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노유경 평론가 기자
[노유경 리뷰]
제목: "경계의 울림" (Resonance of the Boundary)-정진욱 졸업연주회
(Composition Graduation Recital of Jinwook Jung)
2025년 2월 5일, 쾰른 음악대학교

2025년 2월 5일, 쾰른 음악대학교(HfMT Köln) 콘서트홀에서 한국인 작곡가 정진욱(Jinwook Jung)의 졸업 연주회(Konzertexamen)가 열렸다. Konzertexamen은 독일 음악대학에서 최상위 과정으로, 단순한 학위 취득이 아닌 작곡가로서의 최종적인 예술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리이다. 그가 선택한 네 개의 작품은 단순한 연주곡이 아니라, 그의 음악적 사고와 예술관을 반영하는 구성적 의미를 지닌다. 공연이 열린 이 날, 2월의 차가운 공기가 도시를 감싸고 있었지만,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쾰른 중앙역을 나서서 쾰른 음악대학교(Hochschule für Musik und Tanz Köln)로 향하는 길, 수많은 역사적 음악가들이 거쳐 간 이 도시에서 한 한국 작곡가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순간을 목격하러 가는 길이었다.
정진욱이 이번 졸업 연주회를 위해 선정한 네 개의 작품은 각기 다른 시기와 음악적 발상을 담고 있다. 그의 음악적 여정이 함축된 이 작품들을 통해, 그가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어떻게 넘나드는지, 그리고 음악을 통해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가 궁금했다. 그가 공연 제목으로 명명한 "Reverse"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시간, 공간, 방향성, 논리 등의 개념을 전환하는 뜻으로 쓰인다. 직역하면 "뒤집다", "거꾸로 하다", "역방향으로 진행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는 이 제목을 작품 시리즈화한 이유와 음악적 맥락을 탐구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시간의 역행, 음향적 반전과 기억과 재구성을 변형시키고 일반적인 화성진행이나 리듬 패턴들이 비선형적으로 배치되고 음향의 잔상과 반향이 구조적으로 도입되어 변형된 형대로 되돌아오며 기억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경우를 시도한 것이다. 그는 실제로 음악속에서 시간성과 기억, 소리의 연속성과 단절에 관해 탐구했다.
첫 곡 « Plan à vol de corbeau, poème n°8 : La dissection » (2022)은 공연에 늦게 도착해 아쉽게도 놓쳤다. 그의 « Plan à vol de corbeau » 시리즈는 한국의 전위 시인 이상(1910-1937)의 시집 『오감도』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상의 언어, 내면성, 자아와 외부 세계의 분리를 실험적으로 음악과 접목시켜, 일제강점기의 억압적이고 질식하는 분위기를 금관 5중주의 강렬한 금속성 음향으로 표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두 번째 곡 « Marche de la cérémonie des Lotophages » (2025), Duo für Schlagzeug und Klavier 는 제목에서부터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 Marche de la cérémonie des Lotophages » (연꽃을 먹는 자들의 의식 행진곡)이라는 제목에서"Lotophages"(로토파고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Odyssey)에 등장하는 ‘로토파고이’(Lotophagoi, Lotus-eaters)는 오디세우스가 항해 중 도착한 섬에서 연꽃(lotus)을 먹고 현실을 망각하며 안락함에 빠진 사람들을 묘사한다. 로토파고이들은 연꽃을 먹으면 과거도, 의무도 잊고 다시 떠나고 싶지 않게 되어버린다.

이 제목이 음악과 연결되는 방식은 곡의 분위기와 상징성을 고려해야 한다. "의식 행진곡"(Marche de la cérémonie)이라는 표현은 어떤 집단적 행동이나 의식을 암시하는데, 로토파고이들의 상태—망각과 도피, 혹은 그 속에서도 남아 있는 저항의 요소—를 음악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 작품이 타악기와 피아노의 이중주라는 점을 고려할 때, 북과 행진곡적인 리듬이 강제적 질서(오디세우스의 항해, 현실로의 귀환)를 상징할 수도 있고, 피아노의 흐름이 망각과 몽환적인 상태 (로토파고이의 유혹)를 나타낼 수도 있다. 간간히 타악기 주자가 자아낸 바람 소리는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는 듯한 느낌을 강조했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Die Blechtrommel, 1959)에서 주인공 오스카 마체라트 (Oskar Matzerath)는 평범한 성장을 거부하고 세상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관찰하며, 북을 치며 사회에 저항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는 북을 통해 시대의 광기를 폭로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유리를 깨뜨릴 만큼 강렬한 비명을 내질러 현실을 변형시킨다. 오스카는 단순한 연주자가 아니라, 저항과 표현의 상징이자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비판적 시선의 화신이다. 음악회에서 등장한 북을 든 타악기 연주자 Jonas Evenstad는 마치 오스카의 환생처럼 보였다. 그는 피아노와 타악기의 경계를 넘나들며, 바람을 입으로 불어넣으며 음악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헨델의 오페라 « Xerxes » (페르시아의 대왕 크세르크세스 1세) 속 비극적인 라르고(Largo)의 선율과 바흐의 Invention의 투명한 구조 속에서, 민중의 항쟁과 행진의 색채가 드러났다. 음악은 단순한 연주가 아니라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졌으며, 시대적 투쟁과 인간의 깊은 정서를 드러내는 강렬한 표현이었다. 파사칼리아(Passacaglia)적인 반복 속에서 점층적으로 쌓여가는 리듬과 멜로디는 마치 밀란 쿤데라의 『농담』(The Joke) 속에서 반복되는 아이러니와 숙명을 떠올리게 한다. 양철북을 치며 시대를 증언하듯이, 타악기와 피아노 사이의 긴장감은 이 곡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세 번째 곡 Reverse (2016)는 13인조 앙상블을 위한 작품으로, 지휘자 Carlos Lopes의 지휘 아래 연주되었다. 