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정덕기] 어느 예술가곡 이야기 "그대가 보낸 차"

  • 등록 2024.07.14 0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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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lassic News  정덕기 작곡가 |

 


서기 1300년 말, 고려는 풍전등화와 같이 세상이 혼란스러웠다.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기득권을 지닌 권문세족의 친원(親元)파와, 신진 사대부의 친명(親明)파로 나뉘어 싸움질을 하는 통에, 국가로서의 생존이 위태로웠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인해, 최영과 이인임을 중심으로 한 친원파는, 우왕이 제거된 후 완전히 몰락하였고, 친명파가 권력을 잡아 득세했으나, 친명파도 둘로 쪼개어졌다. 친명파 중 이성계, 조준, 정도전 등 급진 세력은 단순한 개혁 정책에 만족하지 않고, 역성혁명과 건국을 통해 이상적인 유교 사회를 건설하려 했던 반면, 이색과 정몽주 등의 온건 개혁파는 고려 왕조의 테두리 내에서 순차적인 개혁을 원하였다. 

 

그러나 온건 개혁파 사대부는 정도전과 이성계에 의해 제거되었으며, 조선개국을 반대하여 숨어버린 세 사람을 일컫는 고려 충신 삼은(三隱)이 나오게 되었다. 보통은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를 말하지만, 1954년에 이병도가 ‘국사대관’을 내놓으면서부터 길재 대신 도은 이숭인을 포함시켰다.


  나는 여기서 도은선생을 주목하였다.

 

 1349년 충정왕 1년에 태어난 그는 본관은 성주. 자는 자안, 호는 도은으로.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 말의 삼은으로 일컬어지며, 아버지 이원구와 어머니 언양 김씨 사이의 2남 3녀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났다. 1360년(공민왕 9년) 14세의 나이로 국자감시에 합격하여 이색의 문하에 있었으며, 16세에 등과하여 숙옹부승을 제수 받고 후에 장흥고사가 되었다. 

 

21세에 성균관의 생원이 되면서, 이색의 문하에서 정몽주, 김구용, 박상충, 정도전, 권근 등과 깊이 사귀었다. 24세에 중국의 과거에 응시할 인재를 뽑는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으나 나이가 미달하여 가지 못하였다. 그 후 성균직강 예문응교 전리총랑을 지냈다. 

 

우왕 즉위년에는 친명파라고 하여 대구 현에 유배되었다가, 4년 뒤 소환되어 성균사성 전리판서 밀직제학을 역임했으며, 1386년 하정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388년 최영 일파의 참소로 통주에 유배되었으나, 최영의 몰락으로 다시 소환되어 지밀직사사가 되었다. 그 후 정도전 일파에 몰려 순천으로 유배되었다가, 정도전의 심복인 황거정에 의해 1392년, 그는 44세의 나이로 피살되었고, 그 해 조선은 개국하였다. 그는 ‘도은집’ 5권을 남겼다.

 

 

‘도은집’에 있는 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고려는 국교가 불교였으므로 차가 주 음료 시대였다. 이 시를 번역한 박숙희 선생에 따르면, 차에 관한 시도 3500여 수 이상 남아있고, 제사를 차례라 하였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다반사(茶飯事)라는 단어에서도 차를 마시는 일이 일상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시는 도은 선생이 순천으로 유배되어 피살된 1392년, 그의 친구인 유군수가 차(茶)를 보내준 것에 감사하여 쓴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를 통하여 나는 도은 선생과 유군수의 우정을 생각해본다. 친구를 위하여 유배지까지 차를 보내는 그 따뜻한 마음과, 친구의 선물을 받고 ‘어느 때 우리 서로 만나 마주 앉아 차 한 잔 나눌까’ 라고 시를 읊은 도은 선생의 절실한 마음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아 가슴이 저려왔다. 만약 들키기라도 한다면 보낸 유군수도 무사하지는 않았을 테지? 그 때는 삼족을 멸하던 시대가 아닌가? 혹시 좋은 것이 좋다고 도은 선생도 지조를 버리고 정도전의 편에 붙었으면 죽지도 않고 평생 영광을 누리면 살 수 있었을 텐데? 

 

과연 도은선생의 평생의 소원처럼 유군수와 만나서 차 한 잔을 나누었을까? 아니면 나누어 보지도 못하고 황거정에게 살해당한 것은 아닐까? ‘망연히 그대 있는 곳 바라다보니....’ 역사의 한 편에 자리 매김한 깊은 우정에 작곡가로서 아린 마음을 오늘은 커피가 아닌 향기로운 차 한 잔으로 달래본다.


나의 소박한 선율을 통해 630여년이 지난 오늘 세상에 다시 나온 이 곡을 그 분이 좋아할지 싫어할지?  

 

 


謝兪知郡寄茶 유군수가 차를 보내왔기에 감사하며

 

(그대가 보낸 차)

瓊也今朝至。오늘 아침 그대가 보낸 차를 받으니

知君不我忘。그대 아직 나를 잊지 않았구려.

得書如見面。편지를 대하니 그대 얼굴인 듯

煑茗且澆膓。보내준 차를 마시며 속을 풀리라

悵望千山遠。망연히 그대 있는 곳 바라다보니

相離一歲強。헤어진 지 한 해가 넘었구려.

何時成邂逅。어느 때 우리 서로 만나

握手共登堂。마주 앉아 차 한 잔 나눌까

 

 

정덕기 작곡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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