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경 『생태시학의 변주』 

  • 등록 2022.02.14 17: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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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lassic News  이백화기자 |

 

 

석연경 『생태시학의 변주』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석연경 시평집 『생태시학의 변주』 가 발간되었다. 석연경 시인은 그동안 문예지에 발표했던 시 평론 중 생태적 경향이 드러나는 평론 일부를 묶었다. 생태 위기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이 시점에서 석연경 시인은 예술적인 시로 생태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하며 독자에게 깊이 있게 생태적 사고를 유도하고 생태적인 삶으로 함께 나아가고 싶었다.  

 

시인은 우주만물을 대함에 있어 일반인보다 특별하고 예민한 더듬이를 타고난 사람이다. 시 인은 다양한 각도에서 세계를 보고 느끼며 상상하고 생각하여 이 내용을 적절한 시적 형식으로 표현한다. 석연경 시인은 시 속에 의도적으로 배치한 다의성을 생태학적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의미와 숨겨진 의미를 예술적인 계산 하에 효과적으로 분석하여  시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깊이와 폭을 독자가 잘 체험하도록 분석하였다. 석연경 시인은 사실적으로 표현된 시 속에서 오히려 환상성을 분석해 내고, 환상적으로 표현한 시에서 현실을  적나라하면서도 강렬하게 비판하는 의식을 분석해내었다. 석연경 시인은 생태적인 소재나 주제가 있는 시를 다양하게 해석하며 깊이 있게 생태의식을 변주하였다. 생태적 경향의 시세계를 확장하고 현실의 절박한 문제와 함께 예술의 바다를 연다.  

 

석연경 시인은 어떤 방식으로 시가 표현되었든지 시인은 우주만물에 대한 사랑을 탐구하고 해석하는 사람이며 이것은 시인의 운명이라고 본다. 요컨대 이 책에서 석연경 시인은 시의 본질을 사랑에 두고 있다. 석연경 시인은 자연과 인간과 우주만물에 대한 생태적인 사랑으로부터 시가 발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석연경 시인은 우주 모든 존재에 특별한 시적 관심과 관찰의 촉각을 세워 사랑을 하고 그 결과를 시라는 언어 예술로 표현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생태적인 시라고 보고 이런 관점에서 생태의식이 드러나는 시를 분석하였다.

 

석연경 시인은 시적이라는 것은 생태적이란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생태시학의 변주』는 세계와 자아를 동일시하는 서정시인의 생태적 경향과 생태의식이 드러나는 시를 치밀하게 분석했다. 생태 의식이 어떤 형태로 미학적 변주를 하면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해석되는지 『생태시학의 변주』에서 잘 나타난다.  

 

『생태시학의 변주』는 총 4부로 구성이 되어 있다. 제1부 ‘허상과 욕망, 생태계의 끌림과 홀림’에서는 자연현상을 그대로 보여 주면서 생태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하도록 유도하는 시를 평한다. 뿐만 아니라 자연현상 속에서 일어나는 비생태적인 현실을 비판하는 시를 평한다.

제2부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생태적 시선’은 죽음을 인식한 인간이 유한한 삶에서 무엇을 욕망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시를 평한다. 죽음에 대한 바른 인식은 삶에 대한 바른 인식과 다르지 않다. 삶과 죽음이 하나이고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무아임을 깨닫는 시를 평한다. 요컨대 삶과 죽음이 생태적 순환 속에서 하나이며 너와 네가 하나임을 인식하고 더불어 살아야 함을 보여주는 시를 살펴본다. 

 

제3부 ‘공空과 색色을 넘어 생태적 사유로’에서는 제2부의 인식과 연결하여 공과 색의 의미를 인식하고 공과 색이 하나임을 보여주는 시를 평한다. 현상세계를 바르게 인식한 후에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생태의식이 더 강렬하게 드러난 시를 살펴본다.

제4부 ‘현실의식과 생태의식’에서는 월북 작가를 살펴보면서 남북 정치 생태와 남북 분단이라는 한국 문단의 생태 환경을 살펴본다. 민족상잔의 비극 후 분단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문인들이 선택한 것을 결국 어떤 곳이 더 생태적인 정치를 하느냐의 선택이기도 하다. 불운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인들은 생태적인 국가를 염원하며 현실을 뛰어 넘어 이상세계로 가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4부에서는 광주전남작가회의 기관지인 『작가』지로 등단한 다섯 시인의 시세계를 살폈다.

