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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읍내>를 6월 22일(목)부터 6월 25일(일)까지 달오름극장에서 초연

다양한 실험과 언어, 비언어가 융합되는 작품성에 주목

K-Classic News 탁계석 기자 |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은 연극 <우리 읍내>를 6월 22일(목)부터 6월 25일(일)까지 달오름극장에서 초연한다. 소소한 일상의 가치를 그려낸 미국 극작가 손턴 와일더의 동명 희곡을 한국적으로 각색하고, 장애인을 가족‧친구로 둔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이다. 작품의 각색과 연출‧음악은 신체 언어 활용에 능한 연출가 임도완이 맡았다. 한글 자막과 음성 해설, 수어 통역이 함께하는 무장애(배리어 프리, Barrier-free) 공연으로 선보인다. 

 

연극 <우리 읍내>의 원작은 미국 극작가 손턴 와일더의 희곡으로, 1938년 발표해 퓰리처상을 받은 이후 세계무대에서 꾸준히 공연된 작품이다. 미국 뉴햄프셔주의 작은 마을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던진다. 각색을 맡은 임도완은 평범한 일상으로 흘러가는 원작의 큰 틀은 유지하면서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작품의 시대적‧지역적 배경을 1980년대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 읍내로 옮겨왔다. 이와 동시에 등장인물의 설정을 바꿔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의 일상과 애환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자연스레 보여준다. 임 연출가는 “음성언어나 수어, 어떤 형태든 언어를 알아듣는다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각색 과정에서 농인 가족을 등장시켜 침묵이 흐르는 수어의 순간에 서로의 마음속 헤아림의 언어를 들려주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작품을 각색한 임도완은 연출과 음악까지 맡아 장기를 십분 발휘한다. 임도완은 극단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소장이자 한국 신체극의 선두주자로, 지나치게 설명적인 무대미술을 지양하고 움직임과 마임 등을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원작에서 빈 무대와 최소한의 소품, 마임의 활용 등 연극적 요소를 강조한 만큼 임도완 연출가의 특기가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임도완은 작품의 주제가도 직접 작곡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아름답게 노래한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가사로 차용해 극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또한, 시대적 분위기를 드러내는 대중가요‧계몽가요 등으로 극적 재미를 배가한다. 여기에 무대디자이너 정승호, 조명디자이너 신호, 의상·장신구 디자이너 이주희 등 관록의 제작진이 합세해 관객의 몰입을 높인다.

 

농인, 청인 배우 14명 수어 통역사, 음성 해설사도 

 

연극 <우리 읍내>는 농인(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배우 2명과 청인(음성언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비장애인) 배우 14명, 수어 통역사 5명, 음성 해설사 1명이 무대에 올라 누구나 겪는 일상과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삶의 모습을 그려낸다. 작품은 총 3막으로 구성된다. 1막에서는 마을의 하루를, 2막은 성장과 결혼을, 3막은 죽은 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관객과 직접 소통하며 전지적 관점에서 극을 해설하는 무대감독 역은 연극배우 구본혁이 연기한다. 원작의 에밀리에서 청각 장애를 지닌 황현영으로 바뀐 역할은 농인 배우 박지영이 맡았다. 박지영은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여자연기상에 농인 배우 최초로 후보에 오르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농인 예술단체 핸드스피크 소속 배우 김우경도 신문 배달부 역과 무대감독의 수어 통역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이외에도 황현영의 단짝 김민규 역에 안창현을 비롯해 연극배우 권재원‧김미령‧성원‧이정은 등이 출연해 열연을 펼친다.

