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계석 칼럼] 창작의 시장 지배력을 높이려면

  • 등록 2025.03.31 11:53:24
크게보기

K클래식은 세계 음악 지도에 한국 창작의 좌표를 찍는 작업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순수 클래식 음악은 구조적으로 시장성이 약하다. 상품으로서 소비자인 관객과의 관계가 느슨하기 때문이다. 특히 창작 음악은 이 관계가 더욱 희박하다. 개인 아티스트들은 대중적 홍보에 어려움을 겪고, 이로 인해 대중과의 접점이 극히 제한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조성진, 임윤찬과 같은 슈퍼 아티스트 몇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자기 자본을 투입해 연주회를 열고, 그마저도 지속하기 어렵다.

 

창작 음악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 개인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는 전문 단체가 거의 없고, 있어도 단발성에 그친다. 연주자는 익숙한 고전 레퍼토리에 집중하고, 기획자는 안정적인 티켓 판매를 원한다. 결과적으로 창작은 시장에서 철저히 고립된다. 대중음악과의 비교는 무의미할 정도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일부 국가들은 창작음악에 대한 청중 기반과 정책적 뒷받침이 존재한다. 프랑스는 IRCAM(현대음악연구소)을 중심으로 창작과 기술을 결합한 현대음악 창작을 적극 지원하며, 국립오페라극장 및 주요 관현악단들이 정기적으로 프랑스 작곡가의 신작을 위촉하고 연주한다.

 

독일은 'Kulturförderung(문화진흥)' 시스템 하에 연방·주 정부가 함께 예산을 편성하여 지역 극장, 오케스트라, 앙상블이 작곡가를 장기적으로 후원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베를린, 뮌헨, 쾰른 등에서는 작곡가 레지던시와 창작 위촉이 일상화되어 있다.

 

일본은 NHK교향악단을 비롯한 주요 오케스트라가 국내 작곡가의 신작을 꾸준히 초연하며, 문화청이 작곡가 지원 프로그램과 전국 합창·기악 경연 대회에서 창작곡 부문을 별도로 두고 있다.

 

대중적이진 않더라도 일정한 시장성과 존립 기반은 확보되어야

 

이러한 사례는 결국 ‘환경의 문제이자 인식의 문제’임을 시사한다. 창작이 반드시 대중성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일정한 시장성과 존립 기반은 확보되어야 한다. 탄력 있는 수요와 공급의 구조가 없다면 창작은 예술계 내부에서조차 생명력을 잃게 된다. ‘K-클래식’은 바로 이러한 한계를 넘어 세계 음악 지도에 한국 창작의 좌표를 찍는 작업이다. 서양 중심의 음악사에 개입하는 주체적 시도이며, 단순한 연주가 아닌 창작 그 자체가 예술의 중심이 되는 패러다임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창작의 시장 지배력은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단순히 작품의 난이도나 연주자의 수용 의지 문제만은 아니다. 좋은 작품 하나가 제대로 연주될 수 있는 구조와 확산 경로, 즉 ‘창작의 유통 생태계’가 핵심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그 상징적인 사례다. 전통을 재해석한 새로운 어법으로, 그는 단숨에 세계 연주계의 흐름을 바꾸었다. 한국형 피아졸라, 이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창작 쿼터제 도입
– 국공립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에 일정 비율 이상 한국 창작곡을 포함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연간 평가 지표에 반영할 수 있다.
– 단순 초연에 그치지 않고 재연(再演)까지 유도하는 ‘활성화 쿼터제’로 발전시켜야 한다.


창작 위촉 펀드 및 작곡가 레지던시 확대
– 프랑스·독일처럼 민관이 협력해 ‘창작기금’을 조성하고, 작곡가에게 중장기 창작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등 주요 공연장이 연례적으로 작곡가를 지정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공미디어와의 연계
– KBS교향악단, 국악방송 등 공공 미디어와 협력하여 창작곡 공연을 정기 중계하고, 해설과 다큐 콘텐츠로 확장해 청중 접근성을 높인다.

 

교육 커리큘럼의 개편과 연주자 인식 개선
– 예술대학 및 예고에서 창작곡을 의무적으로 학습·연주하도록 하고, ‘한국 작곡가 리트릿’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연주자와 창작자 간 교류를 유도한다.

 

K-클래식 창작 시리즈 및 해외 쇼케이스 구축
– 국가 브랜드로서의 ‘K-클래식 창작 시리즈’를 연례화하고, 주요 국제 무대와 연계한 쇼케이스를 마련해 해외 진출을 본격화한다.

 

한국 문화예술위원회나 예술의전당의 일부 시도처럼 창작을 공공이 유도하려는 노력이 없지 않지만, 보다 정밀하고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단발성 공모나 기획이 아니라, 창작을 생태계 안에서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창작의 지배력을 위한 구체적 실행에 돌입해야 할 때다. 연주자와 청중, 기획자와 공공이 모두 함께 작곡가를 기다리는 시대. 그것이야말로 K-클래식이 세계 음악사의 새 지평을 여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3월 27일 오후 3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개최된 2025-2029 공연예술 진흥 기본 계획 공청회


 

탁계석 회장 기자 musictak@hanmail.net
Copyright @K-News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특별시 서초구 매헌로14길 21 등록번호 : | 등록일 : | 발행인 : 탁계석 | 편집장 : 김은정 | 이메일 : musictak@daum.net Copyright @K-News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