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말은 있는데, 말할 수 없고, 생각은 있는데, 꺼내 놓을 수 없고, 감정은 넘치는데, 표현할 언어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군가는 이를 ‘눈치의 사회’라 부르고, 누군가는 ‘검열의 시대’라 말한다. 그러나 실은 더 깊은 곳에 원인이 있다. 우리는 지금 ‘말의 주권’을 잃어버린 사회에 살고 있다.
말은 위험해졌고, 침묵은 안전해졌다
언제부턴가 말은 무기가 되었다. 한마디가 왜곡되고, 편집되고, 낙인으로 돌아온다.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고, 맥락이 아니라 단어 하나로 재단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말하면 공격당하고, 침묵하면 무사하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말하는 사람보다 조용한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을 준다. 그러나 침묵이 길어질수록 내면은 병들어 간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응어리가 되고, 말하지 못한 생각은 불안으로 바뀐다. 정신건강의 출발은 ‘말할 수 있는 권리’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왜 이렇게 불안해졌는가
지금의 한국 사회는 세계 최고 수준의 속도, 경쟁, 효율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 속도만큼 마음은 따라가지 못한다. 성과는 숫자로 평가되고, 인간은 스펙으로 환원된다. 사람은 존재가 아니라 기능이 되었고, 관계는 만남이 아니라 거래가 되었다. 이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실패를 말하지 못한다. 약함을 드러내지 못하고, 상처를 숨긴다. “괜찮다”는 말이 습관이 되었고, “힘들다”는 말은 사치가 되었다. 그러나 억눌린 감정은 반드시 출구를 찾는다. 그 출구가 우울증이고, 공황장애이며, 번아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성공의 피로사회이자, 감정의 고립사회다.
말하지 못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25시(The 25Th Hour)의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 Gheorghiu)는 '시인이 병든 사회는 죽은 사회'라고 했다. 건강한 사회는 다투는 사회가 아니라 대화가 가능한 사회다. 말이 오갈 수 있을 때 생각이 교차하고, 이해가 생기며, 공감이 자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서로를 설득하지 않는다. 차단하고, 편 가르고, 낙인찍는다. 상대의 말을 듣기보다, 틀렸음을 증명하려 든다. 이런 사회에서 말은 점점 사라지고 사람은 점점 고립된다. 정신건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구조가 만든 집단적 증상이다.
전쟁 이후, 침묵을 깨운 예술의 역사
인류의 역사에서 깊은 침묵과 인간성의 붕괴는 언제나 전쟁 이후에 찾아왔다. 그러나 그 절망의 시간마다, 예술은 늘 가장 먼저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깊은 좌절에 빠졌던 오스트리아 빈에 ‘왈츠의 왕’ 요한 스트라우스가 등장했다. 그는 절망에 잠긴 시민들에게 다시 춤을 추게 했고, 우울과 침묵의 도시에 생명과 리듬을 되돌려 놓았다. 왈츠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패배 이후 무너진 자존감과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사회적 처방이었다.
한국의 안동 탈춤 역시 마찬가지다. 양반 권력에 짓눌려 말조차 할 수 없던 하층민들은 탈을 쓰고 기득권을 풍자하며 숨통을 틔웠다. 탈춤은 웃음이었고, 해방이었으며, 억눌린 민중의 정신 건강을 지켜낸 집단적 치료였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속에는 상류층의 위선과 부도덕을 향한 날카로운 풍자가 담겨 있다. 귀족 사회의 권위를 웃음으로 무너뜨리고, 막힌 통로를 열어젖히는 통쾌한 해방의 예술이었다. 그래서 피가로의 결혼이 프랑스 혁명을 이끈 도화선이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예술은 언제나 침묵의 시대에 말을 대신했고, 절망의 시대에 인간성을 복원했으며, 억압의 시대에 자유를 노래했다.
정신건강과 ESG는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예술사는 곧 인류의 정신건강 회복사이며, 예술은 언제나 사회적 치유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예술은 말하지 못한 것들을 대신 말해준다
그래서 예술이 필요하다. 음악은 말보다 먼저 마음에 도달하고, 시는 언어보다 깊은 감정을 꺼내 놓는다. 연극과 오페라는 우리가 숨겨온 삶의 진실을 무대 위에 올린다. 예술은 안전한 언어다. 직접 말하지 못하는 시대에 우회적으로 진실을 말하는 통로다. 정신건강 ESG는 단지 치료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의 회복이고, 공감의 복원이며, 인간다움의 회복이다.
우리는 다시 말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다시 말해야 한다. 틀릴 자유, 상처를 드러낼 자유, 약함을 인정할 자유를 회복해야 한다.말은 용기이고, 대화는 치유이며, 공감은 사회의 면역력이다. 정신건강 ESG는 사람을 숫자가 아닌 인간으로 대우하는 시스템이며, 침묵의 문화를 대화의 문화로 바꾸는 사회적 혁신이다. 우리는 다시 말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살아갈 수 있다.

한경수 作 @ 소피아아트컴퍼니 제공
English Short Version
Why Have We Become Afraid to Speak?
At some point, speaking became dangerous and silence became safe. Words are distorted, intentions are judged by outcomes, and people are labeled by a single sentence.
So many choose silence over honesty.
But unspoken emotions turn into anxiety, depression, and burnout. Modern society rewards efficiency and performance, yet neglects the human heart. A society that cannot speak is a sick society.
History shows that after every war and collapse of humanity, art has always been the first force to restore dignity and life. After Austria’s defeat by Prussia, Johann Strauss brought waltz back to Vienna,
helping a wounded nation dance again.
Korean mask dances allowed common people to criticize the powerful and breathe freely. Mozart’s operas mocked the corruption of the elite and opened blocked social passages with laughter.
Art has always spoken when people could not, healed when society was broken, and restored humanity when dignity was lost.That is why Mental Health ESG is not only about treatment. It is about restoring expression, empathy, and human dignity.
We must speak again.
Because speaking is courage, dialogue is healing, and empathy is the immune system of societ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