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칸타타 '동방의 빛' 공연이 열리는 천안 예술의전당 로비
창작의 세계에서는 ‘왜?’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종종 다르다. 왜 훌륭한 창작 작품이 무대에 오르지 않을까? 왜 청중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쉽게 단정 지을까? 왜 지휘자들은 스스로 창작을 시도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대부분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하나하나 짚으며 해석하고 답을 찾아가려는 시도는 드물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부재한 것이다. 이 의문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과정이야말로, 창작의 성과를 공연으로 연결하는 열쇠다.
댓글 ①
“좋은 작품은 많은데,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얼마 전, 칸타타 〈달의 춤, 8월 13일〉, 〈동방의 빛, 8월 15일〉이 파주와 천안에서 각각 공연됐고 9월에는 <송 오브 아리랑>이 광주 (9월 5일). 부산(19일), 대구(25일)에 연속적으로 무대에 오른다. 천안에서 공연 후 시민들은 작가의 손을 잡고 “우리만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공연”이라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물론 이런 기획이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예산 문제, 국악단, 합창단, 어린이 합창단,무용단 등 다수 단체의 협업, 그리고 리더의 결단이 필요하다. ‘하면 좋다’는 것은 누구나가 안다. 그러나 실행에는 예산, 단원 설득, 연습 부담 등 수많은 장애물이 따른다.
댓글 ②
“결국 리더십과 설득, 그리고 끈기가 모든 장벽을 넘는 열쇠입니다.”
그렇다면 공공의 역할은 무엇인가? 문화행정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질 높은 문화를 공급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바쁜 시민들이 직접 요구하거나 전문적 의견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언론과 비평이 필요하다. 통계와 설문으로 흐름을 만들고, 모국어 창작 합창이 서양 레퍼토리보다 감화력이 있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댓글 ③
“숫자와 데이터가 뒷받침될 때, 문화정책은 설득력을 갖습니다.”
만약 어려움이 있다면, 행정과 자치단체장에게 필요성을 설명해 창작 예산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단체 역시 좋은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시민들에게 인정받는다. 현실적으로 의욕이 낮은 지휘자, 비협조적인 노조, 열악한 환경 등 장애 요인이 많지만, 이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풀어가면 길이 보이지 않겠는가.
창작 선진국의 정책 사례
1. 영국의 ‘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 창작 지원제도
신작 의무 상연제: 국공립 예술단체에 일정 비율 이상 신작을 무대에 올리도록 권고하고 있다. 제작비 보조금과 함께, 초연 후 최소 3회 이상 재공연 기회를 지원하여 작품의 생명력 확보.
2. 독일의 ‘주(州) 극장 공동 창작펀드’
인접 도시의 극장이 공동 투자해 신작을 제작하고, 순회공연으로 관객층 확대. 창작자·지휘자·단원의 사전 워크숍을 통해 합의 형성과 작품 이해도를 높임.
프랑스 현대 음악 정책과 청중 반응
프랑스는 현대 음악 창작을 ‘문화 다양성’의 핵심으로 본다.
정책: 국립현대음악연구소(IRCAM)와 연계한 창작·실험 지원, 공영 방송과의 공연 실황 중계, 청소년 대상 현대음악 감상 교육.
청중 반응: 초연 시에는 난해하다는 반응이 있지만, 재공연과 해설 프로그램을 거치면 수용도가 높아짐. 특히 프로그램 북에 ‘작곡 의도와 음악 구조 설명’을 넣은 후 긍정적 반응이 20% 이상 증가한다.
달의 춤 공연을 마치고
댓글 ④
“청중은 모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상태를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쉽게 되지 않는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자란 과일이 단 것처럼, 과정의 어려움이 작품을 깊게 만든다. 쉬운 길만 찾다 보면 공동체 예술은 시민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이번에 연속적으로 공연된 〈달의 춤〉, 〈동방의 빛〉, 〈송 오브 아리랑〉의 반응 측정을 통해 해답을 찾고자 한다.
댓글 ⑤
“안 되는 것은 없다. 방법을 모르거나, 노력이 부족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창작과 공연의 간극을 메우는 방법은 단순하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근거를 쌓으며, 실행에 까지 나아가려는 것이다. 문화는 멈추지 않는 흐름이어야 하며, 그 흐름을 만드는 것의 주체는 결국 우리 자신이다. K-Classic 이 뭐냐고 물었을 때 말로늘 설명할수가 없다. 작품을 보고 무릎을 치거나 ,탄성을 내거나, 감동의 눈물이 대신 답해야 한다. 그 진실을 믿고 싶고 확인하고 싶다. 창작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갖는 진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