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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을 사랑하며 전통을 그리는 작가, 이승희

다 다른 돌담은
우리의 삶처럼 얼룩지고
또 굴곡이 져 있었어요.

K-Classic News 원종섭 기자 |

 

 

안동의 출향 예술인

 

안동을 사랑하며 전통을 그리는 작가, 이승희

 

 

 

 

 

 안동의 자연을 그리며 안동의 오랜 풍경을 아끼는 화가, 이승희. 그 작가를 만났다. 그녀가 그린 그림을 보면 오래 전의 안동과 지금 안동의 변하지 않는 그리운 풍경을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녀는 수동을 지나 하회마을, 봉정사 가는 길, 안동에서 봉화로 가는 길목, 예고개에서 평은으로 가는 길, 옹천, 영주 등 마을 풍경이나 계절별로 피는 꽃들, 그런 정감이 있고 익숙한 풍경을 그린다. 또 강이나 반변천을 따라다니면서 그림의 소재를 찾았고, 어느 작은 동네의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그러나 오래 기억하고 싶은 풍경을 그린다. 

 

 “다른 지역에서 전시를 할 때, 관람객들에게 작품 설명을 하다 보면 작품의 소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런 기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안동을 소개하고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되지요.” 

 

 “특히 어린 날 시골에서 살았거나 그런 시골풍경을 그리워하는 분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많다 보니 도시 사람들은 그런 풍경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안동을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어떤 분은 제 그림을 관람하면서 ‘지금은 내 고향이 없어졌는데...”하시면서 고향 생각에 우는 분도 계셨어요.

 

 “지금은 안동과 인근 지역이 가진 전통적이고 고풍스러운 형태를 활용한 다양한 그림의 소재를 찾아 나서고 있고, 그 가운데 전통 돌담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 돌담 역시 문경의 김용사에서 본 토담 형태의 굴뚝에서 소재를 얻게 되었지요. 다른 절을 찾아 굴뚝과 담도 관찰하면서 아름다움을 작품에 표현하고자 했어요. 같은 듯, 다 다른 돌담은 우리의 삶처럼 얼룩지고 또 굴곡이 져 있었어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안동이다 보니 주로 안동이나 안동 인근 지역의 풍경들이 작품의 주된 소재가 될 수밖에 없지요. 자연에서 소재를 구하는 만큼 자연 친화적인 따뜻함이 제 그림의 특징이기도 해요.”  

 

 

 

 

 

 이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서울 인근 남양주에 사는 안동출신 화가이자 작가인 반윤희 선생님에게서 소개를 받았다. 만나고 보니 그녀는 안동출신이 아니고 안동으로 와서 살고 시집을 온 사람이었다. 여자로서 유교의 색채가 많이 남아있고, 엄격한 전통 격식이 남아있는 고장으로 와서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그녀는 안동을 좋아하고 아껴서 스스로 안동사람이 되고자 한 사람이었다. 

 

 

 필자의 고등학교 동기 중에서 고향을 떠나 살다가 은퇴를 한 지금, 고향으로 와서 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부인들이 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안동에 가서 산단 말인가?’ 안동이 고향인 그녀들의 남편들, 그녀들은 시집이 안동이든, 친정이 안동이든 여자로서 안동에 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럼 이 작가는 어떻게 해서 안동에 정착하고 살게 되었을까? 

“안동은 제 외가라서 유년시절을 안동에서 보냈어요. 안동 화성동에는 큰 외삼촌댁이 있었고, 천전에는 작은 외삼촌께서 사셨어요.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기 이전의 임동 지례, 즉 지금의 지례예술촌 자리에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사셨어요. 마침 비슷한 나이의 외사촌 언니가 둘이나 있어서 이 세 곳을 오가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요. 또 결혼을 늦게 한 이모가 있어서 언제나 외가에 오면 저를 반겨줄 사람들이 있었던 거죠.”

 

이 작가가 태어난 곳은 서울 성북구 안암동이고, 자란 곳은 안암동과 고 3 때 이사한 강남구 신사동이다. 대학까지 모두 서울에서 마쳤다. 

