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고전의 균형과 낭만의 고백, '네 연주자가 완성한 사중주의 서사'

  • 등록 2026.02.23 08: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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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블클랑' 정기연주회 성료… 대화 같은 베버, 고백 같은 브람스
네 연주자가 만든 균형과 여운의 밤
베버와 브람스, 두 시대의 감정이 한 무대에서 만나다

K-Classic News 오형석 기자 |한 편의 실내악 공연이 음악사의 흐름을 또렷하게 체험하게 만드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번 무대는 두 개의 피아노 사중주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Piano Quartet in B-flat Major, Op.8과 요하네스 브람스의 Piano Quartet No.3 in c minor, Op.60를 통해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이동하는 정서의 변화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바이올린 이수아, 비올라 이주연, 첼로 김인하, 피아노 이선미로 구성된 앙상블은 각자의 기량을 드러내기보다 네 악기가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지는 실내악 본연의 의미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베버의 사중주는 비교적 초기 작품이지만, 이미 작곡가의 미학적 방향이 또렷하다. 형식은 고전주의적 균형 위에 놓여 있으나 정서는 분명 낭만주의를 향한다. 1악장은 명료한 구조와 자연스러운 주제 전개를 바탕으로 진행되는데, 피아노는 단순한 반주가 아니라 음악의 흐름을 조직하는 중심 역할을 맡는다. 현악기의 선율을 떠받치는 동시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음악을 이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2악장 Adagio였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피아노의 선율은 마치 인간의 목소리처럼 들렸고, 현악기의 음색은 그 위에 감정을 얹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네 악기는 경쟁하지 않고 서로의 공간을 열어 주며 서정적 긴장을 만들어냈다. 이 장면에서 연주자들은 과장된 표현 대신 호흡과 음색의 밀도로 음악을 완성했다.

 

3악장은 미뉴엣 형식을 취하지만 실제로는 스케르초에 가까운 성격을 보였다. 첼로의 역할이 분명하게 살아났고, 리듬의 탄력감이 음악을 가볍게 만들기보다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이어지는 마지막 악장은 활기와 추진력을 통해 전체 작품을 밝은 에너지로 마무리한다. 지나치게 무겁지 않으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 균형감은 이날 베버 해석의 핵심이었다.

 

브람스의 3번 사중주는 전혀 다른 세계로 관객을 데려간다. 흔히 '베르테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개인적 감정의 흔적이 깊이 스며든 작품이다. 밝은 해결보다는 감정의 지속과 응축을 선택하는 음악, 즉 낭만주의의 내면이 극단까지 밀려난 형태라 할 수 있다.

1악장 Allegro non troppo는 비극적 제1주제와 서정적 제2주제가 강하게 대비되며 시작된다. 네 연주자는 개별 악기의 선명한 돌출 대신 음색을 섞어 하나의 커다란 선율처럼 들리게 만들었다. 이는 독주적 화려함을 줄이는 대신 음악 전체의 밀도를 높이는 선택이었다.

 

2악장 스케르초는 강한 리듬 추진력으로 긴장을 끌어올린다. 특히 현악기의 리듬과 피아노의 타건이 서로 맞물리며 긴박한 흐름을 만들었다. 이어지는 3악장 Andante는 공연의 정서적 중심이었다. 첼로와 피아노가 만들어낸 선율은 과장 없이 깊게 울렸고, 바이올린이 그 위에 얹히며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형성했다. 감정의 절제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울림이 발생하는 장면이었다.

 

마지막 악장은 밝은 해소 대신 어둡고 응축된 결말로 향한다. 음악은 끝내 빛으로 완전히 나아가지 않으며 긴장을 남긴 채 멈춘다. 관객에게 심리적 여운을 남기는 브람스 특유의 방식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번 공연의 핵심은 특정 악기의 뛰어난 기교가 아니라 균형이었다. 각 악기는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수행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악기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았다. 특히 음량의 조절과 프레이징에서 긴밀한 합의가 느껴졌고, 이는 실내악이 독주와 근본적으로 다른 장르임을 확인시켰다.

 

사중주는 네 개의 소리가 아니라 네 개의 시선이 만나는 음악이다. 이날 무대에서는 선율이 전달되는 과정이 아니라 형성되는 과정이 들렸다. 베버에서는 밝은 대화의 형태로, 브람스에서는 내면의 고백 형태로 나타났지만 본질은 동일했다. 음악이 서로를 듣는 행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프로그램 구성은 단순한 레퍼토리 나열이 아니었다. 베버가 형식 속에서 감정을 열었다면 브람스는 감정 속에서 형식을 다시 세웠다. 전자는 고전주의의 끝에서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순간이고, 후자는 낭만주의가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단계다. 한 공연 안에서 이 두 지점이 연결되며 음악사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체험으로 다가왔다.

 

공연이 끝난 뒤 남은 것은 특정 악장의 인상이라기보다 감정의 온도 차였다. 밝은 선율의 여운과 깊은 정서의 잔향이 서로 겹치며 오래 남았다. 실내악이 왜 가장 인간적인 음악으로 불리는지... 이날 무대는 그 질문에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답하고 있었다.

오형석 문화전문 기자 yonsei686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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