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
2. 화장품 (Les cosmétiques, l’époque baroque et rococo.)
“사소한 미의 도구가 살롱을 움직인다.”
바로크·로코코시대 살롱은 단순한 우아한 모임이 아니었다. 17–18세기 프랑스에서 살롱은 대화·평판·취향·접근권이 교차하는, 일종의 사회적 기술이 펼쳐지는 무대였다. 그리고 그 기술을 눈에 보이게, 또는 냄새로 느끼게 만든 것이 파우더, 루주, 점패치(무슈, mouches), 하이힐, 화장품 보관함(부아트), 향수 등이 있었다. 이 도구들은 개인의 미용을 넘어 관계 맺기, 권력 신호, 계급의 문법 장치로 작동했기에 더욱 그렇다.
1) 파우더(La poudre):
“흰 피부”가 아니라 “시간과 노동을 면제받은 몸”의 표면
살롱의 미학은 ‘자연’이 아니라 ‘연출’에 더 가까웠다. 파우더(얼굴의 백분, 머리·가발 분)는 얼굴의 입체를 지우고 조명을 평탄화해 표정의 미세한 흔들림을 덜 드러내는 효과를 냈다. 중요한 것은 미용 효과보다, 파우더가 표상한 사회적 의미다.

파우더는 야외 노동의 흔적(그을림·잡티)과 질병 흔적(흉터·자국)을 ‘가리는’ 동시에, “나는 밖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신호를 생산했다. 당대의 백분과 루주의 결합이 계급적 미학으로 자리했으며, 일부 재료에는 납 등 독성이 포함되기도 했다는 점은 아름다움이 곧 위험비용을 전제했던 시대의 잔혹한 아이러니이었다.
살롱의 아침 일상은 이 파우더에 의한 ‘투알레트(toilette)’로 시작되었다. 상류층 여성은 하루의 사교 활동에 앞서, 지인·친족·방문객을 맞이한 상태에서 머리 손질과 화장(파우더·루주 포함)을 수행했다. 즉, 화장은 사적 행위가 아니라 방문객 앞에서 이루어지는 공적 퍼포먼스였다.살롱이 말의 향연장이라면, 투알레트는 얼굴 표면을 장식하는 장이었다. 표면을 세팅하며, 그날의 관계 즉 누구를 만날지, 어떤 인상을 남길지를 동시에 세팅하는 셈이었다.
이처럼 파우더가 갖는 의미를 잘 공감할 수 있는 곡으로 프랑스와 쿠프랭 (François Couperin))의 신비한 바리케이드 (Les Barricades mystérieuses)란 곡이 있다. 파우더는 살롱에서 얼굴을 단순히 하얗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표정의 숨김이나 드러남과 감정의 과잉을 완충하고 촛불 아래에서 빛을 부드럽게 퍼뜨리는 조명 장치처럼 작동했다. 이런 메커니즘이 이 곡에서도 발견된다. 프랑스 바로크 건반 음악의 핵심은 부서진 듯 흩뿌려진 아르페지오 질감(style brisé)이 핵심인데, 이 곡 역시 음들이 덩어리로 묶여 있지 않고, 가늘게 분산되고 서로 겹침으로써 마치 파우더 입자가 공기 중에 떠서 피부 위에 얇게 퍼지며 자리 잡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곡을 감상할 때는 개별 멜로디를 따라가기보다, 여러 성부가 겹쳐 만드는 섬세한 표면의 질감을 들으려 애쓰면 연속적으로 반짝이는 결들이 느껴지는 곡이다. 이 곡의 리듬은 겉으로는 유동적이지만, 내부는 단단히 질서 잡혀 있고, 숨겨진 리듬은 우아함이 고정되어 있다. 이로 인해 당시 살롱의 분위기이었던 겉으로는 자연스러워 보이되, 극도로 통제된 분위기를 이 곡을 통해 생경하게 엿볼 수 있다.
