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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학의 문화노트] 《오디세이》 이전 《일리아드》 이야기의 시작, 헬레네

K-Classic News  황순학 기자 |


 

요즘 극장에 가면 기원전 자중해 냄새로 가득한 바닷바람이 분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가 한국에서 2026년 8월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다. 8월 21~23일 주말에도 132만 명을 모으며 1위를 차지했고, 8월 누적 관객은 이미 710만 명을 넘어섰다. 세계적으로도 흥행 수입이 14억 달러를 넘어 놀란 감독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영화가 되었다. 3천 년 전 바다에서 길을 잃은 남자의 이야기에 21세기 사람들이 다시 줄을 서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오디세우스가 왜 그 지긋지긋한 바다를 10년이나 떠돌게 되었는지를 거꾸로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한 여자에게 도착한다.
헬레네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 남자에게 도착한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이다.
조금 더 올라가면 인간도 아니다.
신들이다.

 

그리고 사건의 발단은 놀랍도록 철학적이면서 동시에 유치하다.
“우리 셋 가운데 누가 제일 예쁘니?”
여기서 서양 문명의 오래된 문제가 시작된다.

[자크 루이 다비드 의 <헬레네와 파리스의 사랑> (유화, 1788년, 루브르 박물관, 파리)]

 


“신들은 미인대회를 열었고 인간은 전쟁을 치렀다”

 


후대의 그리스 신화 전승에서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황금사과 하나를 던진다.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뜻이 담겨 있다.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동시에 손을 든다.

 

제우스는 현명하게도 이 난감한 심사를 자신이 하지 않는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떠넘긴다.
여기서 세 여신은 심사위원에게 정정당당하게 미모만 평가받는 대신 곧바로 로비에 들어간다.
헤라는 권력을 약속하고,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에서의 탁월함을,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약속한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택한다.
아프로디테가 약속한 여자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이다.
곤란한 점은 헬레네가 이미 메넬라오스의 부인이라는 사실이다.
파리스는 결국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간다.

 

현대식으로 표현한다면 미인대회의 심사 결과가 국제분쟁으로 발전한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여자 한 명 데려갔다고 그리스 전체가 10년 전쟁을 한다고?”라는 당연한 의문이 생긴다.

 

그리스인들에게도 나름의 계약서가 있었다.
후대 전승에 따르면 헬레네가 결혼하기 전 그리스 각지의 왕과 영웅들이 스파르타에 몰려들어 구혼했다. 너무 많은 유력자가 몰렸기 때문에 누굴 뽑아도 나머지가 전쟁을 벌일 판이었다.
이 문제에 묘안을 낸 사람이 바로 오디세우스이다.

 

모든 구혼자에게 선택받은 남편의 혼인을 함께 지키고, 누군가 그 결혼을 침해하면 공동으로 응징한다는 맹세를 시키자는 것이었다.

 

틴다레오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메넬라오스가 헬레네의 남편이 된다.
그리고 파리스가 헬레네를 가져가자 오래전에 도장을 찍었던 사람들이 호출된다.

 

이것이 이른바 틴다레오스의 맹세이다. 다만 이 이야기는 《일리아드》 본문에 자세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폴로도로스 등 후대 전승에서 명확하게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트로이 전쟁은 단순한 치정극이 아니다.

 

사랑, 납치, 소유, 명예, 왕가의 체면, 동맹조약, 신과의 약속이 한꺼번에 폭발한 사건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붙여보고 싶다.
아름다움의 문제이다.

 

“저 여인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구나”

 

《일리아드》 3권에는 현대 독자의 눈으로 보면 상당히 황당한 장면이 있다.
트로이의 늙은 원로들이 성벽 위에 앉아 있다.
이미 전쟁은 오래 지속되고 있었다.

 

아들이 죽었을 수도 있고, 손자가 죽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헬레네가 성벽 위로 올라온다.
노인들은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 분노하기는커녕 감탄한다.
구연하듯 옮기면 이런 장면이다.

 

헬레네가 성루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트로이의 늙은 원로들은 한동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서로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과연……트로이인들과 아카이아인(그리스인)들이저 여인을 두고 그토록 오랜 세월 고통받아 온 것도이상할 일이 아니로구나.
보라.저 얼굴을……
흡사 불멸의 여신이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온 듯하지 않은가.
하지만…… 아무리 저토록 아름답다 한들,이제는 배를 타고 돌아가게 하라.
우리에게도,또 우리 뒤에 남을 자손들에게도더는 재앙이 되어서는 아니 되리라.”

