한 이번 무대에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요정의 입맞춤’ 중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 from The Fairy’s Kiss)가 포함된다. 러시아 출신이지만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세계적 명성을 확립한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적 감정의 강도와 프랑스적 절제미를 동시에 품은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양정윤은 스트라빈스키가 파리 체류와 언어 습득을 통해 또 다른 미적 자아를 형성했다고 보고, 이 작품을 통해 그의 복합적인 정체성과 유니크한 감각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는 이번 공연이 단지 프랑스 국적의 작곡가들만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교차했던 근대 유럽 예술의 감각을 넓게 조망하는 기획임을 보여준다.

 

공연의 피날레는 다시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이 장식한다. 1악장 ‘알레그레토’의 정교한 균형, 2악장 ‘블루스’의 독특한 리듬과 음향, 3악장 ‘페르페투움 모빌레’의 질주감은 이번 리사이틀이 품고 있는 문제의식을 가장 선명하게 응축한다. 프랑스적 우아함과 미국적 블루스의 감각, 지성과 기교, 절제와 열광이 한 작품 안에서 교차하는 이 곡은, 양정윤이 왜 지금 이 프로그램을 ‘릴리 오브 프랑스’ 시리즈의 세 번째 무대로 제시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양정윤은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예술가로서의 책임과 숙명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했다고 전한다. 그는 “프랑스 음악에는 예술가로서 숙명적으로 고민하고, 또 누려야 할 것들이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있다”며, 그것은 단순한 연주의 필수 요소를 넘어 삶을 보다 고차원적으로 영위하고자 하는 하나의 예술적 물음에 가깝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번 무대는 단지 프랑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연주자의 참신한 기획과 예술적 고뇌, 그리고 자유로운 상상력이 함께 스며든 무대로서, 청중에게 보다 깊은 예술적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무대를 이끄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정윤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조기 입학 및 조기 졸업한 뒤,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와 오스트리아 모차르테움 국립음대를 모두 최고점으로 졸업했다. 2005년 시옹 국제 콩쿠르 우승을 비롯해 토룬, 리피처 등 권위 있는 국제 콩쿠르에서 잇따라 1위를 차지하며 일찍이 실력을 인정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에 출강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서울스프링페스티벌 참여, KBS 클래식FM, CPBC 라디오 출연 등 다양한 무대와 매체를 통해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함께 무대에 오르는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Ilya Rashkovskiy) 역시 세계 정상급 커리어를 갖춘 연주자다. 하마마쓰 국제 콩쿠르 1위, 롱-티보 콩쿠르 2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4위 등 국제 무대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둔 그는, 정교한 테크닉과 깊이 있는 해석으로 국내외 음악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음악대학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공연에서는 양정윤의 섬세한 보잉과 프랑스 음악의 미묘한 음향 세계를 가장 이상적으로 뒷받침할 파트너로 나선다.

 

한편 ‘릴리 오브 프랑스 III’는 단순한 시리즈의 연장이 아니라, 양정윤이라는 연주자가 어떤 예술적 질문을 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무대다. 리듬과 춤, 블루스, 절제와 환희, 계산과 자유가 교차하는 이번 저녁은 프랑스 음악의 향취를 넘어, 한 예술가가 축적해온 시간과 사유, 그리고 음악적 신념을 증명하는 특별한 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