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소유의 덫과 존재의 해방, 에리히 프롬의 통찰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현대인의 위기를 ‘소유의 삶’과 ‘존재의 삶’으로 구분했다. 소유의 삶은 끊임없이 축적하고 쥐어야만 안도하는 방식이지만, 이는 불안과 결핍을 낳는다. 반면 존재의 삶은 현재를 살아내며, 자유와 창조적 활동 속에서 진정한 인간성을 발견한다. 우리가 오늘 서 있는 지점은 바로 그 경계, 소유의 강박을 넘어 존재의 풍요로 나아가야 하는 문턱이다.
실존의 무게, 키에르케고르와 하이데거의 경우 키에르케고르는 “죽음 앞에서의 단독자”라는 말로 실존의 본질을 강조했다. 인간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실존적 선택의 순간에 서야 한다. 하이데거 또한 ‘현존재(Dasein)’ 개념을 통해, 인간이 죽음을 자각할 때에만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가능성을 인식한다고 했다. 천국과 지옥 사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혼돈 속에서도 실존은 그 자체로 전부이며, 다른 무엇으로 대체될 수 없는 힘이다.
황금사과와 물 한 모금, 스토아 철학의 지혜
섬에서 황금사과가 물 한 모금보다 가치가 없듯, 소유의 허상은 생존의 본질 앞에서 무너진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삶의 덧없음을 인식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강조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우리는 짧은 생의 순간 속에서 존재할 뿐이니, 허영을 버리고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고 했다. 들꽃이 공기를 호흡하는 단순한 행위조차 죽은 왕의 면류관보다 더 위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바로 그것이 존재의 윤리다.
기록성과 자유, 아렌트의 ‘행위’ 개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고유한 힘을 ‘행위(Action)’에서 찾았다. 말과 기록,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행위는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오늘날 기록은 단순한 과거의 보존이 아니라 자유와 환희를 드러내는 창조적 행위다. 실존적 존재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남기는 순간, 그것은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 존엄의 증거로 승화된다. 기록성은 곧 존재를 불멸로 확장시키는 힘이다. 예술가의 창조인 작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예술가와 작품의 영속성, 존재의 흔적을 넘어
예술은 순간에 태어나지만, 그 울림은 시간을 초월한다. 화폭의 그림과 조각, 악보에 적힌 악상, 시인의 언어는 개인적 경험을 넘어 인류 공동의 기억으로 남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처럼, 예술은 인간의 정념을 정화하고 또다시 새 삶을 불러낸다. 예술가의 존재는 언젠가 소멸하지만, 그의 작품은 남아 세대와 세대를 잇는 인간 실존의 흔적을 증언한다. 그러므로 예술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존재를 영속시키는 가장 강력한 방식이다.
실존의 윤리와 미래, 니체의 초인 선언
니체는 인간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라고 말하며 초인의 길을 제시했다. 그는 기존 가치와 제도를 넘어 자기 존재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자만이 새로운 미래를 연다고 보았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위기의 문턱은 단순히 견뎌야 할 고통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의 기회다. 소유의 족쇄를 풀고, 존재의 기쁨과 기록의 힘, 그리고 예술의 영속성으로 삶을자유로 바꿀 때, 인간은 자기 초월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