 

원문의 핵심도 정확히 이것이다.

 

트로이 원로들은 헬레네가 “불멸의 여신들과 놀랍도록 닮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라도 이제 돌려보내야 후손에게 재앙을 남기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그때 트로이의 왕인 프리아모스가 헬레네를 부른다.

 

“이리로 오너라, 사랑하는 아이야.이 늙은이 앞에 와 앉아 보아라.
그리고 저 아래를 보아라.
그곳에 네 옛 남편이 있고,네 혈육이 있으며,그리운 벗들이 있구나.

 

하지만 아이야……
나는 너를 탓하지 않으마.
내게는 네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
이 모든 일을 불러온 것은네가 아니라 신들이니……

 

저 많은 아카이아인(그리스인)들과 이 전쟁을내게 일으키라 한 이는,
네가 아니라바로 신들이었느니라.”

 

실제 원전에서도 프리아모스는 “내게는 네가 죄인이 아니다. 신들이 이 눈물겨운 아카이아인들과의 전쟁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 법하다.
왕이 상당히 너그럽다.
아니, 너무 너그럽다.
나라가 10년째 전쟁 중인데 며느리에게 “아이야, 네 탓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파리스라도 당장 불러내 혼내지 않는가.
물론 《일리아드》 전체를 보면 파리스가 아무도 모르게 예쁨만 받고 사는 인물은 아니다.
그의 형 헥토르는 파리스의 외모와 여성에게 매력적인 모습이 전쟁터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며 신랄하게 몰아붙인다.
그러나 프리아모스와 원로들이 헬레네를 바라보는 이 장면만큼은 묘하게 다르다.
아름다움이 그 자체로 엄청난 힘을 갖는다.
바로 여기서 그리스의 오래된 미적 감각이 보인다.

 


“돌산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바다를 보았다.”

 

그리스 지도를 펼쳐놓으면 한 가지가 금세 눈에 들어온다.
많은 도시가 해안가에 있다.

 

그리스는 국토의 약 80%가 산악지형이고, 고대 농업에 적합한 땅 역시 전체의 약 5분의 1 정도였다고 평가된다. 물론 고대 그리스인들도 농사를 열심히 지었다. 보리와 밀, 올리브와 포도는 그들의 삶을 지탱한 핵심 작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넓고 평평한 커다란 농경지를 원하는 만큼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강수량도 불규칙했고, 겨울에는 에게해 북쪽에서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내려오는 점이 일상이었다. 그래서 그리스인은 농경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농경만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세계를 완결시킬 수 없다는 점을 일찍 깨닫는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바다가 있었다.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는 지중해와 흑해 곳곳으로 사람을 내보내기 시작한다.
남부 이탈리아, 시칠리아, 소아시아 연안, 흑해, 북아프리카 등 심지어 오늘날 프랑스와 스페인 연안까지 그리스인들의 식민도시와 교역지가 펼쳐진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새 도시를 만들 때 해안의 항구를 적극적으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역시 고대 그리스인들이 적극적인 항해자였고, 지중해 곳곳의 해안 지대에 독립적인 도시와 교역 거점을 건설했다고 설명한다.

 

올리브유와 포도주와 도자기가 나가고 곡물과 목재와 금속이 들어왔다.
특히 아테네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흑해와 이집트 등지에서 곡물을 수입해야 했으며 곡물 무역에는 국가가 직접 규제를 가할 정도였다.
나는 이 지리적 환경이 그리스인의 미적 감각과 전혀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문명은 먼저 얼굴을 본다”

 

농경 마을에서 평생 같은 사람과 산다고 상상해 보자.
김 씨네 아들은 조금 못생겨도 괜찮다.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실한지, 부모에게 효도하는지, 일은 잘하는지, 성격이 어떤지를 20년 동안 지켜볼 시간이 있다.

 

그런데 항구는 다르다.
오늘 아침 페니키아 상인이 들어오고, 오후에는 이집트 배가 들어오며, 다음날에는 소아시아 사람이 찾아온다.
말도 다르고 신도 다르고 출신지도 다르다.
그 사람의 내면을 20년 동안 관찰할 여유가 없다.
그러므로 처음 몇 초 안에 읽을 수 있는 신호가 중요해진다.

