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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음에 숨죽이고, 마지막 박수에 하나 됐다' 조수미, 4,200석 울린 불멸의 목소리

조수미, 세계 무대 데뷔 40년…경희대 평화의전당 울린 '불멸의 목소리'
카네기 LEE 재단 창립 7주년 '지구힐링콘서트' 성료
질다로 시작한 40년 음악 여정…오페라부터 '아베 마리아'까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거장의 무대

K-Classic News 오형석 기자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국제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소프라노 조수미가 다시 무대 위에 섰다. 그리고 4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객석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카네기 LEE 재단 창립 7주년을 기념해 열린 ‘지구힐링콘서트’가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4,200석 규모의 공연장을 가득 채운 이날 무대는 조수미의 세계 무대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한 시대를 대표해 온 거장의 음악적 현재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무엇보다 이날 공연은 ‘40년’이라는 숫자에 머물지 않았다. 조수미에게 40년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지금도 무대 위에서 새롭게 쓰이고 있는 음악의 시간이었다.

 

40년의 시간이 첫 음에 담겼다 공연의 시작은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비제의 ‘아를의 여인 모음곡 제2번’ 중 ‘파랑돌’이 열었다.

 

오케스트라의 힘찬 선율이 공연장을 채운 뒤 조수미가 무대에 등장했다. 객석의 시선이 일제히 무대로 향했다.

 

조수미는 오페라 메들리를 비롯해 ‘아름다워라’, ‘Buongiorno!’, ‘Masque’ 등을 차례로 선보였다. 고난도의 콜로라투라와 폭넓은 음역, 정확한 음정은 물론이고 각 곡의 성격을 세밀하게 구분하는 표현력이 돋보였다.

 

젊은 시절의 조수미가 ‘놀라운 기교’를 통해 세계 무대를 사로잡았다면, 이날의 조수미는 기교에 음악적 깊이를 더한 모습이었다.

 

빠르고 정교한 패시지에서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집중력을 보여줬고, 서정적인 대목에서는 소리를 밀어붙이기보다 여백과 호흡을 활용하며 음악의 깊이를 더했다.

 

40년의 무대 경험이 단순한 경력의 숫자가 아니라 음악적 언어의 깊이로 축적돼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테너와 함께한 ‘Romance’에서는 또 다른 조수미를 만날 수 있었다. 화려한 고음의 향연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 성악가와 섬세하게 호흡하며 음악의 서정성을 끌어냈다.

 

조수미의 세계 무대 데뷔는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의 ‘리골레토’에서 질다 역을 맡은 이후 그는 세계 주요 오페라극장과 콘서트홀을 누비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 과정에서 조수미의 이름은 한국을 대표하는 성악가라는 수식어를 넘어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구축했다.

 

특히 그의 음악적 여정은 오페라 무대에만 머물지 않았다. 클래식의 대중적 확장과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보다 폭넓은 관객과 소통해 왔다.

 

이날 공연에서도 그 음악적 여정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정통 오페라 레퍼토리에서 출발해 크로스오버적 색채가 강한 작품까지 폭넓게 아우르면서도, 중심에는 언제나 ‘성악가 조수미’가 있었다.

 

2부에서는 공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이동했다. 이예영 카네기 LEE 재단 이사장의 오카리나 연주 ‘El Cóndor Pasa’를 시작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이현정의 사라사테 ‘치고이너바이젠’, 바리톤 나한유의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아리아, 바리톤 정태준의 비제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가 이어졌다.

 

이현정·나한유·정태준은 재단이 발굴하고 지원해 온 신진예술가들이다. 이들의 무대는 조수미의 40년을 기념하는 공연의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냈다. 한 시대의 거장을 조명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시대의 음악가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함께 마련했다는 점이다.

 

거장의 현재와 신예의 미래가 한 공연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이날 ‘지구힐링콘서트’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클래식 음악의 장으로 확장됐다.

 

공연 후반부 조수미는 다시 무대에 올랐다. 번스타인의 ‘캔디드’ 중 ‘I Am Easily Assimilated’와 ‘Aria du Destino’를 통해 극적인 표현력을 선보인 데 이어, 트럼페터 알렉스 볼코프와 함께 ‘Gabriel’s Oboe &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Eternal Peace’ 등을 연주했다.

 

특히 이 무대에서는 정통 클래식과 크로스오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조수미의 음악적 유연성이 돋보였다. 그에게 장르의 경계는 음악을 제한하는 선이 아니라 더 많은 관객과 만나는 통로에 가까웠다.

 

‘지구힐링콘서트’가 내세운 평화와 환경, 공존의 메시지 역시 음악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최영선이 지휘한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는 공연 전반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성악과 기악의 균형을 맞췄다.

 

공연의 백미는 앙코르였다. 조수미와 테너, 알렉스 볼코프가 함께 무대에 오른 뒤 조수미의 ‘Ave Maria’가 울려 퍼졌다. 이날 ‘Ave Maria’는 화려함보다는 깊이가 앞선 무대였다.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축적된 음악적 경험과 내면의 울림이 한층 절제된 표현 속에서 객석에 전달됐다.

 

그리고 마지막 곡 ‘Radetzky March’.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자 객석의 박수가 자연스럽게 음악에 합류했다. 지휘자의 신호에 맞춰 관객들은 함께 박수를 보냈고, 무대와 객석은 하나의 거대한 앙상블이 됐다. 4,200석의 공연장이 하나의 리듬으로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첫 음이 울릴 때 숨을 죽였던 관객들은 마지막 박수에서 하나가 됐다.

 

조수미의 40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지구힐링콘서트’가 남긴 가장 큰 의미는 조수미의 40년을 과거형으로 기록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1986년 질다로 시작한 국제무대의 여정은 2026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젊은 시절 세계를 놀라게 했던 폭발적인 기교는 이제 음악적 깊이와 만났고, 오페라 무대에서 다져진 표현력은 콘서트와 크로스오버 무대로 확장됐다. 그리고 그 무대 뒤에는 새로운 세대의 음악가들이 서 있다.

 

조수미의 40년은 한 성악가의 성공담만이 아니다. 한국의 한 성악가가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그 이름을 세계 무대에 새기기까지 걸어온 시간이며, 이제 그 다음 세대가 새로운 무대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이날의 마지막 박수는 조수미에게 보내는 헌사인 동시에 한국 클래식 음악의 다음 40년을 향한 박수이기도 했다.

 

조수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4,200석의 평화의전당.

첫 음에는 40년의 시간이 담겼고, 마지막 박수에는 앞으로의 시간이 담겼다.

조수미의 40년은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노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