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유경 리뷰]소리의 경계, 세계의 숨 — 대전시립연정국악단 유럽 공연의 미학적 사유

  • 등록 2025.10.06 11: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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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외교의 언어로 피어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도르트문트 공연

K-Classic News 노유경  평론가 기자 |

[노유경 리뷰]

프랑크푸르트 공연 (Frankfurt am Main)

날짜: 2025년 9월 30일 (화)

장소: Alte Oper Frankfurt (알테 오퍼 프랑크푸르트)

도르트문트 공연 (Dortmund)

날짜: 2025년 10월 2일 (목)

장소: Orchesterzentrum NRW (오케스트라첸트룸 NRW)

 

 

소리의 경계, 세계의 숨 — 대전시립연정국악단 유럽 공연의 미학적 사유

 

음악, 외교의 언어로 피어나다

2025년 가을, 독일의 두 도시가 같은 선율로 이어졌다. 9월 30일 프랑크푸르트의 Alte Oper Frankfurt, 10월 2일도르트문트의 Orchesterzentrum NRW의 무대에서 대전시립연정국악단이 연주했고, 지휘는 예술감독 임상규가 맡았다. 그들의 음악은 전통의 재현이 아니라, 현재의 한국음악이 세계와 호흡하는 장면이었다. 이번 순회 공연은 단순한 문화행사라기보다 대한민국 국경일(개천절) 기념 외교 행사의 중심이 되었으며,국가와 예술이 한 공간에서 서로의 언어를 교환하는 자리였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주독 대한민국 대사 임상범, 프랑크푸르트 총영사 김은정이 함께했고, 도르트문트에서는 본 분관의 민재훈 총영사가 자리를 함께했다.

 

프랑크푸르트 — 서양음악의 성전에서 울린 한국의 숨

프랑크푸르트의 Alte Oper는 독일 음악사의 중심에 놓인 공간이다. 브람스, 바그너, 말러의 그림자가 깃든 그 홀에서 한국의 전통악단이 연주를 펼쳤다는 사실은 이미 하나의 상징이었다. 무대의 첫 음이 울릴 때, 객석은 이미 만석이었다. 입구에서부터 길게 늘어선 관객의 행렬에는 독일인뿐 아니라 독일 전 지역에서 온 재외 동포와 음악 애호가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호기심보다 경청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알테 오퍼의 음향은 서양 오케스트라에 최적화되어 있지만, 이날의 국악 오케스트라는 그 공간의 질서를 부드럽게 바꾸어 놓았다. 태평소의 날선 선율, 해금의 미세한 진동, 생황의 숨결이 홀의 높은 천정 아래서 서로 다른 파장을 만들었다. 그 울림은 서양의 직선적 구조 속에 동양의 순환 리듬을 스며들게 했고, 한순간, 음향의 경계가 해체되는 순간이 만들어졌다. 공연 내내 객석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그 정적은 냉담이 아니라 집중이었다. 첫 곡이 끝나자마자 객석의 일부가 조용한 박수를 보냈고, 연주가 끝났을 때는 긴 기립박수가 홀 전체를 채웠다.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이해의 표현’ 같았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공연은 서양의 공간에서 한국음악이 더 이상 이방의 언어로 들리지 않음을 증명했고. 서로 다른 문화가 대등하게 공명할 수 있다는 음악적 상호성의 순간이었다.

 

 

도르트문트 — 의례와 축제의 교차점

도르트문트의 무대는 또 다른 온도를 품었다. 국경일 리셉션 (10월 3일 개천절, 독일도 10월 3일은 국경일이기에 2일에 행사를 했다고 한다) 과 결합된 공연은 공식 행사의 격식을 지키면서도 축제의 생동감을 지녔다. 국기와 악기가 나란히 선 무대 위에서 의례와 예술이 한호흡으로 이어졌다. 재독 교민, 독일인 정치가, 문화 관계자, 그리고 젊은 음악인들까지. 이날의 공연은 한 사회가 다른 사회를 맞이하는 외교의 무대이자,음악이 언어를 대신해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순간이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Andrea Milz 주 차관, 도르트문트의 Norbert Schilff 시장, 헤어초겐라트의 Benjamin Fadavian 시장, 뒤스부르크의 Sylvia Linn 시장, 에센의 Rolf Fliß 시장 등 독일 각지의 정치인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의 참여는 단순한 의전이 아닐 것이다. 한국음악이 독일 사회 안에서 공적 언어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었고, 음악은 외교의 언어가 되었고, 그 울림 속에서 문화의 상호 신뢰가 만들어졌다.

