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성용원 평론가 |

2027년 1월 31일(토) 오후 7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음악은 추상적이다. 그건 과거든 오늘날이든 동양이든 서양이든 언어가 없는 울림의 예술이기에 그렇다. 음악의 실재적 자율성으로 인해 드라마에서 독립적이라고 확신하면서도 음악으로 표현하고 음악으로써 본질의 정수를 표현케 가능하다. 언어가 인간의 의사소통 수단이지만 음악은 지향적 의미들이 움직이는 구도와는 완전히 다른 구도에서 움직인다.
<낭창낭창> 음악이 빠진 빈약한 서사와 주제만 드러내
듀이(John Deway, 1859~1952)는 상징으로서의 언어와 달리, 예술로서의 언어가 더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보았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같은 언어는 차이로 인해 장벽을 만들지만, 예술의 언어는 의사소통의 장벽을 허물기 때문에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에서 의미를 매개하는 매개체로서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만들고, 감상자의 해석을 통해 경험적 의미를 체험하게 한다. 그런데 오늘 발표한 홍윤경의 <낭창낭창>은 드라마와 내러티브의 부재를 음악이 전혀 보완해 주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한 빈약한 서사와 주제만 드러난 시간이었다.
울산 울주군의 모심기 노래 ‘베리끝의 전설’과 ‘삼호섬 전설’에 담긴 민중의 정서를 현대적 음악 언어로 재해석하여 우연한 사고로 죽은 여성이 영혼결혼식을 올린다는 옛이야기에 대한 당위성, 전달성, 음악과 춤의 조화, 관객과의 소통과 공감 등 어느 하나 성공하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니었다.
한 물 지난 20세기 기법 재미도 감동도 주지 못해
이정화 한국춤 프로젝트가 무대 중앙의 연주자들 앞에서 춤을 추며 가야금은 하프로, 타악은 국악, 양악으로 나뉘어졌고 조윤영이 가창을 하였으나 어느 하나도 뚜렷하거나 성공적인 청각적 개성은 더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요즘 어느 공연에서도 볼 수 있는 영상과 조명이 혼합된 무대였다.
언어가 있는 스토리나 춤선을 통해 내용이 전달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음악이라도 충분히 그걸 보충해 주어야 하지만 도리어 음악은 의미 없는 음의 소비에 불과했다. 트릴, 동음 연타, 동음의 반복 및 일정한 모티브의 끝없는 되풀이, 위로 아래로 내달리기만 하는 스케일, 현악기들의 술 타스토나 폰티첼로, 바투토 등의 주법, 일상 소음으로서의 미분음과 음정 없는 취주 등이 음악적 아이디어와 악상의 부재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때우기인데 앞이나 뒤에서 어떤 춤을 추든, 어떤 내용이든 무방하게 어울리지 않는 음악으로 빨래, 비, 홍수, 벼랑 끝에서 떨어지는 긴박함, 정,신적 사랑과 원망, 수중고혼과 영혼 결혼 등을 묘사하고 스스로 전개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음악이 춤과 장면 그리고 내용과 전혀 보조를 맞출 수 없었다.
50분도 채 안 되는 상영시간에 어떻게라도 끌고 가려고 필력의 달림이 역력했다. 음악이 현대적이라도 한다면 동떨어짐과 작곡가의 개인적 전달이 드러나고 이해라도 되겠지만 이미 한물 지난 20세기 기법의 식상한 재현에 불과하여 재미도, 감동도 없었다.
지명만 바뀌었을 뿐 내러티브 부제에 스토리 모호
2025년 10월, 제주오페라연구소에서 제작한 이근형의 오페라 <해녀수덕>의 서울 공연은 ‘모든 상처를 품어주는 바다의 품으로’라는 주제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해녀를 소재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 여성의 삶과 공동체 정신을 예술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오페라라는 예술 형태를 선택하였을 뿐이었을 정도로 음악극이라는 오페라의 전통적인 개념에서는 많이 벗어난 형태였는데 이번에는 제주 대신 울산으로 바뀌었을 뿐 내러티브의 부제가 역력하고 스토리를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환생쇼> 이슈 영상과 결합 음악적 감동 도출
대신 11월, 전남대학교 작곡과 교수인 정현수가 이끄는 ‘뮤직노마드’가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에서 발표한 <환생쇼>는 환경 이슈를 영상과 접합하며 사운드로서 의미를 다시금 찾게 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작품의 음악적 감동을 도출하였다.
<페스트> 들리는 오페라로 작곡가의 창작의도 효과적으로 전달
2026년 1월 17일 부산에서 재연된 백현주의 오페라 <페스트>는 고전의 오페라라는 외형을 지키면서 현대 뮤지컬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우리말로 되어 있는 가사가 들리며 선율이 살아있었고 그걸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작곡 기법이 절충되어 작곡가의 의도와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
<자산어보> 아련한 공감 불러 일으켜
1월 22일 목요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트리오 서울’이 연주한 서주리의 <7월의 산>에서는 이준익 감독의 흑백영화인 <자산어보>가 연상되는 바이올린의 두꺼운 보잉과 실타래 같은 성부들의 규합으로 된 전개로 음악으로의 애도가 감상자의 묵상을 강요하고 눈으로 보이는 연주자들은 왠지 곡과 흡착되는 듯해 아련한 감정을 더해지고 공감하게 만들었다.
서류에 의한 20세기식 창작 관행 멈춰야 할 때
작년 11월의 국립심포니가 주관하는 KNSO 작곡가 아틀리에나 며칠 전 ARKO한국창작음악제 국악 부분에서의 홍윤경과 비슷한 연배의 작곡가들이 들려준 작품에서는 음향과 효과에 치우치고 음색과 기술에 치중하면서 그렇게 만들어진 음향의 시각적 효과로 사운드 디자인으로써의 기예라도 뽐냈지만, 20세기 제도-기득권이 20세기까지 유효한 근대적 사고방식으로, 20세기식으로 음악 기초 다 무시하고 창작된 관념적(이지도 사실은 않은)이자 서류를 뽑아서 20세기식으로 주입식-전달하는 행사는 이제 멈춰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