 

 “지금은 수몰로 인해 없어진 지례국민학교를 한 1년 정도 다녔어요. 그리고 서울로 가서 정식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해 다니면서 방학마다 외가에 와서 지냈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 안동으로 오는 데는 전혀 거부감이 없었지요. 오히려 어릴 적 추억이 있어 너무 좋았어요.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분의 소개로 안동이 고향인 남편을 만나서 결혼도 하게 되었고요.”

 

 

 “그러니 제가 좋아하는 안동에 그냥 이끌리 듯 온 거죠. 그게 제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결혼을 하고도 시부모님께 별 불평 없이 늘 가까이 의지하며 지낸 것을 보면 아무래도 저 역시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대학 때의 전공에 따라 안동에서 음악선생님이 되었다. 안동과의 인연으로 인해 안동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제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면서 음악치료, 미술치료, 웃음치료를 공부했어요. 음악과 미술을 연계한 교육도 해 보았어요. 5월이면 어버이에 관한 노래를 가르쳐 함께 부르고 난 후 조별로 색연필과 종이를 나누어주고 가족화를 그리도록 했어요. 미술치료의 일환이었지요. 그런데 한 학생이 그림을 그리다 말고 엉엉 소리 내어 우는 거예요. 당황해서 우선 달랬는데, 수업이 끝나고 들으니 얼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많이 당황했지만 제게도 수업시간 활동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ㄴ악 및 미술치료가 학생들의 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지요”

 “또 음악 시간에 ‘노래 잘한다’라고 몇 번 칭찬을 한 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이 대학의 일반학과에 진학했다가 ‘내가 할 것은 음악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다시 성악을 공부해서 음악 대학에 진학한 그 제자를 만났는데 물론 칭찬에 대한 보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제대로 가르쳐야겠구나’하고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어요.”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면서 보람 있었던 일을 열거해 본다면,

 “학생들이 교사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하려고 애쓰듯, 교사도 역시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의 관심과 반응으로 보람도 느끼고 ‘더 잘 가르쳐야겠구나’라고 다짐을 하지요. 결국 모든 것은 상호 작용이라 생각해요.”

 

 

 

                   꽃그늘 아래  116.8×91.0  Olil on canvas

 

 

 “노래뿐만 아니라 실생활에 도움이 될 악기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기타를 신청해서 간단한 노래 정도는 스스로 기타 반주하면서 부를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가르쳤어요. 견디는 힘이 적은 학생들이 손가락도 아파하고 코드 외우기를 많이 힘들어했지만, 교원평가에서 ‘기타 배우기가 비록 어려웠지만 너무 좋았다’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학생 개개인을 일일이 가르쳐야 했던 힘든 시간들을 모두 잊을 수 있었어요.”

 

 “‘보이스원’이라는 가요중창 동아리가 있었어요. 매년 가을 예술제가 끝나면 캐럴을 연습해서 12월 성탄절에 맞춰서 인근 요양원에 공연봉사를 가곤 했어요. 많은 몸이 불편하신 어른들이 강당으로 나와서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손잡아주시며 좋아하시는 모습들을 보고 학생들이 더 기뻐했어요.”

 

 “합창이나, 가요중창, 밴드부, 기타반을 운영해서 교내 및 교외 행사에 참가하면서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가지게 하였지요. 학생들에게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고, 건전한 청소년 문화를 만든다는 생각에 참 보람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음악을 하면서도 정말 하고 싶은 다른 분야. 어릴 때부터 늘 하고 싶었던 분야가 그림이었어요. 늘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소묘, 수채화 등을 배우다가 본격적으로 유화를 하게 되었고, 서울에서 전시를 할 때 올케언니의 소개로 변춘희선생님을 만나 서울의 미술협회에 입회하면서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림을 시작하면서 정말 열심히 하였고, 무언가의 만족감, 열정, 그런 것이 함께하여 늘 즐겁기만 했어요.” 

 

 “가족은 남편과 아들이 둘, 모두 네 식구지요.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서울에서 각기 따로 사는데, 나이 차이가 있어서인지 작은 아들이 형을 조금 어려워하면서 깍듯하게 대합니다. 늘 서로 알콩달콩 지내는 것을 보면 흐뭇하기도 해요. 서울에 살지만, 안동정서가 가득한 게 다행이고요. 늘 고향이 안동이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어요.” 