 

얼굴, 몸, 옷, 무기, 태도, 말투와 그가 가져온 도자기의 완성도, 그리고 그 도시가 지어놓은 신전의 규모 등을 차례로 봤을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인들이 유난히 ‘보이는 탁월함’에 민감해진 이유 하나를 찾고 싶다.

 

이것은 “무역 때문에, 그리스인이 외모지상주의자가 되었다”라는 증명된 역사적 학설은 아니다.
그냥 하나의 문명사를 새롭게 접근해 읽어 내는 방법의 하나다.
산이 그들을 바다로 밀어냈고, 바다는 그들을 낯선 사람들과 만나게 했으며,
낯선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보이는 것이 곧 첫 번째 정보가 되었다는 독법이다.
그리스의 칼로스(kalos), 즉 외양적 아름다움은 그런 사회에서 단순한 장식 이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름다워야 했고, 훌륭해야 했다”

 

후대 고전기 그리스에는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 등장한다.
바로 칼로스 (kalos)와 아가토스 (agathos)란 개념이다.
여기서 칼로스 (kalos)는 아름답고 훌륭하다는 뜻이고, 아가토스 (agathos)는 선하고 용감하며 뛰어나다는 뜻이다.
두 개념이 결합된 이상이 칼로카가티아 (kalokagathia)이다.

 

쉽게 번역하면 이런 사람이다.
보기에도 훌륭하고, 실제로도 훌륭한 인간.
몸도 아름다워야 하고 정신도 훌륭해야 한다.
전쟁에서도 용감해야 하고 말도 잘해야 한다.
육체와 영혼을 함께 단련해야 한다.

 

물론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읊던 시대에 철학책을 펼쳐놓고 “이것이 칼로카가티아이다”라고 말했던 것은 아니다. 칼로카가티아라는 개념이 사회적 이상으로 선명해지는 것은 후대 고전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개념의 문화적 씨앗을 호메로스 세계에서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파리스는 오히려 이 이상을 설명하기 위한 훌륭한 실패작이다.
파리스는 칼로스(kalos)이다.

 

잘생겼다.
옷도 멋지다.
여성에게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의 형, 헥토르가 보기에는 아가토스(agathos)가 부족하다.
책임과 용기와 전사의 의무가 부족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얼굴은 반반한데 인격이 떨어진 남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칼로카가티아가 재미있다.

 

그리스인이 외모만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칼로스(kalos)하나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아가토스(agathos)도 중요시했을까.

 

아름답게 보이는 것과 실제로 좋은 인간인 것은 대부분 서로 같지 않다는 사실을 그들 역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알타미라에서 그리스 조각까지,
서양은 끈질기게 외모지상주의였다”

 


여기서 우리는 시간을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스페인 북부의 알타미라 동굴이다.

 

알타미라의 유명한 들소와 야생동물 그림은 대략 후기 구석기 시대에 그려졌다. 바위의 굴곡을 동물의 어깨와 배처럼 이용하고, 색과 선을 겹쳐 실제 동물의 부피감과 움직임을 놀랄 만큼 생생하게 만들어냈다. UNESCO도 북스페인 동굴미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동물의 사실적인 세부 묘사를 지적한다.

 

물론 알타미라 사람이 자신을 ‘서양인’이라고 생각했을 리는 없다.
기원전 수만 년의 동굴화와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조각 사이에 직선적인 문화적 계보가 있었
다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이점이 서양 미술사가 나중에 집요하게 발전시키게 될 한 시선의 아주 오래된 예고편으로 보고 싶다.

 

“저것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가.”
“근육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몸의 무게는 어느 다리에 실리는가.”
“눈으로 본 인간을 돌 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게 만들 것인가.”
그리스 조각의 역사는 실제로 이런 방향으로 진행된다.

 

 

기원전 590~580년 무렵의 초기 쿠로스상은 아직 기하학적이고 정면성이 강하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조차 이 초기 조각의 형태를 “거의 추상에 가까운 기하학적 형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한다.
어깨.
복근.
허벅지.
무릎.
골반.
몸의 중심.
그리스 조각가는 인간의 몸을 집요하게 관찰하기 시작한다.

 

기원전 6세기의 쿠로스만 비교해도 장식적 패턴에서 점차 정확한 해부학적 표현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다 고전기로 넘어가면 인간은 더는 돌처럼 서 있지 않다.
몸의 무게가 한쪽 다리로 이동한다.
골반이 움직인다.
어깨가 반대로 기울어진다.
인체가 살아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 조각이 단순한 사진처럼 사실주의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현실의 인간보다 조금 더 완벽한 인간을 만들었다.