2) 루주(Le rouge): ‘혈색’이 아니라 ‘통제된 열정’의 표식
완벽하게 희게 만든 얼굴 위에 루주(볼·입술의 붉음)를 바르는 행위는, 생리적 홍조를 모방하면서도 홍조의 원인(수줍음, 흥분, 욕망)을 제거했다. 다시 말해 감정의 자연발생이 아니라 감정의 디자인이었다. 루주는 절제된 관능을 시각화했고, 동시에 나이·계급·평판에 따라 도덕적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살롱에서 루주는 대화의 리듬과도 맞물렸다. 논쟁이 격해져도 얼굴은 정돈되어 있어야 했고, 말이 유려할수록 표정은 더 관리되어야 했다. 루주는 그 관리의 일부였고,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호를 붉은 루즈로 드러내는 셈이었다. 당시 붉은 루즈의 느낌을 잘 반영된 곡으로는 장-필리프 라모(Jean-Philippe Rameau)가 작곡의 이국의 인물들(Les Sauvages)이란 곡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살롱에서 루주는 단순한 혈색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감정 표출보다는 디자인(연출)된 표정으로 전환하는 도구이듯이, 라모의 이국의 인물들 (Les Sauvages)은 제목부터가 캐릭터(인물/장면) 음악이며, 리듬과 악센트가 강해 단숨에 시선을 잡아끄는 색감을 갖는다. 파우더가 표면을 균질화했다면, 루주는 그 표면 위에 의도적인 생기와 위신을 콕 찍어 넣는 장치인데, 이 곡은 바로 그 선명한 대비(하얀 바탕 위 붉은 포인트)를 소리로 재현한다.
리듬의 발화라 할 수 있는 규칙적인 박 안에서 갑자기 튀는 악센트는 볼의 붉음처럼 순간순간 등장한다. 우아함과 쾌락과 유희의 야성이 공존했던 살롱의 미학은 순수한 자연이 아니라, 자연을 길들여 전시하는 방식이었듯이, 이 곡을 통해 이국적인 긴장감을 들을 수 있다.
3) 점패치((Les mouches): 얼굴 위의 미시적 기호학, 그리고 ‘대화의 단축키’
점패치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당시 흉터(특히 천연두 자국 등)를 숨기는 실용적 이유에서 출발해 인공 점의 유희와 쾌락으로 확장된다. 점패치의 또 하나의 핵심은 휴대성이었다. 점패치와 루주를 함께 담는 작은 상자(boîte à mouches)는 살롱 문화의 이동성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즉, 점패치는 표정의 도구이자 휴대 가능한 커뮤니케이션 장치였다. 말로 길게 설명하지 않고도 오늘의 나는 이 표정을 취한다는 선언을 얼굴에 부착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점패치 위치별 의미(예: 눈가=열정, 입가=유혹 등)는 당대 풍자화와 에티켓 담론 그리고 후대의 기록에서 자주 언급되지만, 지역·시기·집단에 따라 그 변주가 큰 살롱의 속어에 가까웠다. 점패치는 당시 살롱 문화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소비하는 게임 자체를 만들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살롱의 대화가 암호와 뉘앙스로 굴러가듯, 얼굴의 패치 또한 살롱의 유희와 쾌락을 위한 암호였다.
이런 점패치와 잘 어울리는 곡으로 장-필리프 라모 (Jean-Philippe Rameau)의 무심한 여인(L’Indifférente)이란 곡을 들 수 있다. 점패치는 점 하나를 찍는 그 사소함이 오히려 살롱에서는 강력한 신호가 되었듯이, 라모의 무심한 여인은 “나는 무심한 척한다.” 또는 “나는 지금 이 대화를 가볍게 처리한다.” 같은 태도를 얼굴에 장착하는 셈이었다. 무심한 여인 (L’Indifférente)은 제목부터가 태도(affect)를 나타낸다. 점패치가 수행하는 것이 바로 “태도의 표면화”이기 때문에, 이 곡은 패치의 정치성을 가장 우아하게 음악으로 번역한 곡이라 할 수 있다.
곡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억양(프레이징)은 서로의 대화가 비켜 가는 모습이며, 종지부를 띡지 않고 살짝 옆으로 빠지는 듯한 종지부는 무심한 척하는 기술처럼 들린다. 이런 곡의 분위기는 당시 살롱을 찾은 이들이 미세한 표정으로 주고받는 암시를 읽어내며 들으면 좋은 곡이다.
4) 하이힐(Les talons hauts): 걷기 위한 신발이 아니라 “선별된 접근권”의
권력을 나타낸다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의 하이힐은 기능적으로 불편할수록, 사회적으로 그 위상을 인정받는 데 유리하게 작동했다. 특히 루이 14세의 궁정에서 굽이 높고 붉을수록 권력이 크다는 문법이 강하게 작동했고, 1670년경에는 귀족만 굽을 신을 수 있도록 제한하는 조치가 있었다.