 

 주요 경력으로는 조금 늦게 시작한 그림이지만 다양하고 풍성하다. 아마도 좋아하는 것을 하기에 더 열심히, 집중하여 활동에 매진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초대전을 포함한 개인전 12회(안동, 대구, 영월, 서울 등), 아트페어 5회, 단체전으로 한국미술창작협회 경북지회전(안동민속박물관 별관전시실), 반구대암각화전(울산문화예술회관), 인사동비엔날레(한국미술관), 모란꽃사생작가 초대전(강동아트센터 아트랑), UScruise특별작가 초대전(한강UScruise), 여류작가초대 ‘5월의 향기’전(영주 즈음갤러리), 경북예총주관 경북청년작가회 자작나무전(경북갤러리), 영호남상생미술교류전(동락관), 대한민국친환경예술협회전(범어아트웨이), 인사동사람들전(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오사카갤러리 7주년기념전(일본 오사카갤러리), 등 150여 회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크고 작은 상을 많이 받았다. 주요 수상을 꼽는다면 제15회 대한민국현대미술총람회전 올해의 예술인상, 국제친환경현대미술작가초대전 우수작품상, 경상북도미술대전 우수상, 특선, 입선,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입선 등의 수상을 들 수 있다.

 

 현재는 서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안동 작가들의 모임인 ‘Art 안동’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미술협회, 안동미술협회, 대한민국회화제, 신미술회 회원, 청색회 감사, 서울미협 이사, 신구상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타지 여성으로 안동에서 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인데, 향후 여성이 안동에 와서도 잘 살게 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씀은 안동의 특성상 유교적인 생각을 가지신 어른들이 많이 계시고 보수적인 도시란 뜻으로 받아들여지네요.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말처럼 안동은 전통과 문화를 자랑하는 곳이지요. 전통을 유지하고 문화와 역사를 중시 여기며, 문중과 가족의 중요성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한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실 안동의 어른들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여겨집니다. 전통을 중시하고 예를 갖추고 차리는 것이 보수적이라 힘들거나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것이 주는 안정감이나 가치들을 존중하고 잘 활용한다면 자신은 물론, 안동의 발전으로 이어지겠지요.”

 

 

 “여성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잘 할 수 있는 여건이 더 만들어지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자아실현의 만족도도 높일 수 있다면 좋겠지요. 아이 낳고 기르는 것이 행복이 되는 여성 친화 도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배가 된다면 여성 인재들이 안동으로 많이 오지 않을까요. 과거 전통적인 것들 가운데도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변화를 시키고, 미래 사회를 이끌어가는 데 여성의 역할의 중요성을 인정해 준다면 금상첨화이겠지요.” 

 

 “사람은 저마다 가진 가치관이나 성향이 다르지요. 그러나 전통적인 분위기나 유교적인 환경을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성이라면 안동에 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시만 고집할 게 아니라 안동 같은 소도시가 가지는  문화나 혜택을 찾아 누리고,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가면서, 안동만의 장점을 찾아간다면 안동에 사는 여성으로써의 자존감이 높아지겠지요.”

 

 “그것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것을 도시적인 것으로,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가장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글로벌 안동, 글로벌 한국으로 나아가는 희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왕성하게 개인전을 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기존에 그리던 것에서 좀 다른 그림으로 바꾸고 있어요. 5월에 서울 인사동에서 5인전을 가질 생각이고, 가을 쯤 개인전을 할 계획이예요. 단체전은 항상 계획한 것보다 많이 참가하게 되는데 제가 속한 단체의 전시나 꼭 필요한 전시에만 참가할 생각입니다. 제 개인적인 작업을 좀 더 열심히 하는 방향으로 내실을 다질 생각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안동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2022년 2월에 퇴직을 하고 자유의 몸이 되면서 오로지 그림에 전념하고 있어 제 그림에 대해 생산(?)과 판매를 고민하는 전업 작가가 되어 살아가고 있어요. 제가 안동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지만 서울에도 가입한 단체들이 있어 작가들과 알게 되고 여러 작가들과 연결되다 보니 전시도 많아지고 임무도 맡겨지니 점점 더 바빠져서 안동과 서울을 바삐 오가고 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타 지역에 안동의 아름다운 모습을 알리면서 보다 품격있는 안동을 소개하는데 일조를 하고요, 늘 즐겁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저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자료  제공  시인, 수필가 서정문 poet072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