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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 한국 최초 프란시스코 고야 단독 조망전, 예술의전당서 개막

UNC 갤러리, '스페인의 거장 고야: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展, '카프리초스' 원작 80점 국내 최초 공개
고야가 던진 200년의 질문…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

K-Classic News 오형석 기자 |"근대 미술은 고야로부터 시작되었다."

미술사가 리오넬로 벤투리의 이 유명한 평가는 단순한 찬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예술가가 회화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한 선언이다. 궁정의 화려함과 인간 내면의 어둠을 동시에 응시했던 스페인의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 그를 통해 근대적 시선이 탄생했고, 예술은 더 이상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시대를 증언하고 사회를 성찰하는 언어가 되었다.

 

오는 6월 26일부터 9월 30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개최되는 '스페인의 거장 고야: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전은 국내 최초로 프란시스코 고야의 일생과 예술세계를 단독 조망하는 대규모 특별전이다.

 

UNC Gallery(대표 유문화)가 주최·주관하고 더 리볼로 컬렉션(The Rivolo Collection), 노루페인트가 협력하며, 주한 스페인 대사관과 주한 세르반테스 스페인 문화원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오늘날에도 유효한 고야의 시대정신을 재발견하는 자리로 마련된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고야의 대표 판화 연작 '카프리초스(Los Caprichos)' 원작 80점이 한국에서 처음 공개된다는 점이다.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판화 연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카프리초스'는 18세기 말 스페인 사회를 지배하던 무지와 미신, 종교적 위선, 권력의 부패, 인간 욕망의 민낯을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특히 전시 제목의 모티브가 된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El sueño de la razón produce monstruos)'는 단순한 풍자 이미지를 넘어 계몽주의 시대가 남긴 가장 강력한 경고이자 인간 문명에 대한 성찰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고야는 왕실의 총애를 받는 궁정화가였다. 그러나 그는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권력의 민낯을 외면하지 않았다. 왕과 귀족의 초상 속에서도 인간적 허위와 사회적 모순을 포착했고, 전쟁과 폭력, 광기와 공포를 누구보다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그의 예술은 이상화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기존 미술의 틀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을 직시했다. 때문에 고야는 흔히 낭만주의의 선구자이자 사실주의의 예언자, 그리고 현대미술의 출발점으로 불린다.

전시는 총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섹션 '빛과 그림자의 초상 – 고야의 두 얼굴'은 초기 궁정화가 시절부터 후기 흑색 회화에 이르기까지 대표작들을 대형 미디어아트로 재구성한 공간이다. 화려한 궁정화가와 시대를 비판한 예술가라는 상반된 정체성이 시각적으로 교차하며 관람객을 고야의 세계로 이끈다.

 

'스페인의 궁정화가, 고야'에서는 금박 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나 왕실 최고의 화가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연대기 형식으로 소개한다. 종교화와 궁정화, 역사적 사건과 개인적 경험들이 교차하며 한 시대를 대표한 화가의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빛에서 어둠으로'는 고야 예술의 결정적인 전환기를 다룬다. 성공한 궁정화가에서 사회비판적 예술가로 변모하는 과정과 '카프리초스' 탄생의 배경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전시의 핵심 공간인 '변덕(카프리초스)'에서는 한국 최초로 공개되는 원작 80점을 통해 고야의 예술적 상상력과 사회 비판 정신을 만날 수 있다. 인간 욕망과 군중 심리, 종교적 위선과 권력의 폭력성을 해부하는 작품들은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놀라운 동시대성을 보여준다.

 

'귀머거리의 집'은 이번 전시의 백미라 할 만하다.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고야가 세상과 단절된 채 머물렀던 공간을 재현한 이 섹션은 말년의 대표작인 '검은 그림들(Black Paintings)'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공포와 불안, 절망과 광기가 응축된 작품들은 인간 존재의 심연을 응시한 예술가의 마지막 기록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섹션 '어둠에서 빛으로 – 끝나지 않은 고야의 시대'는 고야 이후의 예술을 조망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 속에서 계승되었으며, 전쟁과 폭력, 인간 소외와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주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UNC의 유문화 대표는 이번 특별전의 의미를 단순한 회고전 이상의 가치로 설명한다.

 

유 대표는 "프란시스코 고야는 단순히 스페인 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이 아니라 인류가 직면한 이성과 광기, 권력과 욕망, 진실과 위선의 문제를 가장 예리하게 통찰한 예술가"라며 "오늘날 우리가 고야를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 역시 그의 작품이 특정 시대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한국 최초로 고야의 일생을 단독 조망하는 대규모 기획전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며 "궁정화가로서의 화려한 성공기부터 '카프리초스', 그리고 말년의 '검은 그림들'에 이르기까지 고야 예술의 전 과정을 하나의 흐름 안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밝혔다.

고야는 자신의 시대를 살았지만 미래를 향해 그림을 그린 예술가였다. 그리고 그가 남긴 질문은 20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한편 '스페인의 거장 고야: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전은 한 거장의 작품을 감상하는 자리를 넘어 예술이 사회를 향해 던지는 질문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전시다. 고야의 시대는 끝났지만, 그가 남긴 경고와 통찰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성이 잠들지 않는 한, 예술은 시대를 비추는 가장 강력한 빛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