 

보이는 인간을 정확히 관찰한 뒤, 거기서 흠을 걷어내고 이상적인 비례를 남겼다.
즉 그리스의 조각은 사실성과 이상성이 만나는 지점이다.
바로 칼로스(kalos)의 돌 조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동양은 왜 ‘닮음’보다 ‘뜻’을 보려 했는가”

 


여기서 우리는 조금 위험하지만, 비교를 하나 해보자.
미술사 시험 답안에 “서양은 사실적이고 동양은 추상적이다”라고 한 줄 쓰면 당연히 감점 대상이다.

 

그리스에도 추상미술이 있었고 중국에도 사실적인 초상화가 있었으며, 인도의 조각은 육체적으로 매우 풍부하다.

 

그런데도 문명 전체를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면 흥미로운 경향의 차이는 존재한다.
예를 들어 중국 북위 시대인 486년에 제작된 미륵불상을 보자.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이 작품을 설명하면서 아주 흥미로운 표현을 쓴다.
이 불상에서는 육체의 세부보다 정신적 차원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옷주름은 실제 천처럼 자연스럽게 떨어지지 않는다.
불꽃 같은 추상적 형태로 바뀐다.

 

신체의 해부학적 정확성은 억제되고, 관람자의 시선은 평온한 얼굴과 영적인 힘으로 향한다.
중국 인물미술을 설명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또 다른 문장은 더욱 직접적이다.

 

중국의 인물 표현에서는 정확한 해부학적 재현보다 인물의 내적인 정신, 즉 전신(傳神)을 전달하는 일이 핵심이었다는 설명이다.
이것이 내가 전하고 싶은 동서양 대비의 핵심이다.

 

서양의 한 흐름이 묻는다.
“그 사람은 어떻게 보이는가.”
동양의 한 흐름은 묻는다.
“그 사람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것을 조금 과장해서 이렇게 부르고 싶다.
서양의 칼로스(kalos)
동양의 아가토스(agathos)

 

물론 이것은 미술사 전체를 둘로 갈라놓는 학술적 법칙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미적 방향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비유일 뿐이다.
그렇지만 꽤 재미있는 비유이다.

 

“헬레네는 여자가 아니라 ‘국보’였다는 발칙한 가설”

 


그러면 다시 헬레네에게 돌아가 보자.
트로이 원로들의 대사가 갑자기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들은 사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저 정도면 전쟁 날 만하다.”
끔찍한 말이다.

 

그런데 고대 세계의 가치체계를 생각하면 조금 달리 보인다.
헬레네는 단순히 얼굴이 예쁜 한 개인이 아니다.
왕가의 혈통이다.
스파르타 왕비이다.
그리스 최고의 영웅들이 한때 경쟁했던 여성이다.
신화적 출생을 가진 존재이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명성을 가진 존재이다.
그래서 나는 헬레네를 오늘날의 감각으로 조금 불경하게 번역해 본다.
헬레네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국보급 문화재였다.

 

국보 1호급 문화재를 옆 나라 왕자가 관광 왔다가 주인 몰래 훔쳐 간 셈이다.
원래 나라에서는 돌려달라고 한다.
가져간 나라는 못 준다고 한다.

 

옛날에 공동대응 협약까지 맺어놓은 주변국들이 몰려온다.
그 결과 10년 전쟁이다.

 

문화재 환수를 위한 분쟁치고는 비용이 지나치게 크다.
물론 이 비유에는 불편한 진실도 들어 있다.

 

헬레네를 문화재라고 부르는 순간 고대 남성 중심사회가 여성을 얼마나 쉽게 왕가의 명예와 소유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는지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리아드》 3권의 결투 조건에서도 승자는 헬레네뿐 아니라 그녀와 함께 온 재산까지 가져가게 되어 있다.
즉 전쟁의 언어에서 헬레네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재산이고, 명예이며, 상징자본이다.

 


“그런데 그 국보는 결국 원래 박물관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트로이 전쟁에는 아주 묘한 후일담이 있다.
트로이는 망한다.
수많은 영웅은 죽는다.
아킬레우스도 죽는다.
헥토르도 죽는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다시 10년을 헤맨다.
그런데 헬레네는?
스파르타로 돌아간다.

 

《오디세이》 4권에서 텔레마코스가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 궁전을 찾아가면 헬레네가 그곳에 있다.

