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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74회 (사)한국여성작곡가회 봄 정기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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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흔적, 음악되어 봄을 적시다!!

K-Classic News 박순영 기자 mazlae@hanmail.net 

 

제74회 (사)한국여성작곡가회 봄 정기발표회 - 흔적I>이 9일 오후2시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렸다.

 

이번 공연에서는 우리 옛 선조 여성 예술인들의 작품이 21세기 현시대를 살고 있는 여섯 명 여성 작곡가들의 곡으로 탄생되었다. 옛 시대 여인들의 삶과 흔적이 다양한 기법, 다채로운 음향으로 펼쳐지며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첫 번째 김주혜의 <포도>(2022)는 네 음 주제의 반음계 상행으로 시작해 천천히 아득한 주제를 펼친다. 조선시대 신사임당의 회화 <포도>의 운치를 표현하는데 클라리넷(연주자 정성윤)의 길게 뻗는 호흡과 선율이 고즈넉하고 여유가 멋지다. 중간부에 강한 변화와 갈등이 있지만 다시 피아노(이은지)의 긴 상행음과 아르페지오, 글리산도 상행으로 화해를 도모하며 포도알과 쭉쭉 뻗은 가지들, 넓은 잎사귀가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김은영의 <두 개의 길쌈노래>(2022)는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의 풍속도 '베짜기'와 '자리짜기'를 모티브로 했다. 1곡 '완주물레타령'에서는 저음 플루트(승경훈)의 플라터 텅잉이 효과적이며, "물레야~" 가사(소프라노 장지애)와 피아노(이은지) 반주부의 움직임이 투명하다.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삐에로' 같은 분위기도 나며, 물레같은 흥겨운 리듬이 계속된다.

 

2곡 '베틀노래'는 1곡보다 강렬하며, 중간에 플루트의 강한 텅잉 느낌이 좋았다. 가사에 “-쩌욱 -쩌욱 우리부모 드리겠네” 하는 성악의 가사가 와 닿았으며 클라이막스 의 강조는 마치 실로 천을 직조하는 느낌, 즉 두 실이 교차하는 지점과 모습의 강단이 느껴졌다. 옆 관객은 두 곡의 장단에 고갯짓을 하며 공감의 감상을 하고 있었다. 

 

조수현의 <해어화(解語花 : 自恨)>(2021)에서 '해어화'는 '말을 알아듣는 꽃', 조선시대 기생을 뜻한다. 기녀 이매창이 봄날 이별한 임을 그린 한시 '자한'을 이 곡의 소재로 했는데, 시작과 중간부에 레인스틱의 물바람같은 소리가 옛 시대의 정취를 풍기며 관객을 환기시킨다. 호른(이세르게이)과 피아노(이은지)가 나직한 C음으로 시작해 점점 자유로운 진행을 한다. 오보에(이광일)의 한숨 같은 오버블로잉도 인상적이며 현대 화성, 음렬 등과 국악기 주법이 차용되어 여인의 한을 잘 표현했다.

 

오세린의 <세오의 신기한 비단>(2022)은 삼국유사의 '연오랑세오녀설화'를 소재로 했다. 신라시대 동해안에 살던 연오와 세오가 일본으로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되자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사라졌다는 내용이다. 바이올린(박신혜)의 빠른 상행 5음과 중음주법, 트레몰로의 주제가 바이올린 고음 저음으로 다채롭게 변화하며 전진한다.

 

피치카토 부분의 익살맞음이나 4도 중음주법의 느낌이 좋았고, 바이올린에서 진취적이고 끈덕진 기상이 느껴진다. 본국으로 돌아오지는 못하지만, 세오가 짠 비단을 보내와 제사를 지내 해와 달의 빛을 찾게 되는 과정과 빛나는 비단의 느낌이 잘 표현되었다. 

 

 

김지현의 <어두운 창에 촛불은 나직하고>(2022)는 허난설헌의 시 '기하곡'의 영감이 음향으로 멋지게 표현되었다. 첫 부분 바이올린(박신혜)과 클라리넷(정성윤), 첼로(윤석우)가 서로 인접음을 내며 맥놀이처럼 들리는데 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바로 보이는 듯 했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불협화음 위에 클라리넷이 쓸쓸한 선율을 노래하며, 멀리 귀양가 있는 허난설헌의 오빠 하곡에 대한 측은한 연민으로 다가온다. 음향의 반복 후 선율이 이동하는 시점이 아주 적절하게 느겨졌다. 

 

임준희 <허난설헌 시에 의한 세 개의 노래>(2022)는 허난설헌의 시 세편을 동명의 곡으로 만들었다. 정가(하윤주)를 가야금(이슬기)과 첼로(윤석우)가 단지 반주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 분위기가 곧 시고, 이는 정가 가사의 발음과 음색으로 맑게 터져나오는 느낌이었다. 1곡 '춘우'는 가야금과 첼로가 물레 잣듯이 퉁기며 동서양 악기 구분없이 서로 한 음색처럼 잘 어울렸다. 

 

2곡 '채련곡'은 8마디 전주에 곡 분위기를 1곡으로부터 싹 변화시키는 몰입감이 좋았으며, 경쾌한 분위기로 가야금 농현이 연꽃이 놓은 호숫물처럼 느껴졌다. 3곡 '몽유광상산시'는 마치 플루트같은 첼로의 하모닉스 선율과 쥬테 하행 종지음이 특징인데, 여기에 정가의 고어발음이 이국적정취를 느끼게 한다. 악기 각 음색은 엷어보이나, 점묘적인 움직임이 부단히 서로의 운동을 의식하며 채워나가므로 변화무쌍하고 짙은 정취의 곡이었다.

 

 

한국여성작곡가회의 현대음악은 타 작곡협회 작품들보다 극단적 음향이나 어려운 기법보다는, 내적 정서를 음악기법으로 순화하며 동시대, 특히 한국 관객에게 새로운 음악을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이날 음악회 역시 우리 성악, 가곡의 새로운 면도 선보였으며, 옛 시대에도 예술로 진취적인 정신의 삶을 살았던 여성 선조들을 오늘의 음악 작품으로 살려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