 

무장애 공연으로 진행되는 연극 <우리 읍내>는 장애의 유무를 떠나 작품을 새롭게 감각하는 방법으로써 음성 해설과 수어 통역을 다룬다. FM수신기를 통해 진행되는 음성해설의 경우,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누구든 대여할 수 있고, 모든 회차의 무대에 수어 통역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예매·문의 국립극장 홈페이지(www.ntok.go.kr) 또는 전화(02-2280-4114)

                                              

 

<우리 읍내> 

 
한국적 정서와 동시대적 요소를 살린 각색

장애인과 비장애인 공존하는 우리 사회 담아내

『우리 읍내』는 미국 극작가 손턴 와일더가 쓴 희곡으로 1938년 뉴욕 브로드웨이 초연 직후 평단의 극찬과 더불어 퓰리처상을 받아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세계에서 하루도 공연되지 않은 날이 없다고 할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난 현대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작품은 1900년대 초 미국 뉴햄프셔주의 인구 2,642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지만, 탄생부터 사랑과 결혼, 죽음까지 인간의 삶 전반을 소재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뤄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연극 <우리 읍내>를 각색한 임도완 연출가는 원작의 큰 줄기는 따라가면서 한국 관객에게 이질감 없이 다가갈 수 있도록 배경을 1980년대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으로 옮겨왔다. 임도완은 “원작에 나오는 마을 인구수와 80년대 평해읍 인구수(2,954명)가 가장 비슷해 선택했다”라며 “그뿐만 아니라, 표준어와 비교했을 때 방언이 가진 함축성과 리듬감을 작품에 담아보고자 했다”라고 덧붙였다. 임도완은 원작의 시공간 전체를 바꾼 만큼 지명부터 음식‧유머, 역사적 사건 등 세부적인 부분까지 한국적으로 각색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원작에서는 매일 담요 공장의 기적소리가 울리고 텃밭에 옥수수‧완두콩이 자라나는 전형적인 미국 시골 마을의 모습이 보이지만, 임도완 연출이 각색한 <우리 읍내>에서는 마을 회관에서 새마을 노래가 흘러나오고 텃밭에서는 상추와 패랭이가 자라난다. 한국사의 주요 사건도 대본 곳곳에 드러난다. 의사 김만석(원작 깁스)이 북에서 내려와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땅에 가보는 것이 소원인 인물로 등장하는가 하면, 극 중 쌍둥이가 태어나자 안동교육대 양주영 교수(원작 메사추세츠주립대학 윌라드 교수)가 “둘도 많다”를 외치며 산아제한 정책을 강화한 당시 시대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배경을 한국으로 옮겨온 것 이외에 원작의 에밀리 가정을 농 가정으로 설정한 것 역시 다른 점이다. 임도완은 “농인이 극 속에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함께 존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라며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라고 각색의 의미를 밝혔다. 각색 과정에서 그의 개인적인 경험도 대본에 녹아들었다. 어린 시절, 시력이 좋지 않은 동생에게 할머니가 “내 눈이라도 너한테 주고 싶다”라고 하시던 말씀을 떠올리며, 작품에서 농인 딸을 둔 유혜종이 “내 고막이라도 너한테 주고 싶다”라고 말하는 대사를 썼다.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가장 연극적인 무대

간결하고 구조적인 무대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해

 

손턴 와일더의 『우리 읍내』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가장 연극적인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은 일상의 삶을 그리지만, 형식적인 면에서는 극적 장치를 극대화하는 ‘극장주의(Theatricalism)’를 지향한다. 원작에는 특정한 시공간을 연상시킬 만한 무대장치는 물론, 여타 대소도구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최소한의 소품을 활용한 빈 무대에서 배우가 마임을 하는듯한 연기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도록 쓰여 있다. 또한, 원작자는 극적 장치로 ‘무대감독’이라는 해설자 역할을 배치해 관객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연극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게 했다. 의도적으로 관객이 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객관적으로 무대 위의 삶을 바라보고, 나아가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 것이다. 

 

연극적 장치가 강조된 손턴 와일더의 『우리 읍내』와 그간의 작업에서 잘 훈련된 연기자의 몸과 최소의 오브제만으로 새로운 극적 체험을 창조해온 연출가 임도완의 만남은 작품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여기에 뮤지컬 <레베카><엑스칼리버><스위니토드> 등에서 인상적 공간을 보여준 무대디자이너 정승호, 연극 <스카팽><만선>의 조명디자이너 신호, 의상·장신구 디자이너 이주희가 함께해 연극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대를 완성한다.

