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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미의 감성가곡] 세계의 목소리로 피어난 우리 가곡

〈2026 K-가곡 슈퍼스타〉 성황리에 막 내려…36개국 126명 도전, 한국 가곡이 세계의 목소리를 입었다.

K-Classic News  |손영미 시인 작가 칼럼니스트

 

 

KBS가 지난해에 이어 마련한 글로벌 가곡 경연 프로젝트 〈2026 K-가곡 슈퍼스타〉가 세계 성악가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두 번째 여정을 마쳤다.

 

지난 6월 시작된 1차 심사에는 세계 36개국에서 126명의 성악가가 도전했다. 브라질·이탈리아·독일·멕시코·루마니아·오스트리아·불가리아·라트비아 등 세계 곳곳에서 지원자가 몰렸고, 두 차례 심사를 거쳐 8개국 10명의 성악가가 최종 본선에 올랐다.

 

본선은 지난 8월 25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녹화됐으며, 9월 25일 KBS1을 통해 120분간 방송됐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참가자들이 한국 가곡을 대하는 깊이였다. 우리말을 정확하게 발음하는 데 머물지 않고 시어가 품은 정서와 여백까지 자신만의 음악적 해석으로 풀어냈다.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노래해 온 성악가들의 입에서 우리말이 흘러나왔다.

 

“우리 금강산….”

 

낯선 언어를 외워 부르는 노래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그리움과 사랑, 자연과 역사,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이해하려는 시간이 배어 있었다.

 

세계의 목소리로 다시 태어난 우리 가곡

 

본선에서는 〈잔향〉, 〈연〉, 〈그리운 금강산〉, 〈밀양아리랑〉, 〈마중〉, 〈산아〉, 〈강 건너 봄이 오듯〉, 〈명태〉, 〈내 맘의 강물〉, 〈꽃 피는 날〉 등 한국 가곡의 다양한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다.

 

치열한 경연 끝에 대상은 루마니아 테너 제오르제 비반(George Vîrban)에게 돌아갔다. 정환호의 〈꽃 피는 날〉을 부른 그는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성악콩쿠르 1위 수상 경력을 지녔으며 독일 바이마르 국립오페라 오페라 스튜디오와 에센 알토극장 앙상블을 거쳤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마술피리〉 타미노 역 커버 캐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금상은 오스트리아 소프라노 이리데 마르티네스(Iride Martinez)가 차지했다. 한국 민요를 바탕으로 진규영이 작곡한 〈밀양아리랑〉을 불러 우리 민요 특유의 흥과 한을 자신만의 음악적 색채로 풀어냈다.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 세계적인 성악가들과 협연한 경력을 지닌 성악가다.

 

은상은 라트비아 소프라노 카트리나 크룸파네(Katrina Krumpane)에게 돌아갔다. 이수인 시·곡의 〈내 맘의 강물〉을 노래한 그는 독일 베를린 국립오페라와 도이체 오퍼 베를린 솔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성신여대와 경희대에서 성악을 가르쳐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우리 가곡 특유의 서정과 그리움을 섬세한 호흡으로 표현했다.

 

동상은 독일 소프라노 안나 카타리나 그롤(Anna Katharina Groll)이 차지했다. 송길자 시, 임긍수 곡의 〈강 건너 봄이 오듯〉을 통해 기다림과 그리움, 봄을 향한 희망을 노래했다.

 

대상 상금은 7만 달러, 금상 2만 달러, 은상 1만5천 달러, 동상 1만 달러였다.

 

그러나 이번 무대의 의미는 순위에만 있지 않았다. 〈꽃 피는 날〉의 서정, 〈밀양아리랑〉의 흥과 한, 〈내 맘의 강물〉의 유장한 그리움, 〈강 건너 봄이 오듯〉의 기다림과 희망까지 서로 다른 우리 정서가 세계 성악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새로운 빛깔을 얻었다.

 

국적은 달랐지만 그들이 선택한 언어는 한국어였고, 그들이 노래한 마음은 우리 가곡이었다.