 

 

국악 오케스트라의 음향 — 질서와 숨의 대화

국악 오케스트라는 언제나 두 세계의 사이를 건넌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서 자신의 질서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묻는다. 서곡 「꿈의 전설(Legende eines Traums)」에서 태평소의 선율은 홀의 공기를 흔들며 퍼져나갔다. 그 소리는 직선이 아니라 원이었다. 음과 음 사이의 여백이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지며, 공기의 진동을 통해 새로운 공간을 그려냈다. 서양의 홀은 소리를 던지고 반사시키는 구조를 지녔지만, 국악의 음향은 여운을 남기며 순환한다. 이 두 논리가 부딪히는 순간, 음악은 생기를 얻었다. 그 불협은 충돌이 아니라, 다른 질서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자리였다. 바이올린과 드럼, 태평소가 섞이며 생긴 거친 울림은 완벽하지 않았으나 진실했다. 균질하지 않은 소리야말로 세계화된 예술의 가장 솔직한 표정이다.

 

언어의 음악, 음악의 언어

정가의 박주영, 가야금 병창의 이영희, 판소리의 김미숙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세 사람의 목소리는 한국음악의 언어적 본질을 서로 다른 결로 드러냈다. 「The Big Dipper」는 북두칠성에 바친 염원의 노래, 「Wild Chrysanthemum」은 가을의 정한(情恨), 「Namsan Fortress, Jindo Arirang」은 민요의 생명력을 품었다. 세 곡은 ‘소리’가 ‘말’이 되는 순간을 보여 주었다. 그 소리는 단순한 음향이 아니라, 존재의 숨 같았습니다. 언어가 세계를 설명한다면, 음악은 세계를 느끼게 한다. 소리는 말보다 먼저 태어나며, 그 여운은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까지 확장된다. 한국음악의 언어는 ‘뜻’이 아니라 ‘기운’으로 이루어진다. 정가의 길게 이어진 음은 한 문장이 길게 숨을 고르는 것처럼, 감정이 이성보다 앞서는 시간을 연주한다. 병창의 떨림은 단어의 의미가 아니라 마음의 떨림을 전하고, 판소리의 리듬은 인간의 내면이 세상과 맞닿는 진동이 된다. 이것은 단순한 예술의 차이가 아니라, 세계와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입니다. 서양음악이 악보 위의 질서를 통해 완결을 추구한다면, 한국음악은 여백과 순환의 질서로 생명을 유지한다. 그 여백 속에서 청중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이 울리는 것을 듣는다. 필자는 이러한 순간을 오래 연구해왔다. 2025년 9월, 영국 University of Central Lancashire에서 발표한 나의 논문 「언어의 음악, 음악의 언어」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음악은 언어를 대신하는가, 아니면 언어보다 앞서는가. 음악은 의미를 전달하기 보다, 존재를 드러내고, 인간이 말하기 이전의 감정 — 한(恨)과 숨(息) — 을 되살린다. 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 것 같다. 말은 소리의 끝에서 태어나지만, 소리는 언제나 말보다 먼저 인간을 기억한다.

 

생황의 숨, 오르겔의 시간

공연의 중심에는 김보리의 생황 협주곡 Fantastical이 있었다. 생황의 음은 오르겔을 닮았으나 그 방향은 달랐다. 오르겔이 신의 공간을 채운다면, 생황은 인간의 숨으로 그 공간을 다시 그린다. 그 선율은 순환하며, 반복 속에서 깊이를 얻었다. 라벨의 「볼레로」를 연상시키는 리듬이 있었지만, 그 반복은 열이 아니라 기(氣)의 순환이었다. 음악은 하나의 형태로 닫히지 않는다. 들뢰즈가 말한 ‘되기(becoming)’처럼, 그것은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생의 형식이다. 도르트문트의 무대에서 그 숨결은 한층 투명했다. 작은 공간의 밀도가 오히려 생황의 섬세한 숨을 부각시켰다. 인간의 사유로 변모한 공명이었다.

