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경 시평론] 김혜순 「할머니랑 결혼할래요」

2023.08.27 17:36:04

K-Classic News 석연경 기자 |

 

 

 

 

할머니 눈을 그렇게 꽉 감겨드릴 필요는 없었는데.

 

 할머니의 삼베 수의 치마 솔기마다 씨앗을 심어드린다.

 그 솔기들에서 싹이 튼다.

 

 거짓말하는 양배추는 되지 마, 할머니의 평생 유일한 충고.

 나는 말하는 양배추밭을 가꾼다.

 

 달콤하고 끈적거리는 비를 보내는 이와  씩씩하게 비 맞는 이가 만나서  좋아 죽겠다고 한다. 결혼하자고 한다. 둘이서 하나씩 혼례복이면서 장례복인 흰 치마를 입고 결혼하자고 한 다. 천지에 불꽃이 천만 개 핀다.

 

 비가 할머니의 다리를 씻기고 있다. 할머니의 몸이 서울의 북쪽 산에서 남쪽 톨게이트까지 걸쳐져 있다. 나는 할머니의 높고 높은 이마에 걸터앉아 '나는 기억한다 할머니를' 하는 구절로 시작되는 문장을 백 개 만들어드린다.

 

 나는 할머니 몸을 몽땅 덮을 수 있는 우산을 구상한다.

 나와 결혼식 하객들을 다 덮을 우산을 구상한다.

 

 할머니 이제 땅 많아요. 이거 다 할머니 거예요.

 할머니 살아생전 땅이라곤 입은 치마밖에 없었는데.

 

 그렇지만 잠시 후 검은 하늘에 주렁주렁 열려 있던 양배추들이

 땅 위에 퍽퍽 깨진다. 머리통이 찐득거린다.

 

 해바라기씨 같은 아이들은 어두운 성당 고해실에서 두 손을 모으고

 죽은 이들이 다시 사는 일이 없기를 두 손을 모으고.

 

 나는 비를 맞으며 내가 눈을 감겨드린 할머니를 생각한다.

 나와 내 할머니가 비 맞으며 결혼 행진하는 걸 생각한다.

                             - 김혜순 「할머니랑 결혼할래요」전문

 

 

  창조 신화에는 신체화생설身體化生說이 많다. 거인의 주검이 곧 자연이 되는 것이다. 중국의 반고신화盤古神話에도 반고의 몸이 세상이 된다. 손과 발은 산이 되고 피는 강물이 되고 힘줄은 길이 되고 살은 논밭이 되고 숨결은 바람과 구름이 된다. 바빌로니아의 티아마트Tiamat, 인도의 푸루샤purusa, 게르만의 이미르Ymir 등도 모두 몸이 자연이 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카오스 상태에서 제일 먼저 생겨나는 것이 대지의 신 가이아이다. 가이아가 하늘인 우라노스를 낳는 것이다. 한국에는 마고할미 같은 여성거인신이 산이나 바다를 만든다. 이러한 신체화생설과 모성성을 지닌 대지의 신은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하나임을 일러준다. 죽음을 통해 삶이 생기는 것과 삶과 죽음의 순환으로 우주가 운행되고 있다는 순리도 보여준다. 이는 생태적 세계관이다.
  이처럼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죽어서 썩는 것이 있기에 씨앗에서 싹이 난다. 김혜순 시 「할머니랑 결혼할래요」는 대지적 상상력으로 죽음과 삶이 하나임을 노래한다. 할머니가 죽으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신화에서처럼 할머니는 죽어서 자연이 되고, 자연이 된 할머니는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적주체는 죽은 ‘할머니 눈을 그렇게 꽉 감겨드릴 필요는 없었는데’라는 후회를 한다.

  죽음은 결코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 후 시적주체가 한 일은 할머니 ‘삼베 수의 치마 솔기마다 씨앗을 심어드리는 일’이다. 할머니가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아는 까닭이다. 겨울이 지나면 새싹이 움트듯 때가 되니 할머니 수의의 ‘솔기마다에서 싹이 튼’다. 죽음에서 새 삶으로의 전환은 이처럼 아무렇지도 않고 특별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이행된다.
                              - 석연경 『생태시학의 변주』, 「대지모, 신체화생설과 모성성」 시평 중에서

 

 

석연경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독수리의 날들』, 『섬광, 쇄빙선』, 『푸른 벽을 세우다』 , 『둥근 거울』, 『우주의 정원』이 있고 평론집 『생태시학의 변주』가 있음. 송수권시문학상 젊은시인상 수상. 연경인문문화예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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