당시 하이힐은 키를 키우는 도구이자, 바닥(거리·진흙·노동)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도구였다. 결국 “나는 땅 위를 걷지만, 땅의 규칙에 속하지 않는다”라는 시각적 선언이었다. 살롱에서 하이힐은 단순히 패션이 아니라 동선과 시선의 권력을 재편했다. 앉고 서는 자세, 인사 동작,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방식까지 살롱에서 대화의 무대 자체가 신발에 의해 조정되었다.
이런 하이힐의 권력을 잘 드러내는 곡이 바로 장-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의튀르크식 의식을 위한 행진곡 (Marche pour la Cérémonie des Turcs) 이다.
하이힐은 살롱에서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왕실이나 상류사회에서 걷는 방식(보폭·자세·정지)을 하나의 계급적 형태로 바꾸는 장치였다. 행진곡 역시 그 자체로 몸의 리듬을 강제한다. 특히 륄리의 궁정 음악은 걸음과 의전을 설계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어, 하이힐의 정치성(불편을 견디며 우아함을 생산하는 몸)을 소리로 즉각 재현한다.
이 곡의 리듬은 가볍게 흐르는 것보다는, 마치 하이힐의 높은 굽이 바닥을 눌러 찍어 대며 리듬의 압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곡이다. 즉 음악이 사람을 일렬로 정렬시키는 느낌이 든다면 제대로 듣고 있는 것으로, 당시 의전이 펼쳐지는 공간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곡이다.
5) 화장품 보관함, 부아트 (La boîte) : 휴대가 가능하고 언제나 ‘자기 수정’과 ‘소지 자체가 소지자의 위신’을 대변한다
점패치·루주·브러시·거울을 담는 화장품 보관함 부아트(La boîte)는, 단지 수납이 아니라, 언제든 표면을 다시 정렬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살롱의 핵심 아이템이었다.

18세기 중엽 파리에서 고급 잡화·장식미술품을 기획·중개·조달하던 상인으로 활동한 라자르 뒤보 (Lazare Duvaux))는 로코코 시대 살롱과 궁정이 원하는 작고 정교한 사치를 기획·조달·큐레이션하던 핵심 인물로 그의 장부 기록(1748–1758)에 의하면 점패치와 루주 상자가 1755년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부인에게 공급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1770년 혼인 예물함에 포함된 화장품 보관함과 보관함 속의 루즈 그리고 점패치(boîte-à-rouge et à mouches)가 고가(1,200리브르)였다 한다. 이런 상자는 꾸밈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선물·소유·취향의 정치학을 보여 주는 아이템이었다. 누가 어떤 상자를 갖고 있느냐는, 누가 어떤 네트워크에 접근 가능한지를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화장품 보관함 부아트(La boîte)는 하나의 오브제 안에 파우더, 루주, 패치, 브러시, 거울 같은 것을 넣을 수 있도록 작고 기능적인 칸들로 꾸며졌다.
이런 부아트(La boîte)의 모습이 연상되는 곡으로 쿠프랭(François Couperin)의 실내악 모음곡 결합한 취향들 (Les goûts-réünis)을 들 수 있다. 각각의 모음곡 한 곡 안에서도 짧은 악장에서도 곡의 성격이 연속적으로 바뀌며, 각 악장이 마치 뚜껑을 열어 칸을 하나씩 꺼내는 느낌을 만든다. 쿠프랭의 모음곡은 살롱에서 소지품을 열어 보여 주는 행위(자기 연출·취향 과시)와 구조적으로 닮아있다.
악장이 바뀔 때마다 부아트(La boîte) 속 다른 칸이 열리는 듯한 성격 전환, 우아함과 단정함 그리고 가벼운 재치가 느껴지며, 부아트(La boîte)란 오브제의 세공처럼 정교한 디테일이 프랑스식 장식음과 균형감을 통해 발산하는 곡이다.
6) 향수(Le parfum): 보이지 않게 공간을 점유하는 ‘후각의 의전’
살롱 문화에서 향수는 개인의 향만이 아니라 공간의 향(공기의 편집)이었다. 당시는 바깥의 신선한 공기가 의심스러워 창문을 닫고, 포푸리(pot-pourri) 즉 향기 용기를 통해 실내 공기를 향으로 채우는 관습이 있었다.

