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노유경 평론가 기자
[노유경 리뷰]
임윤찬과 골드베르크 변주곡 – 불의 세례를 지나, 단단해지는 순간
제목: 독일 쾰른 필하모니에서 임윤찬 KLANGWUCHT-RACHMANINOW & MARSALIS
(KLANGWUCHT)는 독일어로 "Klang" (소리)과 "Wucht" (힘, 충격, 강도)가 결합한 단어이다. 보통 "소리의 강도" 또는 "강렬한 소리"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특히 음악이나 음향 관련 문맥에서, 강력하거나 압도적인 소리를 묘사할 때 사용될 수 있다.
시간: 2025년 1월 31일/ 2월 1일
장소: 독일 쾰른 필하모니 Kölner Philharmonie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의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달아오른 독일 쾰른 필하모니 무대는 마치 도공의 가마처럼 뜨거웠다. 도자기가 불길 속에서 견디며 단단해지듯, 임윤찬의 연주 또한 그 뜨거운 열기를 통과한 뒤 더욱 깊어진 순간을 맞이했다. 앙코르곡으로 택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Bach’s Goldberg Variations)—원래 불면증을 위해 작곡되었다는 히든스토리가 유명하지만, 이 밤의 연주는 졸음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깨우고 정화하는 의식 같았다. 기립박수 속에서 피아노를 쓰다듬으며 관중을 진정시키던 그의 손길은 마치 “이제 열을 식힐 시간”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음악은 열기를 가라앉히기보다는 그 안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과정 그려내었다. 뜨거운 불길을 견디고 나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도자기처럼, 격정을 지나 평온에 이르는 여정이 이날 연주의 진정한 정점이었다.

독일 쾰른은 문화와 음악의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쾰른 필하모니와 WDR 교향악단이 (WDR Symphony Orchestra) 활동하는 음악의 중심지이며, 쾰른 대성당에서는 고전 음악과 오르간 연주가 울려 퍼진다. 세계적인 거장들이 한 번쯤 거쳐 갔던 이곳에 한국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재외동포들 사이에서 기대감이 퍼져 나갔다. 공연 티켓은 이미 매진되었고, 혹시라도 예매를 취소하거나 양도하려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이른 아침부터 쾰른 필하모니 앞에는 표를 구하려는 한국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개인적인 시련과 극복의 과정을 반영한 작품으로, 인간의 회복과 재생의 주제를 담고 있다. 카프카의 변신 (Kafka's Metamorphosis) 속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 (Gregor Samsa)가 벌레로 변하는 괴로운 상황 속에서, 자기 정체성과 고립된 삶의 고통을 묘사하고, 극복의 시도와 절망 속에서 인간 내면의 치유를 탐구하듯, 복잡한 감정의 흐름이 붓을 들고 색을 칠했다. 격렬한 감정 또한 평온함과 희망으로 향하며, 임윤찬은 이러한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하며 연주했다. 그를 평할 때 자주 “철학적”이라는 단어는 그의 음악적 통찰력과 깊이를 잘 설명한다. "탁월함"이라는 표현 말고, 또 어떤 표현으로 그의 피아노를 세례 해야 하는지, 1인칭과 전지적 시점을 왕래하면서 넓이와 깊이를 측정하고 시간과 공간을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재조명하게 된다. 아니, 그 빠른 박자와 손가락의 움직임은 듣는 이를 긴장하게 만들고, 그 긴장감 속에서도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임윤찬의 해석은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 (Haruki Murakami)의 노르웨이의 숲에 등장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듣고 있는 와타나베의 해방의 여정처럼, 감정의 고조와 섬세한 변화를 잘 표현했다. 주위에 앉아 있는 독일인 관객들의 놀라움은 임윤찬의 소용돌이처럼 달려가는 템포에 몸을 움찔거렸지만, 그의 서정적이고 평온한 멜로디의 해석에는 점점 더 몰입되었다. 그의 연주는 마치 피아노 한 건반을 칠 때 듣는 이의 심장을 강타하겠다고 인터뷰한 임윤찬의 입술이 기억되었다. “강타했다.”
