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Erdos Han 작가|

지하철을 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자리가 있다. 객차 한쪽 끝에 마련된 노인석이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지켜온 ‘어르신에 대한 배려’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지하철 노인석은 단순히 한 세대를 위한 좌석을 넘어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의 생각이 교차하고, 때로는 충돌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노인석을 어떻게 생각할까
많은 젊은이는 노인석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몸이 불편하고 오랜 시간 서 있기 어려운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노인석’이라는 이름이 때로는 서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회적 경계가 된다는 데 있다. 젊은 사람도 피곤하다. 밤새 일한 직장인도 있고, 무거운 가방을 든 학생도 있으며, 보이지 않는 질병이나 통증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젊다는 이유만으로 “왜 노인석에 앉았느냐”는 시선을 받기도 한다. 어떤 젊은이는 비어 있는 노인석 앞에서 서서 가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말한다. 자리에 앉는 순간 자신을 설명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부담 때문이다.
반대로 어르신들 역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노인석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사회가 서로의 약함을 배려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라는 점이다. 더 힘든 사람이 있다면 자리를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한다. 노인이라고 해서 모두 건강이 나쁜 것은 아니며, 젊다고 해서 모두 건강한 것도 아니다. 이제 우리는 ‘나이’만으로 사람의 상태를 판단하는 시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하철의 작은 좌석 하나에서도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철학이 드러난다. 흰머리가 있다고 반드시 더 힘든 것도 아니고, 젊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반드시 건강한 것도 아니다.
젊은 세대가 노인석에 대해 느끼는 불편함 속에는 단순한 이기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공정함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자신의 상황에 따라 배려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노인 세대가 젊은이에게 “너희는 아직 젊으니 참아라”고 말한다면, 젊은이들은 언젠가 자신도 늙을 사회를 따뜻하게 바라보기 어려워질 것이다. 반대로 젊은 세대 역시 노인을 ‘특권을 가진 세대’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오늘의 노인들은 한 시대의 가난과 전쟁, 산업화와 가족의 책임을 견뎌온 사람들이다. 우리가 누리는 사회의 많은 기반 위에는 그들의 시간이 쌓여 있다.
중요한 것은 자리가 아니라 마음이다.
노인석이 비어 있어도 앉지 못하는 사회보다, 누가 더 힘든지를 서로 살피며 자연스럽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회가 더 아름답다. ‘노인석은 누구의 자리인가’라는 질문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누가 더 필요한가’를 묻는 것이 더 인간적이다. 지하철 한 칸의 작은 좌석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젊음과 늙음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함께 늙어갈 수 있다.
배려는 강요될 때 불편하지만, 이해에서 시작될 때 문화가 된다. 노인석이 세대 갈등의 상징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따뜻한 사회의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
젊은이들의 실제 목소리를 더해 주세요
노인과 젊은이의 균형을 강화해 주세요
노인석 이용 원칙을 더 구체화해 주세요
Artist ERDOS 한경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