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K-Classic 창안자 · 예술비평가)
한강 작가의 소설이 국제 문학상에서 연이어 수상하면서 한국 문학이 세계적으로 조명받는 시대가 도래했다. 문학은 언어의 예술이며, 민족 정서의 결정체다. 그만큼 외국어 번역에는 한계가 따르고, 작품의 정서적 깊이와 감성을 온전히 전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를 음악과 무대, 인간의 육성으로 풀어내는 오페라는, 한국 문학이 지닌 정서의 본질을 전 세계인과 감각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최고의 예술 형식이라 할 수 있다.
황순원과 이효석, 한국 문학의 정수에서 K-Opera로
한국 근대문학의 두 거목, 황순원과 이효석. 그들이 남긴 《소나기》와 《메밀꽃 필 무렵》은 수많은 세대를 감동시킨 서정의 진경(眞境)이다. 각각 유년의 순수한 사랑과 들길의 낭만을 담은 이 작품들은 이미 다수의 번역본을 통해 세계 문학 독자에게 알려져 있지만, 그것이 무대 위에서 노래되고 연기될 때, 그 감동은 언어를 초월한 보편성으로 확장된다.
실제로 《메밀꽃 필 무렵》은 제2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창작 오페라가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음을 증명한 바 있다. 한국적 풍경, 한국어의 아름다움, 그리고 절제된 감정의 흐름은 무대 위에서 더욱 빛났고, 관객들은 문학을 새롭게 ‘듣고’, ‘보는’ 감동을 경험했다.
《소나기》와 유럽 소극장 교류의 가능성
《소나기》는 특히 유럽의 소극장들과 문화적 교류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모차르트의 《바스티엔과 바스티엔나》처럼 단막 오페라 형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소년과 소녀의 수채화 같은 서정, 그리고 순수한 사랑의 죽음을 통해 보편적 감동을 이끌어낸다. 이 두 작품을 1시간 남짓한 더블빌 형식으로 엮는 공연은, 독일어권 소극장 및 청소년 오페라 관객에게 이상적인 기획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등에서는 젊은이들의 감성을 다룬 소규모 서정극에 대한 수요가 높은 바, 《소나기》는 그 문을 여는 K-Opera의 서정적 프론트가 될 수 있다.
K-Opera, 문학에서 시작하는 문화 외교
문학을 오페라화하는 것은 단순한 창작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정서를 세계에 번역 없이 전달하는 예술 외교이며, 한국어의 아름다움과 정조를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다. 특히 소박하고 깊은 이야기를 담은 단막 오페라는 다양한 나라의 소극장, 청소년극장, 축제형 무대에 유연하게 맞출 수 있어 국제 공동제작 및 교류에 강한 장점을 가진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단지 예술가들만의 일이 아니다. 지자체, 문화재단, 기업 후원, 해외 문화원 등이 연계된 ‘K-Opera 문학 프로젝트’로 확대된다면, 문학과 음악, 무대 예술이 융합된 한국 문화의 새로운 전령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세계로 가는 작은 걸음, 그러나 깊은 발자국
K-POP이 대중의 언어로 전 세계를 매혹시켰다면, K-Opera는 감성과 예술의 언어로 세계의 무대를 조용히 흔들 것이다. 한국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들은 그 시금석이 될 것이며, 지금이야말로 한국 문학과 오페라가 손을 맞잡고 세계를 향해 나아갈 결정적 시점이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 줄의 문장이 한 곡의 아리아로, 한 권의 소설이 한 편의 오페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 무대는 한국에서 세계로, 조용하지만 깊고 멀리 번져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