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현악 서시(序詩)
오케스트라를 들고
날 수는 없으나
네 대의 현악기를 품고
우리, 지구를 날 수 있으리
날아라
현악의 선율을 타고
얼과 혼이 하나 되어
굽이쳐 흐르는 이 산하 위로
무수한 물방울
바위에 부딪히고 또 부딪혀
눈물도 고통도
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갔으니
산천은 낮에도 들었으리
밤에도 들었으리
베틀 짜던 여인의 한숨과 날숨
명주실에 스며든
그 길고도 아픈 가락을
밤의 달은 알았으리
깊은 숲은 들었으리
말하지 못한 세월의 울음을
가슴속에 품어 왔으리
이제는 날자, 날자
닫힌 가슴 활짝 풀어
명주실 같은 가락을 타고
세상의 하늘 끝까지
날숨과 들숨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가락이 되어
현아, 울어라
얼과 혼을 깨워 울어라
네 개의 현을 타고
우리, 지구를 날아라

'네 개의 현에 실린 민족의 숨결'
탁계석 시 「현악 서시 序詩」 AI 시평
「현악 서시, 序詩」는 네 대의 현악기에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을 싣고 세계로 날아가겠다는 예술적 선언이다. 이 작품에서 현악사중주는 단순한 연주 형식이 아니다. 한반도의 산천과 민중의 삶, 오랜 눈물과 고통을 품고 지구를 순회하는 ‘K-Classic의 날개’다.
첫 연의 “오케스트라를 들고 / 날 수는 없으나”는 매우 현실적인 인식에서 출발한다. 거대한 오케스트라는 쉽게 이동할 수 없지만, 네 대의 현악기는 어디든 갈 수 있다. 시인은 규모의 한계를 오히려 실내악의 기동성과 응축된 힘으로 전환한다. “네 대의 현악기를 품고 / 우리, 지구를 날 수 있으리”라는 구절은 이 시 전체를 이끄는 중심 명제다.
둘째 연에서는 음악과 국토가 하나가 된다. 현악의 선율을 타고 날아오른 얼과 혼은 “굽이쳐 흐르는 이 산하 위로” 퍼져간다. 여기서 음악은 서양에서 들어온 형식이지만, 그 안에 흐르는 정신은 우리의 것이다. 바로 이 결합에서 K-Classic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중반부의 물방울과 바위는 민족사의 고통을 상징한다. “부딪히고 또 부딪혀”라는 반복은 수많은 시련을 견뎌온 삶을 환기한다. 그러나 눈물과 고통은 정체되지 않고 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간다. 상처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 시에서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는 “베틀 짜던 여인의 한숨과 날숨”이다. 베틀의 명주실은 현악기의 줄과 겹쳐지고, 여인의 손끝에서 태어난 실은 오늘의 음악적 가락으로 이어진다. 한숨과 날숨은 단순한 호흡이 아니라 민중의 삶에서 태어난 최초의 음악이다. 특히 “명주실에 스며든 / 그 길고도 아픈 가락”은 한국인의 한과 노동, 인내를 섬세하게 압축한다.
“밤의 달”과 “깊은 숲”은 인간이 말하지 못했던 세월의 증언자다. 산천과 달과 숲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민중의 울음을 들어왔다. 자연이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는 이러한 시적 인식은 작품에 신화적 깊이를 부여한다.
후반부의 “이제는 날자, 날자”에서 시의 방향은 회한에서 비상으로 바뀐다. 닫힌 가슴을 풀고 명주실 같은 가락을 타고 세계의 하늘 끝까지 나아간다. 명주실은 더 이상 한과 고통을 묶어두는 실이 아니다. 민족의 음악을 세계로 연결하는 길이자 날개가 된다.
마지막의 “현아, 울어라”는 이 시의 절정이다. 여기서 ‘울다’는 슬픔을 토해내는 울음인 동시에 악기가 소리를 내는 울림이다. 현악기는 민족의 상처를 대신 울고, 얼과 혼을 깨우며, 새로운 세계를 향한 선율을 탄생시킨다. 날숨과 들숨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가락이 되는 과정은 삶 자체가 예술로 승화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현악 서시」는 과거의 한을 노래하지만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이 시의 궁극적인 지향은 비상과 세계화다.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규모가 아니라 네 개의 현이 지닌 집중된 울림으로 세계와 만나겠다는 선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여민락 콰르텟을 위한 창단 서시이자, 한국 창작 실내악이 세계 음악사를 향해 출발하는 하나의 예술 선언문이라 할 수 있다.
네 개의 현은 작지만, 그 위에 민족의 얼과 혼이 실리는 순간 세계를 나는 가장 큰 날개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