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 예술비평가회장
세계 곳곳의 음악 축제들 가운데는 대도시나 거대한 공연장이 아닌, 외딴 산간이나 벽촌에서 시작된 것들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이미 세계적인 명성과 품격을 갖춘 음악제로 성장해 왔다. 그 상징적인 사례가 바로 핀란드의 '쿠오모 페스티벌(Kuhmo Chamber Music Festival)이다.
쿠오모는 핀란드 북부의 깊은 숲 속에 위치한 소도시다. 이곳에서 망명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부부가 스스로를 위해 연주를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처음엔 아무도 듣지 않던 음악이었지만, 근처의 벌목공과 지역 주민 몇 명이 하나둘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결국 그 ‘숲속의 연주’는 해마다 수많은 관객과 세계적 음악가들이 찾는 축제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음악은 처음부터 거대한 것이 아니라, 들어주는 단 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례는 이탈리아 북부 고산지대 아시아고(Asiago) 페스티벌이다. 유목과 치즈 산업으로 알려진 이 지역에서, 마을 성당에서 시작한 작은 콘서트가 마을의 자부심으로 성장했고, 유럽 전역의 음악가들이 가족과 함께 휴양 겸 참여하면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이 축제는 다른 음악제와 달리, 거창한 개런티나 초청장이 필요 없다. 음악가도, 청중도 모두 자연 속에서 음악을 ‘살아내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든 음식과 함께 나누는 식사, 성당에서의 연주, 숲길 산책이 곧 음악제의 일부가 된다.
이러한 흐름은 지금 대한민국 순천의 승주읍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고도가 높고 청정 생태 환경이 유지된 이곳은, 도시의 소란에서 벗어나 마음을 내려놓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순천국제가곡제가 시작된 이 마을은, 이미 ‘한국 가곡기념관'이란 이름으로 창작가곡 보급과 예술적 거점으로서의 기반을 다져왔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곳을 찾아온 많은 이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치유와 위로를 느꼈다. 성악가들과 피아니스트의 기량이 뛰어난 기술로 이탈리아와 독일의 가곡을 한국의 청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진정한 소통을 경험했다. 청중들 또한 혼자가 아닌, 이웃과 가족이 함께 삼삼오오 짝을 이뤄 찾아오며 음악과 삶이 이어지는 ‘공동체 연주회’를 만들어냈다.
이제 우리는 이곳이 단지 음악을 ‘듣는 곳’이 아니라, 삶 속에서 음악을 다시 발견하고 나누는 마을로 자리 잡기를 꿈꾼다. 또한 이곳에서 한국적인 정서와 국제적인 감각이 교차하며, 세계의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모여드는 명실상부한 국제음악제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결국 진정한 음악은, 대도시의 콘크리트와 조명 대신, 자연의 바람 소리와 사람들의 숨결 속에서 피어난다. 승주읍이 그러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