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성용원 평론가 리뷰 ] 김준한 피아노 리사이틀 앙코르( 2026년 1월 10일(토) 오후 7시 30분, JCC아트센터)

온라인 1, 000만 이상의 호흥, 왜 오프라인 죄석을 비게 할까?

K-Classic News 성용원 평론가 |

 

 

드뷔시는 자신이 평론하는 이유에 대해 “바흐의 푸가와 거리에 울려 퍼지는 <로렌 행진곡>이 비슷한 취급을 받는 세상에서 참다운 가치를 확립하고 각각의 제자리를 찾아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바흐의 푸가와 거리에 울려 퍼지는 트로트나 K-Pop이 비슷한 취급을 받는 그것이 부당하고 온갖 자극적이고 물질만능주의적인 세태에 클래식 음악의 참다운 가치를 알리고 싶어서”라고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드뷔시의 문장을 조금만 바꾸면 필자도 마찬가지다.

 

클래식 우월주의에 빠졌네, 속물이네, 왕꼰대네, 선민사상이네. 떠들어도 상관없다. 필자는 클래식 음악인이요 이게 내 철학이다. 베를리오즈는 “연주자들은 작품의 내적 의미와 형식을 분명히 나타낼 목적으로 사용되는, 다소 지능의 차이를 보이는 악기에 불과하다.”라고 일갈했다. 작곡가인 필자 역시 100퍼센트, 10,000퍼센트 동감한다. 내가 쓴 작품을 내 의도와 취지에 맞게 잘 재현해 주면 되는 거고 이걸 거슬러 올라가면 이지피아노든 부흐딘더 등 악보와 작품 위주로 비평할 수밖에 없는 작곡가 DNA다. 그러니 연주자들의 허세와 에고 그리고 자만은 극도로 거부 반응이 들고 그저 작품을 이용, 자신이 유명해지고 출세 수단으로 삼으려는 자들을 경멸하고 저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범람하는 미디어 시대에 넘치는 게 클래식 관련 채널이요 콘텐츠요 서점에만 가도 온갖 종류의 서적이 쌓여있다. 어떻게라도 짧은 순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유통과 판매로 이어져 수익을 내려는 목적으로 자극적인 썸네일과 신변잡기 위주의 시답잖은 기사, 아니면 음악하고는 하등 상관없는 업계 비하인드 스토리나 악기 가격, 입시, 콩쿠르 등이 태반인데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으로 다들 포장만 다를 뿐 부실한 내용물은 비슷비슷하고 말 그대로 킬링타임 이상과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남는 것도 없다. 그래서 필자는 또 정보와 자료가 부족해서 클래식 음악 접근이 어렵다는 등, 클래식 음악도 어떻게라도 쉽게 만들고 보편화해서 보급해 대중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등의 궤변엔 두드러기만 난다.

 

일반인들에게는 클래식은 반려동물이나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와 같다. 그런 소리를 1~2분도 아니요 1시간 내내 부동 자세로 정신을 집중해서 들어야 하니 죽을 맛일 테다. 가사도 없이 <야상곡>이란 제목으로 밤의 느낌이 어디에서, 어떤 음표에서 나오는지 무언지 모를 것이며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막연하기만 하다. 아무것도 아니요, 무언지 모를 것을 설명해 주어야 해서 시학과 수사학과 회화의 전문 용어들에 기대기 마련이며 애초에 담을 수 없었던 언어와 이미지로 번역하는 일인데 헛되도다. 음악의 본성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이미 포기했다. 취향은 이미 정해졌고 교육으로서 인도 할 순 있지만 어느 순간 바뀌기 힘들다는 거 너무나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필자에게 수업을 들은 10,000명의 새로운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이 생겨야 마땅하다. 개강하자 자신이 클래식 매니아라 수업을 신청했다고 자부하던 학생이 종강하고 자신은 클래식을 좋아한 게 아니라 ‘양인모’를 좋아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끌려와 누가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도 모르고 하품만 쩍쩍하고 앉아있다 간 학생이 F 학점 받으면 클래식과 영원히 빠이빠이 할 거라고 제발 점수 잘 주라고 간청한 국립단체 관계자의 호소가 귓가에 아른거린다.