 

메넬라오스와 다시 부부로 살고 있다.
왕궁에서는 자녀들의 혼인 잔치까지 열리고 있다.
도시 하나가 사라지고 세대 하나가 전쟁터에서 갈려 나간 뒤,
정작 사건의 중심에 있던 헬레네는 다시 스파르타 왕궁에 앉아 있는 것이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10년간의 국제 문화재 환수를 위한 전쟁 끝에 국보가 원래 전시장으로 돌아온 꼴이다.
호메로스의 세계가 현대의 블랙코미디보다 더 잔인한 이유이다.

 

“트로이는 정말 있었는가”

 


트로이 목마가 정말 있었는가.
아킬레우스가 실제 사람이었는가.
헬레네 한 명 때문에 10년 전쟁이 실제로 벌어졌는가.
여기에 고고학이 끼어든다.
연도를 따라가 보면 꽤 재미있다.
1793년, 오늘날 트로이 유적에 대한 근대적 탐색의 역사가 시작된다.
1810년, 학자들이 이 일대를 고대의 일리온과 연결하기 시작한다.
1820년, 히사를르크가 트로이 후보지로 더욱 명확하게 지목된다.
1868년, 독일인 사업가 하인리히 슐리만이 히사를르크를 방문한다.
1870년, 슐리만이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한다.
1873년, 그는 금과 은으로 이루어진 엄청난 보물을 발견하고 이것을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고 선언한다.

 

문제가 하나 있다.
프리아모스 것이 아니었다.
그가 발견한 보물은 트로이 II 지층의 것으로, 호메로스의 트로이 전쟁으로 추정되는 시대보다 약 천 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그가 너무 신이 난 나머지 땅을 지나치게 깊고 거칠게 파면서 정작 중요한 후기 청동기 층 일부를 훼손했다는 것도 고고학사의 유명한 아이러니이다.

 

슐리만의 뒤를 이어 1893~1894년빌헬름 되르펠트가 발굴을 이어가며 트로이 VI 지층의 중요성을 밝혀낸다. 1932~1938년에는 신시내티대학의 칼 블레겐이 훨씬 체계적인 발굴을 진행해 복잡한 지층을 정리한다. 그리고 1988년, 만프레트 코르프만이 이끄는 튀빙겐대학 팀이 새로운 대규모 발굴을 시작한다. 마침내 1998년, 트로이 유적은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그 장소는 오늘날 튀르키예 북서부 차나칼레주의 히사를르크이다.

 

다르다넬스 해협 입구에서 약 4.8km 떨어진 곳이다.
그리고 여기서 신화와 역사의 경계가 재미있어진다.
후기 청동기의 트로이 VI 지층은 대략 기원전 12세기 무렵 파괴되었고, 화재와 인간 유골, 투석용 돌 등이 발견되어 전쟁으로 파괴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그것이 바로 호메로스가 노래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전쟁이었다고 증명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슐리만이 “《일리아드》가 전부 사실이었다”라고 증명한 것 보다, 더 흥미로운 일을 했다.

 

“신화에 주소를 만들어주었다.”

 

“누가 트로이를 땅속에 묻었을까”

 


흔히 상상하기 쉬운 이야기가 있다.
분노한 아카이아인(그리스인)들이 트로이를 완전히 불태우고, 다시는 사람이 살 수 없도록 흙으로 깨끗하게 덮어버렸고, 그래서 수천 년 동안 도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고고학적으로는 조금 다르다.
트로이는 한 번 세워졌다 한 번 멸망한 도시가 아니다.
도시 위에 도시가 세워졌다.

 

불타면 무너진 흙벽을 평탄하게 만들고 다시 집을 지었다.
지진이 나면 또 그 위에 지었다.
전쟁이 나면 다시 지었다.

 

그 과정이 수천 년 동안 반복되면서 인공 언덕이 최대 약 16m 높이까지 형성되었다.

 

현재까지 10개의 주요 도시층과 수백 개의 건축단계가 확인된 이유이다.
그래서 트로이가 땅속에 숨어버린 진짜 이유는 아카이아인(그리스인)들이 거대한 삽을 들고 복토 작업을 했기 때문은 아니다.

 

‘역사 자체가 복토공’이었다.
이쪽이 오히려 더 멋진 이야기이다.
한 문명이 무너질 때마다 다음 문명이 그 위에서 밥을 먹고 아이를 낳고 집을 지었다.
그렇게 신화가 언덕이 되었다.

