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미 리뷰] 인간 이후의 위안, 기술의 시대에 우리는 누구에게 기대어 울 것인가

  • 등록 2026.03.14 10: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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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lassic News 손영미 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어느 전시장 한쪽에서 사람처럼 미소 짓는 존재를 보았다. 금속과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얼굴이었지만 그 눈빛은 묘하게 친절했고 그 친절은 오래 준비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사람들이 그 앞에 줄을 섰다.
대화를 나누고, 웃고,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는 손을 잡았고
누군가는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렀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제 인간이 인간에게 위안을 주던 시대는
조용히 저물고 있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위안을 옮겨 다니며 살아왔다.
자연이 두려워 신에게 기대었고
신이 멀어지자 공동체를 만들었으며
공동체가 흩어지자 가족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가족마저 바빠진 시대에
우리는 반려동물을 품에 안았다.

 

이제 그 다음 순서가 AI라는 사실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흐름인지 모른다. 기술은 늘 인간의 빈자리를 찾아 들어오고 인간은 늘 그 빈자리를 스스로 만들며 살아간다.

 

AI는 지치지 않는다. 상처받지 않는다.
기다림에 화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앞에서 더 쉽게 마음을 연다. 인간에게 털어놓으면 오해가 생기고 기대가 생기며 때로는 배신이 따라온다.

 

하지만 기계는 침묵 속에서도 항상 준비된 위로를 꺼내 놓는다. 그 위로는 완벽하다.
그러나 완벽한 위로는 때로 너무 가볍다.

 

진짜 위안은 함께 흔들려 본 사람만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의 온도는 데이터로 계산되지 않는다. 다음 세대는 인간보다 기계를 더 오래 바라보며 자랄지도 모른다.

 

그들의 친구는 화면 속에 있고
그들의 고백은 알고리즘에게 먼저 닿을 것이다.

 

그렇다면 묻게 된다. 세대를 이어 갈 인간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을 조금 다르게 묻고 싶다.
인간이라는 종이 살아남느냐가 아니라
인간다움이라는 감각이 살아남을 수 있느냐고…

 

인간은 단순히 생존하는 존재가 아니다.
의미를 묻는 존재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 사랑하고 떠날 것을 알면서 손을 잡는다.
고통을 피할 수 있음에도 굳이 서로를 향해 걸어간다.

 

이 비효율적인 선택이 인간을 인간이게 만든다. AI는 우리를 위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삶은 실패와 후회와 기다림으로 이루어진
느린 예술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은 인간의 종말이 아니라 인간의 정의가 다시 쓰이는 시간이다.

 

우리는 더 편리해질 것이다.
더 외로워질 수도 있다. 더 연결될 것이다.
그러나 더 깊이 고립될 수도 있다. 기술은 길을 만들어 줄 뿐 어디로 갈지는 묻지 않는다.
그 방향을 정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언젠가 AI가 우리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여전히 어설픈 인간의 손을 잡고 싶다.

 

체온이 있는 위로는 서툴지만 그래서 오래 남는다. 세대는 유전자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함께 울어 본 기억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기억이 있는 한 인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술은 우리를 이해할 수 있지만,
서로의 눈물을 기억하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다.”

 

손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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