 

석연경 시인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은 생태적 인드라망 안에서 서로 비춰주고 보듬어주며 사랑하고 살아야 함을 인식하고 실천했을 때 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석연경 시인은 시는 자유여야 한다고 말한다. 시공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현실의 모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억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비생태적인 현실의 틀을 깨는 것이 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 인간이 우주 만물과 생태적으로 더불어 사는 것, 이것이 생태의식이 드러나는 시이며 『생태시학의 변주』에서 석연경 시인이 추구하고 분석해내는 세계이다.

 표지 그림은 석연경 <우주의 정원 >이며  『생태시학의 변주』 는 연경출판사에서 만든 첫 책이다. 연경출판사는 앞으로 인문 문화 예술 관련 도서를 출간할 계획이다.

석연경 시인은 경남 밀양 출생으로 2013년 『시와 문화』에서 시, 2015년 『시와 세계』에서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시집 『독수리의 날들』, 『섬광, 쇄빙선』, 『푸른 벽을 세우다』가 있고, 시 평론집 『생태시학의 변주』가 있다. 송수권시문학상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연경인문문화예술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대학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책 속으로>

창조 신화에는 신체화생설身體化生說이 많다. 거인의 주검이 곧 자연이 되는 것이다. 중국의 반고신화盤古神話에도 반고의 몸이 세상이 된다. 손과 발은 산이 되고 피는 강물이 되고 힘줄은 길이 되고 살은 논밭이 되고 숨결은 바람과 구름이 된다. 바빌로니아의 티아마트Tiamat, 인도의 푸루샤purusa, 게르만의 이미르Ymir 등도 모두 몸이 자연이 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카오스 상태에서 제일 먼저 생겨나는 것이 대지의 신 가이아이다. 가이아가 하늘인 우라노스를 낳는 것이다. 한국에는 마고할미 같은 여성거인신이 산이나 바다를 만든다. 이러한 신체화생설과 모성성을 지닌 대지의 신은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하나임을 일러준다. 죽음을 통해 삶이 생기는 것과 삶과 죽음의 순환으로 우주가 운행되고 있다는 순리도 보여준다. 이는 생태적 세계관이다.

이처럼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죽어서 썩는 것이 있기에 씨앗에서 싹이 난다. 김혜순 시 「할머니랑 결혼할래요」는 대지적 상상력으로 죽음과 삶이 하나임을 노래한다. 할머니가 죽으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신화에서처럼 할머니는 죽어서 자연이 되고, 자연이 된 할머니는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적주체는 죽은 ‘할머니 눈을 그렇게 꽉 감겨드릴 필요는 없었는데’라는 후회를 한다. 죽음은 결코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 후 시적주체가 한 일은 할머니 ‘삼베 수의 치마 솔기마다 씨앗을 심어드리는 일’이다. 할머니가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아는 까닭이다. 겨울이 지나면 새싹이 움트듯 때가 되니 할머니 수의의 ‘솔기마다에서 싹이 튼’다. 죽음에서 새 삶으로의 전환은 이처럼 아무렇지도 않고 특별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이행된다.

                               -  「대지모, 신체화생설과 모성성」  중에서

 

 

페인트는 하나의 페르소나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모습을 도포하여 존재의 맨살을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페인트는 시뮬라크르를 양산시키는 매개이다. 페인트로 도포된 새로운 이미지는 실재가 없는 기호이며 환상적 이미지로 실존한다. 이러한 시뮬라크르에 대한 거부로 페인트 통이 쏟아지지만 또 다른 가상현실이 만들어진다. 현대 사회는 시뮬라크르가 실재를 대신하여 진실인양 역할을 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진실인줄로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시뮬라크르의 가상적 이미지 또한 어쩔 수 없는 자신의 부재를 거부한다. 그래서 ‘팔을 휘저으면서 엎질러’진다. 이렇듯 모든 존재는 실재적이고 사실적인 이미지이건 비실재적이고 환상적 이미지이건 실존하기 때문에 그 어느 존재도 부정할 수는 없다. ‘구름 밖 다른 마을에선//똑같은 꿈을 꾸진 않는’ 것이 당연하다.

