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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다원 노트] K 예술 속 청년 음악가로 성장하기

누군가는 유학을 떠나고 돌아온 순간부터 엄청난 혼란이 인생을

K-Classic News 김다원 작곡가|

 

 

한국 예술 저변에 깔려있는 수많은 청년 음악가들은 무언가 모를 성공을 향해 달려간다. 아주 끈질기게. 음악가였던 청년, 음악가인 청년, 음악가를 꿈꾸는 청년. 이들 모두는 한국 음악 시장 속에서 지독한 좌절과 자기 비난에 시달린다. 유년 시절부터 예술을 전공하고자 준비한 학생일수록 평가의 잣대와 순위 매김, 명예 싸움 속에서 성장했으며, 그 성장 속에서 독인지 약인지 모를 악습과 관습을 모두 흡수하며 청년이 된다.

 

그들은 흔히 말하는 '최고의 연주자'가 되기 위하여 혹독한 연습 과정을 오랜 시간 동안 거친다. 그 속에서 폭언이 있었든, 없었든지 간에 골방에 틀어박혀 연습하는 삶은 참으로 고달프다. 그들은 성장을 위해 수많은 선택과 인고의 시간을 거치며 형태가 무엇인지 알 순 없지만 아무튼 최고의 음악가가 되기 위하여 발돋움한다. 하지만 대학교를 거쳐, 혹은 더 나아가 국내 대학원을, 누군가는 유학을 떠나고 돌아온 순간부터 엄청난 혼란이 인생을 덮친다.


 생각보다 연주를 못해도 돈 잘 버는 세상

 

관객은 '연주의 완성도'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이 모순적인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술을 단지 '즐기는 거리'로 두는 많은 수의 청중들—그 안에는 위로, 자아실현, 단순한 흥겨움, 취미 등이 있겠다- 은 특히 매체가 발달한 현시대에 엄청난 연주 실력을 가진 이른바 '대가'의 연주를 들어왔기 때문에 듣는 귀가 굉장히 높다. 하지만 전공자 혹은 매니아층이 생각하는 디테일에 대한 부분을 일반 청중들이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기획과 연출의 컨셉이 잘 잡힌 공연, 화려한 퍼포먼스나 스타덤에 오른 연주자들(대가는 이 스타덤에서 제외한다)의 공연은 청중에게 엄청난 감동을 가져다준다.

 

그런 공연을 보고 나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 '저런 사람도 공연을 할 수 있구나.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
둘, '성공이 도대체 뭐지, 난 도대체 무얼 위해 노력해온 걸까.'

 

존경할 수 없는 앞선 기성세대들, 존경할 수 없던 기성세대들을 닮아가는 나를 보며 끔찍한 기분에 시달리기도 한다. 연주를 꽤나 못해도 돈 잘 버는 한국 음악 시장. 이건 축복인가, 저주인가?


그래서 뭘 해야 돈을 벌 수 있죠?

 

열심히 연습하고 갈고닦은 실력을 갖고 호기롭게 졸업을 했다. 귀국 연주회, 혹은 졸업 연주회. 속된말로, 내돈내산 연주회. 갓 사회에 나온 청년 음악가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음악, 내가 추구하는 예술 미학을 돈을 버는 것과 일맥상통시키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한다. 그 결과는 텅텅 극장, 지원 사업 탈락 등으로 뼈아프게 보여지는 경우가 많다. 예술 미학을 살리며 돈을 버는 '엄청난 대가'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청년 음악가. 하지만 사실 연주는 제법 잘하는 비운의 음악가들. 그들은 오갈 곳이 없다.

 

방과후 수업, 센터 수업, 시민 문화예술 교육 등의 시간강사. 혹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위해 내돈내산을 각오하며 다른 일을 병행하는 알바 마스터 N잡러 음악가들. 그것이 삶의 편의 지수에 있어서 압도적으로 좋지 않다고 느끼는 건 바로 집세 보증금 대출받을 때가 아닌가 싶다.