베르사유 자료에 의하면, 18세기 궁정에서 향수와 메이크업이 필수품이 되었고, 루이 15세 치세에는 매일 다른 향을 착용할 정도로 향기로운 궁정(perfumed court)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향 분말·포마드·화장품·향수·향수 물 등이 옷장과 치장 품의 핵심이었다 적고 있다. 당시 향수는 매우 정치적 역할로 기능을 했다. 왜냐하면 향은 말보다 빨리 기억을 호하기 때문이다. 살롱에서 특정 향은 특정 인물·가문·파벌을 연상시키는 후각적 서명으로, 한마디로 기억의 정치화였다.
그리고 향은 공간을 점유한다. 시각은 시선을 돌리면 끝나지만, 냄새는 방 전체를 장악한다. 살롱이 대화가 이루어지는 극장이라면, 향수는 관객의 감각적 반응을 미리 유도하고 조율하는 무대 장치였다. 즉 향수는 살롱에서 단지 좋은 냄새가 아니라, 공기까지 정치적 편집의 대상이었다. 시선을 피하면 끝나는 장식과 달리, 향은 방 전체에 퍼져 공간의 분위기·거리·대화의 온도 등 모든 요소를 조율할 수 있었다.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의 사계(Le quattro stagioni) 중 겨울(L’inverno) 1악장 알레그로 논 몰토(Allegro non molto)는 바로 이런 공기를 음악적 움직임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향의 핵심은 잔향과 향의 확산인데, 겨울 1악장의 음형은 따뜻하게 번지기보다 날카롭게 흩어지고 사라지며, 다시 재등장한다. 이는 향이 피부 위에 한 번에 내려앉아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살롱에 모인 이들의 움직임과 체온,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옷감에 따라 미세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겨울 1악장은 또 한편으로는 그 향의 음형이 선명한 깨끗함과 절제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혁명을 예상이라도 하듯이 긴장감을 유도하고 전달한다. 겨울 1악장은 향수의 정치성을 쾌락이 아닌 통제의 방향으로 읽게 해준다. 즉, 이 곡은 향으로 공간을 부드럽게 채우는, 향을 확산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향으로 공기를 정돈하고 태도를 규정하는 쪽에 가까워, 듣는 이들을 살벌하게 제압하는 빠르고 날카로운 음형이 압권이다. 빠른 반복 음형과 날 선 리듬은 향이 공기 중에 퍼질 때의 입자감이라기보다, 차가운 공기가 폐로 들어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당시 살롱에서 향수는 거리를 관리했다. 가까이 오면 더 진하고, 멀어지면 희미해졌다. 이 1악장은 그러한 거리의 변동을 청각적으로 구현한다. 즉 멜로디를 따라가기보다, 현악의 반복이 만드는 공간의 결(텍스처)을 공기 자체로 인식해 들으면, 갖가지 향들의 확산이 한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곡이다.
“오늘날 살롱 음악회에서 바로크·로코코 음악의 효과적 감상법?”
현대의 살롱 음악회에서 쿠프랭·라모·텔레만·비발디 등 바로크·로코코 레퍼토리를 듣는 행위는, 단지 과거의 소리를 현재에 재현하는 일에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바로크·로코코 레퍼토리만큼 잘못된 방향성으로 접근하면, 백색소음이 될 확률이 높은 레퍼토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방향성 중 하나는 당시 살롱은 원래 부·교양·지위의 전시장이었고, 그 전시는 음악과 함께 운영되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따라서 강렬한 효과의 바로크·로코코 음악의 재생산은, 당시 살롱의 가구 배치와 동선이 갖는 의미, 그리고 당시 화장품·향수 등의 뷰티의 도구들을 당시 음악과 잘 접목해 음악을 둘러싼 섬세하고 세밀하게 조작된 감각·동선·기호를 현대의 살롱에서도 세밀하게 설계할 때 더욱 매혹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바로크·로코코 시대 음악 레퍼토리를 표면(투알레트, toilette), 공기(향), 기호(점패치), 동선(거구와 하이힐의 정치성) 등을 고려하고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관객은 바로크·로코코를 단지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작동시킨 권력과 쾌락 그리고 유희의 미학을 몸으로 그리고 공기로 그 음의 결들로 색다르게 경험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