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달항아리
핏줄에 떨려오는 변방의 북소리
삭풍에 깃발 펄럭이는구나
저 강은 잠못이루는데
달빛만 고요하여라
누가 담을 넘을까?
주인 떠난 빈방에
달항아리 홀로 지키네
매화는 마음을 감추고
눈 밭에 서 있는데
손 닿아 무엇하리
천지에 향기 뿜는 날
내 님은 돌아 오리라!
[AI 詩評]
이 시는 전통적 정서와 한국적 미감을 농축한 서정시로, 역사적 기억과 개인적 염원이 교차하는 서사를 담고 있다.
시의 구조와 리듬
시의 첫머리 “핏줄에 떨려오는 변방의 북소리 / 삭풍에 깃발 펄럭이는구나”는 강렬한 청각과 시각적 이미지로 시작한다. 북소리는 혈맥을 흔드는 생명력과 동시에 긴장과 전쟁의 위기를 상징하고, 삭풍 속에 나부끼는 깃발은 국경, 변방, 그리고 역사적 고난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도입부는 독자를 한순간에 격정적 분위기로 끌어들인다.
이어지는 “저 강은 잠 못 이루는데 / 달빛만 고요하여라”는 대조적 이미지의 전환이다. 불안에 잠 못 드는 강과, 고요히 비추는 달빛의 병치 속에서 긴장과 평온이 동시에 공존하는 역설적 미학이 드러난다. 이는 곧 인간 내면의 동요와 초월적 자연의 불변성을 대비시킨다.
상징과 소재의 해석
달항아리: “주인 떠난 빈방에 / 달항아리 홀로 지키네”라는 구절은 비어 있는 공간을 수호하는 존재로서의 달항아리를 제시한다. 이는 단순한 기물이 아니라 ‘정신적 지주’이자 ‘문화적 자존’을 의미한다. 주인의 부재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달항아리는 곧 민족의 정체성과 예술의 원형을 상징한다.
매화: “매화는 마음을 감추고 / 눈 밭에 서 있는데”에서 매화는 추위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절개와 희망의 상징이다. 이는 기다림과 인내, 결국 새로운 시작을 예고한다.
달빛과 향기: 달빛은 고요한 초월의 빛이고,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천지를 가득 채우는 내적 힘이다. 이는 물리적 제약을 넘어 영혼의 자유와 재생을 암시한다.
주제와 정서
궁극적으로 시의 정서는 기다림과 귀환의 희망이다. “손 닿아 무엇하리 / 천지에 향기 뿜는 날 / 내 님은 돌아오리라!”라는 결구는 그 기다림의 끝을 선언한다. ‘님’은 개인적 연인일 수도, 역사 속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나 잃어버린 공동체의 정신일 수도 있다. 즉, 개인적 서정과 집단적 역사 의식이 겹쳐 있는 다층적 ‘님’이다.
미학적 성취와 의의
이 시는 한국적 소재(달항아리, 매화, 북소리, 삭풍)를 통해 민족적 정서와 미학적 초월을 동시에 담아낸다. 특히 달항아리는 단순한 도자기의 이미지를 넘어, 비어 있으되 가득한, 부재 속의 충만함을 함축한다. 이는 동양적 미학의 극치를 보여준다.
또한 시의 리듬은 짧고 긴 문장의 교차, 질문형 어투(“누가 담을 넘을까?”)와 선언적 어투(“내 님은 돌아오리라!”)의 대비를 통해 고조와 해소를 반복하며 독자의 정서를 끌어올린다.
총평
결국 이 시는 개인적 그리움과 민족적 기다림이 교차하는 작품으로, 달항아리와 매화, 북소리와 달빛 같은 상징적 이미지들을 통해 부재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존재의 강인함을 노래한다. 결말부의 희망적 외침은 단순한 종결이 아니라, 고난 끝에 맞이할 회복과 귀환을 약속하는 예언적 울림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