 

무대디자이너 정승호는 현대미술가 조셉 코넬이 박스 안에 여러 가지 오브제를 넣어 이미지화한 작업에 영감을 받아 감각적인 디자인을 선보여 왔다. 연극 <우리 읍내>에서도 정승호 디자이너 특유의 박스를 활용한 무대를 만날 수 있다. 이번 공연에는 두 종류의 박스가 사용된다. 하나는 프레임 형태의 박스로 임도완 연출이 옮겨온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을 입체적인 액자로 담아낸다. 여기에는 조명디자이너 신호가 구현한 평해읍의 아름다운 별, 가로등 불빛 등도 담겨 직접 보지 못한 평해읍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두 번째는 바퀴가 달린 4개의 박스다. 일종의 수레 무대로 극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배치되며 집‧길목‧교회‧학교 등 다양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무대디자이너 정승호는 “커다란 틀 안에 작은 요소들이 쌓여 삶이 완성되기 때문에 사람의 인생도 프레임 안에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누군가 내 인생을 정리한다면 그 역시 박스 안에 들어갈 것이고, 따지고 보면 극장 역시 하나의 거대한 박스다”라고 의도를 밝혔다.

 

농인‧청인 배우가 한 무대에

침묵 속에 펼쳐지는 수어 연기, 묵직한 울림 전해  

 

 

황혁찬 가족

 

황현영(원작 에밀리)과 김민규(원작 조지)
 
최소한의 무대 장치와 소품을 활용하는 가운데 배우들의 연기로 극을 이끌어가는 연극 <우리 읍내>는 배우들의 앙상블이 중요한 작품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농인 배우 2명과 청인 배우 14명, 총 16명의 배우가 함께 무대에 올라 호흡을 맞춘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수어와 음성언어로 대사를 주고받으며 작은 마을의 평범한 일상을 빚어낸다. 

 

특히, 농인 배우 박지영 김우경의 활약이 주목할 만하다. 농인 배우 최초로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여자연기상 후보에 올라 연기력을 인정받은 박지영이 황현영 역(원작 에밀리)을 맡았다. 박지영 배우는 “농인 배우들과 청인 배우들이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작업이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라며 “하지만 그만큼 많이 고민하고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우리 읍내> 무대에서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농인 예술단체 핸드스피크 소속의 김우경 배우는 맑은 눈빛과 장난꾸러기 같은 이미지를 지녀, 임도완 연출이 그를 보자마자 작품에서 맡을 역할과 무대감독 역의 배우와의 시너지를 떠올리며 단번에 캐스팅했다. 신문배달부 역을 맡은 김우경은 자연스럽게 극 해설을 위해 등장하는 무대감독의 수어 통역도 맡는다. 

 

작품에는 두 농인 배우의 ‘다름’과 특수한 경험도 녹아들었다. 황현영의 가족 황혁찬‧유혜종‧황현창 역과 연인 김민규 역을 맡은 배우는 이번 작품을 통해 수어를 익혔으며, 두 배우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조언을 받아 농인 가족의 생활상을 생생히 연기할 예정이다. 또한, 죽은 자들의 대화와 독백으로 채워지는 3막에서 째깍거리는 시계, 마당의 해바라기, 포근한 이불 등 소소한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낸 현영의 독백이 고요한 침묵 속에 수어로 펼쳐지는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전지적 관점의 해설자로 작품을 이끄는 무대감독 역은 연극 <보이첵><휴먼 코미디> 등으로 임도완 연출가와 호흡을 맞춰온 연극배우 구본혁이 연기한다. 이외에도 안창현(김민규 역), 권재원(의사 김만석 역), 성원(새마을 회장 황현창 역) 등 실력파 연극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려내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지금 이 순간’의 가치와 의미를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