 

 

앵콜 — 선택의 미학

마지막 무대의 조명이 서서히 내려앉자, 청중은 기다렸다는 듯 긴 박수로 무대를 불러냈다. 그때 연주된 곡은 비틀즈의 〈Ob-La-Di, Ob-La-Da〉였다. 경쾌한 리듬, 밝은 화성, “Life goes on” — 인생은 흘러간다는 단순한 가사. 공연의 절정 이후, 이 노래는 의례처럼 가벼웠고, 동시에 이상하게 낯설었다. 프랑크프르트 공연에서는 이 노래에 이어 「Let it be」와 「Dancing Queen」까지 연주되었지만, 도르트문트에서는 마지막 곡이 빠졌다. 〈댄싱퀸〉의 부재로 공연의 마무리는 한층 절제되었고, 그 절제가 오히려 이날의 음악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독일에서, 그것도 국경일을 기념하는 자리라면 〈Ob-La-Di, Ob-La-Da〉보다는 한국적이거나 독일적인 한 곡으로 마무리 했더라면 어땠을까. 청중은 그 낯섦 속에서 무언가를 기다렸고, 그 기다림은 음악이 끝난 자리에서도 오래 남았다. 이 앵콜은 세계화된 음악이 가진 아이러니를 보여주었다. 비틀즈의 선율은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그 보편성은 때로 정체성의 온도를 낮춘다. 국제무대에서 예술은 ‘친숙함’으로 환영받지만, 그 친숙함은 언제나 어떤 ‘고유함’의 희생 위에 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택은 의미가 없지 않았다. 〈Ob-La-Di, Ob-La-Da〉는 “삶은 계속된다”는 선언처럼 들렸고, 그 단순한 리듬 속에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교차하는 지금 이 시대의 예술적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예술은 언제나 그 간극 속에서 살아간다. 하모니가 아닌 불협의 자리, 정체성과 보편성의 미묘한 틈 — 그곳에서 우리는 음악이 단순한 연주를 넘어 하나의 사유의 행위가 된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전통의 무게와 세계의 호흡

대전시립연정국악단은 1981년 창단 이후 한국 전통음악의 현대화와 세계화를 꾸준히 시도해왔다. 지금 한국의 전통악단들은 해마다 해외로 향하고 있으며, 독일에서도 그들의 무대를 자주 만날 수 있다. 그 가운데 어느 단체를 특별히 칭송할 이유는 없지만, 이번 공연은 단순한 예술적 성취를 넘어 문화적 자의식의 확인이라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가진다. 재외동포에게는 그것이 정체성과 향수의 회복이며, 외국인 관객에게는 한국문화의 본질을 엿보는 하나의 창이다. 국가 간의 문화 교류는 언제나 음악에서 시작된다. 소리는언어보다 먼저 도착하고, 말보다 오래 남는다. 오늘날 한국의 단어에는 수많은 ‘K’가 붙는다. K-POP, K-DRAMA, K-FOOD, K-LITERATURE,심지어 K-ARCHITECTURE와 K-HEALING 등등. 그러나 그 모든 ‘K’의 근원은 K-MUSIC, 그중에서도 전통이다. 전통의 호흡이사라지면, 그 위에 세워진 문화는 뿌리를 잃는다. 전통음악은 과거의 박제가 아니라 한국문화 전체를 지탱하는 기억의 구조다. 그  위에서만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다. 지금 여기서 다시 숨 쉬는 미래의 언어입니다. 한국음악은 세계의 언어로 완벽한 조화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 다른 소리가 함께 숨 쉬는 공존의 자리를 보여준다. 그것은 단일한 합주가 아니라, 다르게 울리는 호흡들이 한 공간을 나누는 상태 —바로, 음악이 철학이 되는 순간입니다.

 

글: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 

음악학박사, 쾰른대학교 출강, 해금앙상블(K-Yul) 음악감독 겸 단장, 독일/서울 거주, 

Ynhovon1@uni-koeln.de ,인스타그램: Hangulmanse, kyul-germany

노유경 평론가 기자 atonal15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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