제목에서부터 암시되듯이, 이 곡은 '거꾸로' 혹은 '반전'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정진욱이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준 공간적(spatial)·시간적(temporal) 접근법을 고려할 때, Reverse 역시 단순히 음악적 진행 방향을 반전시키는 기법적 실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시간성과 음악적 흐름에 대한 탐구가 담긴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음악적 진행 방식의 비순차성(non-linearity)이다. 전통적인 서양 음악(Western music)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명확한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는 구조로 전개된다. 하지만, Reverse에서는 이러한 인과 관계가 흐트러지고,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러한 방식은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의 Kontakte에서 나타나는 시간성의 해체, 혹은 엑토르 파라(Héctor Parra)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다차원적 시간 개념(multidimensional time concept)과도 연결된다. 또한, 정진욱의 독일 브레멘 대학(Bremen University) 시절 스승인 재독 여성 작곡가 박영희(Younghi Pagh-Paan)의 작품에서 보이는 시간과 공간의 중첩적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박영희는 한국 전통 음악의 순환적 시간 개념(cyclical temporality)을 현대 음악어법과 결합하여 독창적인 사운드 세계를 구축했는데, Reverse에서도 그러한 시간의 유연성이 드러난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13개의 악기들의 음향은 특정한 중심을 가지지 않았다. 대신, 마치 여러 개의 잔상이 겹쳐진 듯한 효과를 준다. 예를 들어, 피아노와 타악기의 짧은 강렬한 음향이 울려 퍼진 후, 현악기나 관악기가 이를 뒤따라오며 이전 소리의 메아리(echo)를 만들어낸다. 이는 마치 과거의 소리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반대로 현재의 소리가 과거의 흔적처럼 들리기도 한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의 소설 농담(The Joke)에서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인물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Reverse에서도 과거의 음악적 요소가 현재의 음악 속에 잔존하며 끊임없이 변주된다. 청자는 익숙한 소리가 다시 들릴 때마다 그것이 과거의 기억인지, 혹은 현재 진행 중인 음악인지 헷갈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비슷한 방식의 시간적 중첩은 한국 작곡가 최우정의 시간의 입자(Particles of Time)에서도 볼 수 있다. 최우정은 개별적인 소리 입자들이 서로 다른 시간축에서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탐구하며, 전통적인 음악적 시간 개념을 해체한다. Reverse 또한 유사한 방식으로 기억과 시간의 흐름을 음악적으로 재구성했다.
마지막 작품 Reverse II (2023)는 오보에와 앙상블을 위한 작품으로, 독특하게도 아리랑 판소리 녹음을 도입부에 삽입한다. 이 녹음이 약1분간 지속된 후 오보에가 등장하는데, 오보에는 4음 연속 상승 후 허공으로 흩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마치 이방인의 외로움을 상징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카뮈(Albert Camus)의 대표작 이방인(L’Étranger)의 주인공 뫼르소(Meursault)는 감정이 없는 듯한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군중 속에서도 철저히 고립된 존재이며, 결국 타인과의 단절로 인해 파국을 맞는다. 4음의 연속 상승 후 허공으로 흩어지는 소리는 마치 뫼르소가 사회적 관계에서 멀어지는 과정과 유사하다. Reverse II의 오보에가 후반부로 갈수록 앙상블과 얽히면서도 끝까지 독립적인 색채를 유지하는 점은, 군중 속에서 끝내 동화되지 못하는 '나'라는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활로 연주되는 바이올린의 움직임과 허공에 떠도는 빈 관악기의 소리는 음악이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물며 존재의 의미와 그 사이의 공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결국, 이 곡은 오보에의 고독한 선율로 마무리된다. 오보에는 여전히 하메른의 쥐 앞의 피리부는 소년(Pied Piper of Hamelin)처럼 기이하고 단절된 선율을 만들어내며, 탬버린의 정기적인 박자는 마치 프랑스 2박자의 춤곡처럼 규칙적으로 반복된다. 이러한 반복적인 리듬은 기계적이고 일정한 질서 속에서 감춰진 무언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그 패턴 속에서 불안정함과 변화를 추구하는 감정이 끊임없이 드러나며, 곡은 마침내 기계적인 질서와 인간적인 혼란이 엇갈리면서 끝을 맺는다.
양철북(The Tin Drum)의 오스카(Oskar), 이방인(The Stranger)의 뫼르소(Meursault), 그리고 하멜른의 피리부는 소년은 모두 이방인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인물들이다. 어린 나이에 유럽으로 유학을 와 홀로서기를 했던 한 소년이 졸업연주회를 앞두고 어른으로 성장한 모습은, 이들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그의 음악에는 낯선 환경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며 겪은 시간들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는 그가 앞으로 어떤 음악적 여정을 펼쳐나갈지 기대되며, 그 앞날을 주목하게 만든다.
글: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 음악학박사, 쾰른대학교/도르마겐 시민대학교 출강, 해금앙상블(K-Yul) 음악감독, 국제독일교류협회대표, 공연평론가, 한국홍보전문가, K-Classic 쾰른지회장, 독일/서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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