 

조수미의 오랜 꿈, 세계 무대에서 현실로

 

심사위원장을 맡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는 “우리나라 노래가 불리고 또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을 이제 이루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심사위원단에는 성악가 고성현과 서선영,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이루마, 뮤지컬 배우 카이, 지휘자 아드리앙 페뤼숑 등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의 관심은 노래에만 머물지 않았다. 루마니아 소프라노 수자나 나데지데는 한국의 사상가 퇴계 이황을 존경한다고 밝힐 만큼 한국 역사와 문화에도 관심을 보였다.

 

한 곡의 가곡을 배우는 일이 시와 언어를 만나고, 그 언어를 낳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길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번역되지 않고 세계로 가는 노래

 

이번 무대에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우리말 그대로의 세계화’였다.

 

이탈리아 오페라가 이탈리아어로, 독일 리트가 독일어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듯 한국 가곡도 우리말 그대로 세계의 레퍼토리가 될 수 있다.

 

외국 성악가들이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고 ‘강 건너 봄이 오듯’을 노래하며 ‘내 맘의 강물’을 자신의 호흡으로 표현하는 순간, 우리말 자체가 음악이 되었다.

 

가곡은 시에서 시작한다. 한 편의 시가 선율을 만나 노래가 되고, 한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또 다른 마음으로 건너간다. 그 안에는 사랑과 이별, 고향과 자연, 기쁨과 슬픔, 우리가 지나온 시대의 기억이 담겨 있다.

 

따라서 한국 가곡의 세계화는 한 음악 장르의 해외 진출을 넘어선다. 우리의 시와 언어, 역사와 정서를 다음 세대에 전하고 세계와 나누는 일이다.

 

지금, 우리 가곡이 품어야 할 시대적 소명

 

AI가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하나의 콘텐츠가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 시대다. 세계가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한 나라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적 정체성은 더욱 소중해진다.

 

바로 여기에 오늘 우리 가곡의 시대적 소명이 있다.

 

우리 가곡을 부르는 것은 옛 노래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시의 정신을 노래하며, 한 시대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 건네는 일이다.

 

K-팝과 K-드라마가 세계인에게 한국을 향한 문을 열었다면, K-가곡은 그 문을 지나 한국인의 마음과 정신으로 세계인을 초대하는 노래가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가곡을 지속해서 발굴하고 창작하는 한편 젊은 세대가 자연스럽게 배우고 부를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해외 성악가들이 한국 가곡을 정규 레퍼토리로 선택할 수 있도록 악보와 음원, 번역과 한국어 발음 자료를 체계화하고 해외 음악대학과 공연장으로 이어지는 통로도 넓혀야 한다.

 

지난해 대상 수상자인 스페인 소프라노 아이타나 산스가 올해 다시 축하 무대에 오른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경연이 끝난 뒤에도 한국 가곡을 자신의 레퍼토리로 품고 세계 무대에서 계속 부를 때 비로소 그 노래는 뿌리를 내리고 또 다른 청중을 만난다.

 

한 명의 외국 성악가가 우리 가곡 한 곡을 품으면 그 노래는 그가 서는 또 다른 도시와 극장으로 간다. 그의 목소리를 따라 한 편의 한국 시가 국경을 넘고, 우리말 한 구절이 세계인의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이것이 〈K-가곡 슈퍼스타〉가 남긴 가장 값진 성과일 것이다.

 

36개국 126명의 성악가가 우리 가곡을 부르기 위해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의 시와 문화를 만났다. 경연의 승패를 넘어, 바로 그곳에서 K-가곡의 다음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K-가곡의 세계화란 우리의 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것을 온전히 지키면서 세계와 나누는 일이다.

 

우리 가곡 앞에는 이제 두 길이 놓여 있다. 다음 세대에게 우리의 언어와 정서를 이어주는 계승의 길, 그리고 세계 무대에 한국인의 마음을 전하는 확장의 길이다.

 

그 두 길이 만나는 곳에 오늘의 K-가곡이 있다.
우리 가곡을 지켜 부르는 것은 우리의 기억을 잇는 일이고, 세계가 우리 가곡을 부르게 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을 미래로 보내는 일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 가곡이 품어야 할 시대적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