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현대화와 상업화, 그 가속의 물결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묻는다. ‘과연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갯벌을 메워 농지를 만들고, 그 위에 고층 아파트를 세우는 것을 '진보'로 여겼던 시대가 있었다. 개발은 곧 효율이었고, 효율은 곧 삶의 질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갯벌은 생태의 보고를 넘어, 세계적 관광자원이자 지역의 정체성으로 거듭나고 있다. 원형을 보존한 자연이 오히려 더 큰 미래의 부가가치를 낳는다는 인식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문화의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히 ‘옛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방식, 고유한 이야기, 존재의 출발점이다. 마치 가파른 언덕 위에서 공동체를 향해 돌진해오는 적을 막아서는 아파치 추장처럼, 우리는 지금 문화의 원형을 지켜야 할 최전선에 서 있다.
“원형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뿌리다.”
최근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쓴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 창작 콘텐츠가 세계의 심장을 울릴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작품은 이야기의 본질을 간결하게 간직한 채, 세련된 무대화로 승화되었다. 즉, 원형의 뿌리를 지키되, 현대적 언어로 재탄생시킨 사례다. 이는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라, K콘텐츠가 세계의 무대로 진입할 수 있다는 문화적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석학들의 통찰, 원형의 힘을 말하다
"문화는 근원을 배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혁신할 수 있다." – 움베르토 에코 (이탈리아 기호학자)
"당신의 이야기가 당신의 언어로 시작될 때, 세계는 비로소 귀를 기울인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나이지리아 작가)
"원형은 전통이 아니라, 문화적 DNA다. 원형 없는 모방은 곧 소멸이다." – 조셉 나이 (美 소프트파워 이론가)
"모든 창작의 중심에는 질문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왜 이 땅에서만 가능한가?" – 피터 셀라스 (美 연출가)
이러한 지적은 단순히 과거를 숭배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만이 줄 수 있는 본질적 가치’를 세계에 전달하기 위해 문화적 원형의 뿌리를 되짚자는 것이다. 정제되지 않은 옛이야기, 전통의 몸짓, 향토의 어법 속에 담긴 감정의 조각들을 현대적 무대 언어로 다시 구성할 때, 그것은 세계가 주목할 문화가 된다.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1. 기록과 아카이빙의 강화
민속, 설화, 전통예술을 단순 재현이 아닌 디지털 아카이브로 구축, 후속 창작자에게 '문화 자산'으로 제공해야 한다.
2. 현대화된 ‘무대화’ 전략
원형을 지키되,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변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번역이 아닌 해석과 재창조를 요구한다.
3. 지역과 공동체 기반의 창작 생태계 구축
향토적 원형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지역 예술가와 원로 장인들이 주체가 되는 생태계가 우선이다.
4. 글로벌 파트너십의 적극 유치
콘텐츠의 품질은 내실로, 유통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K-Opera, K-Musical이 이미 그 첫 물꼬를 텄다.
지금, 우리가 문화의 원형을 지키는 일은 단순한 보존이 아니다.이는 곧 생존이고, 정체성이며, 세계를 향한 선언이다. 아파치 추장이 지키려 한 마을은 단지 가족의 거처가 아니라, 기억과 서사의 공간이었다. 우리가 지키려는 것도 다르지 않다. 잊혀진 이야기를 되살리고, 숨은 가치를 무대 위에 올릴 때, 세계는 고개를 돌리고 귀를 기울인다. 원형을 지키는 것이 곧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강력한 방식임을,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확인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