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이영조 작곡가/20인회 회장 (20 Trillion Production Seoul)

우리나라에 오선 악보로 된 서양음악이 들어온 때는 1885년 이다.그것은 예술 음악이 아닌 미국 선교사들이 들여온 찬송가였다. 배재, 이화, 연희전문 학교들이 세워진 그 때 였다.그 후 젊은 세대는 전통국악에서 볼수 없는 아름다운 선율과 화성에 매료되어 우리 것 보다는 서양의 그것에 몰입하게 되었고 그러한 현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88 올림픽 개막식 때 각국에서 갖여 온 자기문화의 소개 이 후 이에 대한 각성과 대책 있었다 하나 우리나라에는 아직 국악음악대학이 없다. 수용 할 능력이 있어도 지원생이 극히 적다는 것이다. 서양음악을 가르치는 음악대학안에 한 과로 존재 할 뿐이다.
음악에도 시장 원리는 엄현이 존재 하는 것으로 예술이라는 것이 시대와 국겨을 넘나든다는 것을 생각 할 때 우리는 좀 더 우리다운 예술 음악의 창조를 위한 장기적인 안목의 육성 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우리가 향유하는 예술음악을 위해서는 작곡-연주-감상-비평 그리고 후원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 하다.
개인적인 취향과 함께 사회 정책적인 배려가 있어야
작곡
건축계에서는 이런 농담 아닌 진담의 유모어가 있다.강아지 집이나 닭장을 지었다고 그를 건축가라 부르지 않는다. 건축을 위해서는 설계라는 창의적인 정신세계를 바탕을 거쳐 재료의 선택과 이들을 실제에 활용하기위한 절단과 용접, 전선의 배치등을 위한 공구의 필요와 선택, 배치 등등.. 헤아릴수 없는 많은 장비 들이 필요 하다. 강아지 집에는 이런 많은 것들이 필요 없다. 건축과 음악 ...
옛부터 이 둘의 관계는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며 실제로 음악에서 사용하는 여러 양식의 이름은 컨축으로 부터 왔다. 악곡을 위한 주제의 선정, 형식의 결정, 건축에서의 공구 많큼이나 많은 악기의 배열과 조합... 독창, 독주, 합창 . 합두 실내악과 오케스트라.. 작곡은 건축가와 같은 마인드와 안목이 필요하다.. 가냘픈 몇 줄의 악곡을 썼다고 그를 작곡가로 부르지 않는다.
연주
연주가는 제2의 작곡가이다. 작곡가의 음악적 사상에 더 하여 자기만의 소리로 재 해석된 악곡을 청중 앞에 내어 놓는 직접적인 인물이기 떼문이다. 거기에 기교라는 험난한 극복의 길 까지 놓여 있기에 범인들이 넘볼 수 없는 경지를 갖추고 있으며 이에 듣는 청중은 환호 한다. 이들은 타고난 재주와 그를 발굴 한 스승의 힘에의 해 무대에 선다..
감상
아무리 좋은 작곡가의 작품이 있고 훌륭한 연주가가 있다 하더라도 공감하며 이해 할 수 있는 감상자가 없으면 음악은 그 존재 가치를 잃는다. “예술음악은 교육에 의해서 만 터득되며 교육에 의해서만 발전 한다” 대개의 사람 들은 소리를 통한 삶과 죽음의 미학, 종교적 성찰에 쉽게 이르기 어렵다.
생각하고 음미 하는 음악 ...
음악에서 말하는 상징성과 자연의로 부터 얻은 감동을 소리로 표현했을 때 말로 설명 되지 않는다. 체험을 통헌 경험 축적이 그 큰 몫을 맡을 수 있다. 순수예술교육 정책자들의 수준과 인식 그리고 정책적 행동의 필요함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음악교육의 중요성의 한면 일 것이다.
비평
우리 음악계는 한때 비평과 비난을 혼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비평은 꼬집어 뜯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가, 그 작곡가의 음악이 어떻게 그 사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한 문화적 향유물 이 되었는가를 논 하는 동시에 그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실로 비평가는 작곡가 많큼 작품에 대한 이론적, 미학적 감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비평가는 예술가에게는 고귀한 귓속말을 전해주는 이며 청중에게는 깨우침을 주는 귀한 인물이다. 이 네 가지 장르는 예술음악을 향유하기 위하여 균형감 있게 (Well Balanced) 사회에 깔려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책과 교육이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후원
끝으로 우리 사회에서 음악예술인들을 위한 후원이라는 문제는 과거 수십년 전에 비 하여 뜻있는 개인과 기업을 통하여 크게 발전 하였다. 유럽의 음악이 세계 음악사에 크게 기여 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봉건 성주들의 높은 예술에 대한 식견과 사랑이 있었고 음악예술인들의 직업은 자산을 창출하는 업종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고 대신 그들은 정신적인 양식을 창조하여 사회에 이바지 하는 귀한 사람들로 여겨 왔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양음악을 받아들이고 지금은 그들과 대등한 수준의 우리 젊은 예술가들을 배출하는 높은 수준의 시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서울을 떠나 한 시간 만 밖으로 나가 보면 우리나라의 순수 예술에 대한 일반인들과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과도한 서을 집중식 예술 프로그램과 공연은 정책적으로 바로 잡아야
작곡-연주-감상-비평-후원은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도 온전한 예술음악을 생활화 할 수 없다. 이 다섯 가지 조항은 합동하여 선을 이루어야 할 우리 사회의 장기적 과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