이 곡은 작곡만큼이나 피아노를 잘 쳤던 라흐마니노프가 본인의 곡을 직접 연주했던 비디오를 온라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옥타브를 넘어 13도를 잡을 수 있는 큰 손을 가진 그는, 손이 큰 사람이 유리한 넓은 코드와 빠른 아르페지오를 자주 곡 안에 등장시킨다. 빠른 교차나 페달을 활용해 처리하는 방식이 탁월하며 자유로운 루바토 (rubato)와 강한 다이내믹 콘트라스트 사용보다, 구조적으로 명확하면서도 격정적인 연출을 선보이고, 음색의 다양성과 강렬한 감정 표현으로 그리고 현대적인 해석으로 낭만주의적 감성을 재해석했다. 서정적인 부분의 대조를 더욱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그의 단호함을 음악적인 사고와 감정 표현으로 마치 거친 다이아몬드를 정교하게 세공하듯, 한 음표 한 음표를 갈아 빛나게 탄생시킨다.
극적이고 웅장한 1악장은 임윤찬이 즐겨 읽은 단테의 신곡 (La Divina Commedia) 중에 지옥편 (Inferno)의 인간의 내면 탐구와 맞닥뜨려진다. 극한 감정의 흐름 속에서 영혼의 시련을 겪는 듯 서사적인 표현이 강렬하게 나타났다. 2악장의 서정적인 멜로디는 단순한화려함이 아니라 절제와 내면적 깊이를 공존시켰다. 3악장의 승리와 환희, 그리고 극복과 희망의 메시지는 마치 신곡의 천국편 (Paradiso)의 숭고한 경지와 초월적인 조화를 지향하여 우주의 질서와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악장들은 하나의 여정을 그려가는 방식으로 도달했다.

독일 쾰른(Köln)을 기반으로 독일의 대표적인 방송 교향악단 중 하나인 WDR 교향악단(WDR Sinfonieorchester)은 유럽에서 가장 수준 높은 방송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혁신적인 연주 스타일과 해석을 선보이는 WDR 교향악단은 크리스티안 맥켈라루(Cristian Măcelaru, 현재 음악 감독)의 지휘로 정통 독일 음악 해석과 현대음악, 그리고 실험적인 레퍼토리를 연주하기도 하며, 유려하고 균형 잡힌 사운드로 유럽과 국제적인 음악제에서 영향력을 과시한다. 대편성 오케스트라는 거대한 골리앗처럼 물리적으로나 음향적으로 강력한 존재감을 표출하였고, 오케스트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한 명의 피아니스트는 작은 다윗처럼 보였지만 강한 존재감과 작은 소리에서도 강한 서사를 담아 오케스트라와 대등하게 맞서는 지적인 해석과 강렬한 연주로 거대한 상대를 여러 번 압도했다. 이것은 강자와 약자의 싸움이 아니고, 긴장감과 감동을 만들어내는 이야기였다. 볼륨과 규모의 차이 속에서도 피아니스트가 어떻게 오케스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때로는 그것을 초월하는지를 보여주는 협연의 묘미였다.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가야금 연주자 우륵(于勒, 6세기)을 떠올리며 피아노를 연주했다고 임윤찬이 인터뷰한 것처럼, 단순한 음악적 이미지뿐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정체성과 자신의 음악을 찾으려는 자세가 입장하는 모습, 연주하는 모습, 퇴장하는 모습, 그리고 커튼콜을 받는 모습에 오버랩이 된다. 그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Bach's Goldberg Variations)을 앙코르로 연주했을 때, 단순한 기교가 아닌 묵직한 성찰과 사색의 결과물이었다. 그의 연주는 신곡의 연옥편 (Purgatorio)에서 영혼이 고통을 통해 정화되는 과정을 연상케 했다. 연주가 끝나고 나니 <별이 빛나는 밤> (Starry Night)이 모두 색칠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의 정신적 고통과 고독을 겪은 후, 그의 내면이 수면으로 올라온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처럼 임윤찬의 피아노 소리는 별처럼 빛나는 밤의 색을 통과했다.
이 글은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이동연 교수님과 MOC 이샘 대표님께 헌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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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 음악학박사, 쾰른대학교/도르마겐 시민대학교 출강, 해금앙상블(K-Yul) 음악감독, 국제독일교류협회대표, 공연평론가, 한국홍보전문가, K-Classic 쾰른지회장, 독일/서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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