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송인호 발행인|
송인호 굿스테이지 발행인
새해가 밝았다. 어김없이 시간은 흐르고 매번 맞이하는 새해이지만 느끼는 바는 매번 다르다. 년말을 넘어 년시인 지금 시국이 참 어수선하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노래하고 덕담을 나누지만 어딘가 모르게 무겁다. 지난 년말을 되돌아 보자면 대형 사고로 인해 송구영신의 행사 대부분이 취소되거나 축소되었다. 그래도 꼭 해야되는 행사만 진행됐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년말이 되면 각 단체들은 송년행사로 분주하다. 특히 음악회가 많다. 이번에도 예술의전당을 비롯한 각 국립기관 단체들이 송년음악회를 열었다.
그중에서 손꼽히는 것이 예술의전당 제야음악회다. 보통때 같으면 새해 카운터다운을 기점으로 불꽃놀이까지 하는데 올해는 취소됐다. 그냥 음악회만 하고 끝냈다. 다른 단체도 마찬가지다. 예술의전당 제야음악회는 1994년 처음 시작돼 올해로 31년째다. 중간에 2020년, 2021년 두번 연속으로 빠지고 그 나머지는 매해 개최됐다.
예술의전당 제야음악회는 많은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 제야음악회의 프로그램 구성을 보면 전부 외국곡 일색이다. 이것은 다른 지방의 공공단체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어로 된 노래를 하는 곳도 한,두군데 있지만 이마저도 일반 대중가요나 뮤지컬(외국작품)이다. 제야음악회가 취소된 곳도 취소되기전 프로그램구성을 보면 전부 외국곡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K-pop으로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 열풍이 K-movie와 K-food로 번졌고 점점 더 문화전반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는 K-Classic까지 대두되고 있다. 조성진을 위시해서 임윤찬까지 유럽 전역에 오페라단에는 한국인 주역이 맹활약하고 있다. 얼마전 미국 뉴욕 메트오페라에서는 한국인 백석종 테너가 부른 네순 도르마가 엄청난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를 빛냈다.
이제 한국은 클래식음악 마저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런데 문제는 죄다 서양음악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 음악은 없는 것일까. 서양인들의 눈에 자기네 음악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판단 기준이 되지만 정작 그들이 듣고 싶은 것은 대한민국, 즉 우리 음악이다.
평소에는 서양클래식음악을 한다쳐도 중요한 대목에는 왜 우리 음악이 없을까? 년말년시에 이루어지는 제야음악회와 신년음악회에는 우리 음악이 없다. 우리 음악은 국악단에서만 해야 하나? 그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제 클래식 분야도 우리의 것을 해야 한다. 우리의 노래는 훌륭한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우리의 노래로 채워야 한다. 그들은 관객 탓을 할지 모르지만 우리 관객들도 들려주면 좋아한다. 안들려줬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사랑할까.
우리는 뛰어난 작곡가들도 많다. 그들의 작품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공공기관의 단체들은 우리의 뛰어난 작곡가들의 작품을 찾아 중요한 행사에 반드시 곡을 올려야 한다. 우리나라 작곡가들이 만든 곡을 아무도 부르지 않고 연주하지 않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들이 열심히 작곡을 해도 그저 종이위에 음표로만 존재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들의 곡이 자꾸 연주되고 불려지면 그들은 더욱 더 열심히 좋은 곡을 쓸 것이다. 이것은 선순환이 된다. 아예 이참에 각 공연장에 우리나라 작곡가의 곡을 반드시 연주하는 쿼터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본다. 한때 우리 영화계에는 스크린쿼터제도가 있었다. 이로 인해 한국의 영화산업은 살아남아 결국 미국 허리우드에서 아카데미상을 거머쥐는 당찬 일을 해 내게 된 것이다.
어느 원로 작곡가가 '예술모국어법'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즉 대한민국 사람이 행하는 예술행위를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규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외국 오케스트라나 단체가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 반드시 중간에 한 곡 이상을 한국 작곡가가 만든 곡이나 노래를 연주하게끔 해야 한다. 민주주의 시대에 무슨 독재 국가에나 있을 법한 것이라고 뭐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경제논리만 봐도 이미 전세계는 자국의 기업이나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물리고 폐쇄적인 정책을 쓰고 있지 않나? 왜 경제는 그래도 되고 예술행위는 그렇게 하면 안되는가?
십수년전쯤에 일본에서 한국의 무용가들이 공연을 하러 갈 때 따라 간적이 있었다. 일본 요코하마의 오래된 '요코하마 노(能) 극장 横浜能楽堂'에서 공연을 했다. 역사가 146년 된 유서깊은 극장이다. 이 공연에서 중간 휴식시간이 끝나고 2부 공연 시작전에 한 일본 전통무용가의 공연이 있었다. 공연은 한개로 시간은 10분 남짓 짧았다. 분명 프로그램에는 없었는데 싶어 공연이 다 끝난 다음 주최자에게 물어봤다. 그의 대답은 외국 단체가 이곳 공연장 대관시에는 반드시 이 지역 전통예술가들의 공연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안그럼 대관 자체가 안된다는 것이다. 공연 프로그램과 예술가는 극장측에서 정하고 출연료도 극장측에서 지불한다는 것이다. 대관을 한 주최측은 그냥 시간만 할애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은 자기네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개발도상국일 때야 남의 나라 문화를 빌려 쓰기도 하고 또 클래식이 세계 표준화로 통용되는 것이니까 당연하다 하겠지만 지금은 나라의 위상이 일취월장 크게 달라졌고 클래식도 세계 표준이 아니지 않는가. 세계가 우리를 주목할 뿐만아니라 우리 것을 배우고 우리를 닮고 싶어한다. 상황이 이런데 우리는 정체성을 잃은채 무작정 모방과 수용만 있다면 이 또한 낡은 사대주의 경도가 아니겠는가.
전통을 비롯해 우리 것이 없는 것도 아니고 창작의 기술력도 충분하기에 과거 인식을 벗어나 혁신으로 우리 것을 만들어 자랑하고 수출하는 K-콘텐츠 시대다. 막대한 노력과 투자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균형, 발전을 위해 범국가적으로 나설 때라고 본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예술을 사랑해야 한다. 안그럼 누가 우리 예술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