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계석의 마스터피스] 마스터피스, 향토의 보물을 찾아라

  • 등록 2025.12.19 08: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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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로 돌아간 창작, 마스터피스의 확신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제2회 마스터피스 페스티벌은 하나의 분명한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 것의 소재, 우리 것의 정서, 그리고 우리의 문화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창작의 DNA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유행이 아니라 혈액처럼 흐르는 원형이며, 일시적 성과가 아니라 세대를 관통하는 힘이다. 핏속에 녹아 있는 이 원형을 오늘의 언어로 해석해 작품으로 완성하는 과정, 그 엄격한 시간의 압축이 바로 마스터피스다. 마스터피스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디에서 출발할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그 출발점은 이미 분명해졌다. 향토다.

 

지역을 넘어 보편으로 – 향토는 세계의 다른 이름

 

이번 페스티벌에서 장은훈 작곡가의 순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이 보여준 힘은 분명했다. 그것은 지역성에 머물지 않고 보편으로 확장되는 정서였다. 지리적·정치적으로 나뉘어 있던 경계는 음악 앞에서 허물어졌다. 박영란 작곡가의 「곳물질」은 제주 해녀의 삶과 애환을 극적으로 형상화하며 깊은 공감을 불러냈다. 물질이라는 노동의 리듬 속에 여성의 생존, 공동체의 기억, 바다와 맞선 인간의 존엄을 담아낸 이 작품은 향토 서사가 어떻게 현대적 음악 언어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또한 김은혜 작곡가의 「나비」는 춤과 시 문학이 결합된 무대로, 소리와 몸짓, 언어가 하나의 서정적 이미지로 완성되는 새로운 감각의 K-Classic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는 향토적 정서가 장르 간 경계를 넘을 때 더욱 확장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였다.

 

‘오우가’는 한국 전통 미학이 성악가의 호흡을 통해 구현될 때, 슈베르트나 슈만과는 전혀 다른 우리의 개성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임준희 작곡가의 『달항아리』는 우리 가락의 절제와 여백을 살려 은은한 빛을 발했다. 이 작품들은 향토가 곧 세계로 통하는 관문임을 말해준다.

 

 

 

서구 모방의 시대를 넘어서 – 균형의 복원

 

이번 마스터피스는 서양음악에 과도하게 경도된 국내 클래식 현상에 균형점을 제시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반세기 넘게 지배해 온 실험적 아방가르드와 서구 모방은 어느 순간 대중과의 소통을 스스로 차단했다. 이제 흐름은 바뀌고 있다. 서양음악은 기울고, K아츠와 K-Classic의 햇살이 글로벌 무대를 비추고 있다. 이는 감정의 승리가 아니라 구조의 전환이다. 분명한 소재 선택과 장기적 마스터플랜 없이는 이 변화는 지속될 수 없다. 마스터피스는 그 출발선에 서 있다.

 

향토지식, 창작의 상수원

 

문화인류학자들은 향토지식을 “삶·역사·자연·기억이 장기간 축적된 집단적 지성”이라 정의한다. 이는 단순한 지역 정보가 아니라, 한 사회가 스스로를 이해해 온 방식의 총체다.

 

 “강을 잃으면 정서가 마른다.”

 

강은 물길이자 시간의 흐름이며, 인간의 감정과 공동체 기억이 축적된 서사 공간이다. 한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 낙동강, 태화강, 남강에 이르는 강의 역사는 곧 한국인의 삶과 전쟁, 사랑과 이별의 연대기다. 임준희 작곡가의 칸타타 『한강 – 두물머리 사랑』이 보여준 청중의 호감은, 강의 노래가 단순한 고향 서정을 넘어 인간 보편의 감정임을 증명했다. 향토지식은 상수원이다. 무너지는 포퓰리즘의 방류 댐을 막고, 문화의 생태계를 지키는 근원수다. 마스터피스의 역할은 이 상수원을 보호하고 정제해 예술로 흘려보내는 데 있다.

 

달항아리와 강 시리즈 – 마스터피스의 미래

 

프랑스 문예비평가 기 소르망(Guy Sorman)은 달항아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달항아리는 완벽하지 않기에 완전하다. 그 미묘한 비대칭 속에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있다.” 달항아리는 한국 미학의 핵심이다. 은근함, 절제, 비움. 이 내면의 미학을 노래로, 기악으로, 다양한 변주로 확장해야 한다. 임준희 작곡가의 『혼불』, 『댄싱 산조』처럼 달항아리 시리즈를 하나의 창작 카테고리로 묶는 일은 필연적이다.

 

이어져 다룰 '강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다. 강은 서사이고, 서사는 음악이 된다. 상품적 성공은 확산을 부른다. 그러나 그 성공의 전제는 얕은 소비가 아니라 깊은 뿌리다. 그래서 마스터피스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시간이고 세월이며, 견뎌 살아남은 것들의 이름이다. 기술을 넘어 존귀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스터피스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을 향토라는 가장 단단한 토양 위에서 묵묵히 걸어가야 할 것임을 말해준다.

 

탁계석 K클래식 회장, 임준희 작곡가, 장은훈 작곡가 (중구 을지로 푸르지오 아트홀 12월 11일)

탁계석 회장 musict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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