 


“다시 아름다움 이야기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산 사이에서 살았다.
농사를 지었지만 땅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배를 탔다.
배를 타고 낯선 인간을 만났다.
물건을 보여주었다.
도자기를 보여주었다.
몸을 보여주었다.
도시를 보여주었다.
신전을 보여주었다.
올림픽에서는 자기 육체를 보여주었다.
전쟁터에서는 갑옷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나는 여기서 서양 문화의 오래된 성향 하나를 본다.
가치는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점이 그리스의 칼로스(kalos)를 단순한 ‘예쁨’으로 번역하고 싶지 않은 이유이다.
칼로스는 눈에 보이는 탁월성이다.
몸이 아름답다.
물건이 훌륭하다.
행동이 멋있다.
그리고 아가토스(agathos)가 그 뒤를 따라와야 비로소 완성된다.

 


“동양에서는 사물을 오래 보라 한다”

 


그리고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혀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나태주의 〈풀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이 짧은 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헬레네의 미학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트로이 원로들은 헬레네를 보는 순간 알아본다.
“여신 같다.”
판단에 3초도 걸리지 않는다.

 

나태주의 풀꽃은 반대이다.
한눈에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니다.
쪼그려 앉아야 한다.
가까이 가야 한다.
자세히 봐야 한다.
그것도 부족하다.
오래 봐야 한다.
그제야 아름답다.

 

이런 대비를 서양과 동양의 모든 미학을 설명하는 법칙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두 세계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서로 다른 방식의 상징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다.

 

헬레네의 아름다움은 즉시 반응하는 아름다움이다.
풀꽃의 아름다움은 시간을 들여 반응하는 아름다움이다.
하나는 칼로스(kalos)의 세계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 안의 아가토스(agathos)를 찾아가는 세계에 가깝다.

 

“어쩌면 프리아모스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프리아모스의 대사로 돌아가야 한다.
트로이 원로들은 헬레네의 칼로스를 본다.

 

“불멸의 여신 같다.”

 

그러나 프리아모스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원로들처럼 헬레네의 얼굴만을 보고 끝내지 않는다.

 

그녀를 자기 곁에 앉힌다.
그녀에게 가족을 묻는다.
그녀의 과거를 듣는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너를 탓하지 않으마.”

 

흥미로운 장면이다.
눈앞의 아름다움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던 문명의 왕이 오히려 마지막에는 외양을 넘어 인간의 사정을 보려고 한다.
칼로스에서 아가토스로 넘어가는 순간처럼 보인다.

 

그래서 트로이 전쟁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쩌면 “헬레네는 얼마나 아름다웠는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은 아름다움에 얼마나 ‘빨리 설득되는가?’라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3천 년 전 트로이 원로들을 비웃을 수 있다.
여자 하나 때문에 전쟁을 한다고.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예쁜 얼굴 하나 때문에 제품을 사고, 잘 디자인된 포장 때문에 같은 물건을 더 비싸게 사고, 잘생긴 정치인의 이미지를 능력으로 착각하고, 인스타그램 사진 한 장을 보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를 사랑한다.

 

알고리즘 시대의 인간이 청동기 시대 트로이 노인보다 그리 진화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차이는 있다.

 

트로이 원로들에게는 적어도 10년의 전쟁을 겪고 난 뒤 이런 말을 할 지혜가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돌려보내야 한다.”

 

그리고 프리아모스에게는 한 사람의 외양과 한 사람의 죄를 구분할 여유가 있었다.
“나는 너를 탓하지 않으마.”
어쩌면 칼로카가티아가 말하려던 것도 결국 이것인지 모른다.

 

아름다운 것은 강력하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칼로스(kalos) 옆에는 반드시 아가토스(agathos)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름다움은 덕이 아니라 욕망이 되고,
욕망은 때로 한 왕국의 가격보다 비싸진다.
그리고 가끔은 그 왕국의 이름이
‘트로이’인 것이다.

 

‘대체불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있어 ‘경제자본’과 함께 ‘문화자본’이 꼭 함께해야 할 이유다.
그러나 문화자본을 갖는다는 점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다음의 문장이 잘 말해준다.

 


“당신은 이웃 나라에 빼앗긴 미스 코리아 진을 되찾으러 전쟁터로 나갈 준비가 되었나?”

 

하지만 우리는 큰돈을 번다면, 그곳이 전쟁터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곳에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