 

난 분명 수많은 일을 하는데, 은행에서는 무직으로 판단하여 대출 이자를 갚을 자격에 대해 굉장히 의심받는다. 사실 내 스스로도 내가 이 돈을 지속적으로 갚을 수 있을지 의문인 상태가 가장 문제일지도!

 

교수직은 사람이 차고 넘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정자가 있다 없다 이야기가 나오는 와중에, 콩쿠르에서 인정받지 못한 실력 있는 음악가들, 심지어 명문대를 나오지 못한 제법 실력 있는 음악가들은 정말 설 자리가 없다.

 

명문대 출신의 음악가들은 명문대를 내세워 레슨을 하는 경우가 많다. 명문대 출신이 아닌 청년 음악가들 중 일부는 돈을 열심히 모아, 혹은 부유한 집의 지원으로 학원을 차린다. 그렇게 그냥저냥 살기도 하고, 때 돈을 벌며 살기도 한다. 하지만 음악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을 현직 음악가로 보는 시선은 드물다는 마음 아픈 현실이 있다. 음악가 인생이 고달파 교직에 선 음악가들 또한 현직 음악가들과 구분 짓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 같다.

 

돈도 없고 명문대도 안 나왔는데 그냥저냥 나쁘지 않은 인정을 받아오며 자라긴 했지만 딱히 인맥도 없는, 연줄이 가난한 음악가들은 정말 기댈 곳이 없다.


나는야 다재다능한 음악가!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학창 시절까지 내 전공 하나만 잘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없는 세상은 녹록치 않다.

 

"돈을 드릴 테니 기가 막힌 공연 아이디어를 제출해보세요!"

 

기가 막힌 공연! 이게 뭐지? 라고 생각하며 처음으로 공연을 기획해본다. 우리는 모두 졸업 연주 프로그램을 직접 짜봤으니 기획자 아닌가!

 

<음악가 아무개의 연주회>

 

그리고선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꾹꾹 채워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이런 기획에 돌아오는 뼈아픈 질문. "이 사업이 왜 국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어,,,,저는 연주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연주자로 성장하기 위해 어쩌구 저쩌구 이런 활동 저런 활동 해서 저는 이만큼의 연주 기량이 있습니다! 제가 공연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쉽게도 이번 사업엔 한정된 인원으로 인해 선정되지 못하였습니다." 지원 사업 사냥꾼들이 있다. 아니, 음악가로 살아남기 위해 지원 사업 사냥꾼이 되어가는 음악가들이 많다.

 

"제가!(혹은 저희 팀이) 이러한 활동을 통해 1.사람들에게 이러한 긍정적인 영향을~ / 2. 한국 음악계 발전에 이러한 도움을~ / 3. 지역 발전에 이러한 도움을~…" 등등 적지 않은 음악가들은 사회의 구원자가 되기를 기꺼이 자처한다. 이러한 방향성은 음악가의 시야를 넓혀주며 성장을 도모하는 것일까? 아니면, '너희가 사회에 공헌하지 않으면 알아서 살아남아라'는 메시지일까?


현실은 이러하다. 사실 음악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모든 돈 버는 행위는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유년 시절부터 '연주를 잘하는 것'에 길들여진 음악가들에게 이런 현실은 대혼란이다. 모든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완벽한, 혹은 그것에 준하는 연주자가 되기 위한 방법을 탐구하고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들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이 속에서 자신을 갉아먹기도 하고, 음악을 포기하기도 하고, 자신을 포기하기도 한다.

 

음악은 소리 음+즐거울 락인데, 즐거운 소리를 위해 내 삶을 바치는 아이러니함을 언제쯤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청년 음악가들 중 과연 몇이나 남아 중년, 노년 음악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물며, 전공을 그만둔다 해도 각자의 삶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공을 그만두는 것이 자신의 무능함으로 여겨지는 곳이 있다. 그러한 땅이 있다.

 

음악을 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 과정에서 겪는 수없는 좌절. 이 모든 것은 음악을 잘하는 내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내 삶을 온연하게 만들어가는 과정들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경수 작가 Ending Fo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