가상이 실재를 대신하는 상황은 존재와 존재간의 관계를 왜곡시킨다. 발가벗은 본질과 실존 사이에 틈과 거리가 있고 가상은 진실을 차단하는 벽으로 작동한다. 실재가 감추어진 채 시뮬라크르를 진리로 오인하는 것은 각각의 존재가 하나의 벽이기 때문이다. 벽 안의 인간은 소외를 경험한다. 벽 안에 갇힌 실재의 외로움은 환상을 진실이라고 믿고 욕망하지만 결국 욕망은 미끄러지고 또 다른 환상을 쫒기 때문에 사실상 각각의 존재들은 엄청난 두께의 벽을 두른 채 살아간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진실을 바라보려고 해도 ‘벽들이 꼬리를 끌고’ 둘레를 치고 두꺼워진다.    

                            -「시뮬라시옹과 주이상스의 변증법」 중에서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후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아직 우리는 해방의 참맛을 모른다. 미·소 군정기와 휴전으로 인한 분단으로 냉전과 긴장의 역사가 전개되어 진정한 해방을 누리지 못한다. 원인의 본질부터 살핀 후에 문제점들을 분석하는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 관점에서 월북 문학가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생태적인 통일문학으로 가는 긍정적인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학의 사상적 허용은 어디까지인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예술가들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정도가 다르다. 정부가 얼마나 민주적인가를 보려면 예술인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주느냐를 보면 안다. 어떤 정부는 보수적인 문학단체를 지지해주고 진보적인 문학단체는 경계를 한다. 진보적인 문학가들을 지지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표현이 거슬리면 구속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바꾸며 행동하게 하는 힘이 있다. 사회 변혁을 꿈꾸는 문학의 경우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설득력 있게 세계관을 전개해 간다. 문학가를 정치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요컨대 문학가의 진정한 역할과 더불어 문학가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고민하면서 이데올로기의 틀 안에서 고통을 겪어야했던 불우한 시대의 월북 문학가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이 글을 전개한다.

                         -「월북문학가의 행로와 우리문학의 생태적 진로」 중에서

 

 

 

혼불을 처음 봤던 과거의 시적주체와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를 타고 있는 현재의 시적주체와 혼불이 되어 지상을 떠나는 미래의 시적주체가 하나의 시공간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 시에는 시공을 초월하여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한다. 시적주체가 시공을 초월한 상태에서 삶과 죽음을 관조한 후 바라보는 세계는 지상에서 바라보던 세계와 다르다. 혼불이 된 시점에서 바라본 지상의 삶은 스스로 잘남을 뽐낼 필요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우주에서 바라본 이 지상의 세계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골짜기 검은 나무들’틈으로 ‘시간들이 여울져 흐르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느라 욕망하고 폭력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결국 ‘은하의 별처럼 흩어져 있는 수많은 운명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지상의 모든 존재는 잠시 거울에 비춰졌다가 언젠가는 사라질 존재들 일 뿐이다. 아무리 잘났다고 소리쳐봐야 시공을 초월한 눈으로 바라보면 그저 ‘고개를 넘고 골짜기를 건’너는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이 사실 을 혼불이 되고 난 후 깨달은 시적주체는 부끄럽지만 그동안 내 것이라 집착했던 ‘집’과 욕망을 채우느라 진 ‘빚’을 ‘모두 지상에 두고 하늘 고개를 넘는’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야 되는 것이 삶과 죽음의 이치임을 위 시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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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시는 동서화합의 장소였던 카파도키아가 삶과 죽음이 화합하는 장소로 확대 된다. 또한 동굴수도원의 이미지가 삶과 죽음을 관조하고 깨달아가는 시적 상황으로 확대 된다. ‘저승 가는 하늘 길에서 내려보’는 깨달은 자인 시적주체는 즐비하게 ‘죽순처럼 자란 응회암 봉우리들’을 보게 된다. 응회암은 잘 부서지기 때문에 다른 바위에 비해 ‘물리적으로는 부드’럽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시공을 초월한 혼불의 비행에서 바라보는 사물은 나약함의 이면에 초월적 의지를 가진 존재의 단단함을 품고 있다. 그래서 시적주체는 봉우리들의 회색 바위들을 ‘이념적으로는 무척 단단하’다고 표현한다. 이성에 의하여 파악할 수 있는 최고의 관념인 이념은 시대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 뿌리는 단단하다. 삶과 죽음이 하나인 지상에서의 삶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존재들이 춤추는 축제의 장인 것이다.

 

                                     -「혼불, 삶과 죽음을 초월한 축제의 장」 중에서

 

 

 

이백화 기자 greenp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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