 

유튜브 80만 구독 채널 ‘또모’에서 총 1,0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돌파했다고 홍보한 피아니스트 김준한의 독주회에 발품을 팔았다. 평론가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하나가 훌륭한 음악가를 발굴, 소개하고 알리는 일이니까. 정보와 관종 과잉으로 올바른 진실을 판별하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해졌다. 겉으로 포장된 온갖 치장과 자기 PR, 과장광고와 매스컴의 호들갑에, 세상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어 어떻게든 튀어보려는 좋아요!가 아닌 진짜를 구별하는 거야말로 그래서 오직 음악에만 헌정하는 무한한 평화이자 영광인데 그런 여정은 거리와 모진 기후도 막지 못한다.

 

일반인들의 상식과 생각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이해가 안 될 비경제적이고 소모적이고 쓸모없는 고생은 연주만 잘한다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고 연주만 잘하고 무지, 무례, 무식한 어중이떠중이만 없다면 왕복 3시간 이상이 걸리든 KTX를 타고 내려 서부 끄트머리에 있는 낙동아트센터가 되었든 얼마든지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있다. 바흐는 한 달 휴가를 허락받고 아른슈타트에서 뤼베크까지 약 500㎞나 되는 거리를 직접 걸어가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의 오르간 연주를 듣고 왔다. 왕복 1,000㎞나 되는 거리도 마다하지 않은 18살의 바흐처럼 클래식 음악에 목말라 있는 관객에 대한 보답이자 예의요 지속 가능한 만족이자 신규고객 창출일 될 테니까. 그런데 과연 오늘 김준한의 피아노 리사이틀이 그만큼 만족을 준 시간이었느냐는 질문에는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1,000만 이상의 영상을 본 1,000만 명들은 다들 어디 갔는가? 그 숫자가 무색하게도 하루가 멀다고 열리는 무명 연주자들의 온갖 발표회와 별반 차이가 없는 집안 잔치요 무조건 칭송하고 찬양하는 열성 마니아들을 모아놓은 팬클럽 모임 같았다.

 

 

멋도 모르고 길거리에서 "도를 믿으십니까?"에 끌려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도 하고 예배를 보는 무리 틈에 끼어 혼자서만 “왜 이렇게 슈만은 틀리지? 슈만 ‘사냥의 노래’는 왜 악보를 헤매?” 미간을 찌푸리고 앉아 있었다. 첫 곡인 쇼팽은 왜 자기 마음대로 있지도 않은 즉흥을 첨부하지? 존대법과 문장 구사가 형편없는 와중에 유연하지 못한 설명과 발음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그리고 하려면 제대로 전문가에게 교육을 받고 공부를 하고 제발 연주자들이 어설프게 마이크 잡지 말고 그럴 바엔 연습에나 충실히 하라고 강조했건만…. 정말 이렇게 했는데 1,000만 이상이라면 이게 대중의 힘인가?

 

그렇다면 그게 고스란히 오프라인에도 적용이 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텅텅 빈 좌석은 무엇을 반증하는가? 그저 누워서 이리저리 채널 돌려가면서 낄낄거리고 웃고 자극적인 것에만 함몰되면서 무엇이 올바르고 그른지도 판명하지 못하면서 소비만 하는 조회수는 허상이지 않을까? 정말 드문 예외를 제외한다면 음악이나 음악가의 평가가 그저 선입견과 이미지로만 이루어지고 개탄스럽기 짝이 없는 편견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만 또 증명한 꼴 아닌가?

 

한편으로는 김준한 또래 음악 전공자들의 고심도 어렴풋이나마 느껴졌다. 한 해에 셀 수 없이 배출되는 음악 전공자들의 생계와 취업이 막막한 현실에서 콩쿠르를 통해 알려진 한 줌도 안 되는 몇몇을 제외하곤, 그래서 나이 30을 넘어서도 어떻게라도 콩쿠르에 나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고 발버둥을 치고, 그 정도 실력이 안 되면 플랫폼을 통해 자기만의 브랜드를 창출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거다. 매시업을 통한 꾸준한 콘텐츠의 제공과 확산으로 기존에 한정된 인쇄매체와 학교라는 틀 안의 비자발적인 범위를 뛰어넘어 인플루언서로 자신을 원하고 찾아주는 팔로워들을 만나 새로운 영역과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려는 노력일 테니.

 

작품 외적인 인상이 전부 인양 무대 예절이나 연주가의 체질을 바라보는 관객의 기호를 음악가의 음악 세계나 연주한 곡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예술가를 바라보는 필자의 개인적인 사고방식에 불과하겠지만, 바흐의 푸가와 베토벤의 소나타가 거리의 술 취한 장삼이사의 노래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 세상에서 참다운 가치를 확립하고 각각의 제자리를 찾아주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