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유경 리뷰] 프랑스 파리로 소환된 신라의 천•지•인 (天•地•人) 이야기: 오페라 <처용>

  • 등록 2024.06.19 01: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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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과 끼의 융합

 

K-Classic News 노유경 평론가 기자 

[노유경 리뷰]

제목: 프랑스 파리로 소환된 신라의 천•지•인 (天•地•人) 이야기: 오페라 <처용>

장소: 프랑스 파리 오페라 코미크(Opéra-Comique)

시간: 2024년 6월 9일 17시

 

-오페라 코미크(Opéra-Comique)-

 

파리 2구에 위치한 오페라 코미크(Opéra-Comique)가 세워진 1714년은 대략 조선 19대 국왕 숙종 말기 시기 즈음이다. 310년 유서를 자랑하는 오페라 코미크는 프랑스 시민의 자부심이다. 이 극장은 한때, 파리 오페라의 독점권에 반대해 반격을 가했던 파리 오페라 기관에 대한 균형추로 오늘까지 남아있다. 1817년 로시니(Gioachino Rossini)의 오페라가 성공적으로 데뷔했고, 1875년 비제(Georges Bizet)의 오페라 <카르멘(Carmen)>과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호프만의 이야기(The Tales of Hoffmann)>가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다. 음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많은 작곡가의 오페라가 이 극장에서 연주되었다. 드뷔시(Claude Debussy)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éas et Mélisande,1902)>가 이곳에서 초연되었고, 라벨(Maurice Ravel)의 스페인 전통음악을 프랑스 정취로 풀어낸 첫 오페라 <스페인의 한때(L'Heure espagnole,1911)>가 역시 이곳에서 제작되었다. 2005년 국립 극장 지위를 받은 이 극장은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며 자율적이고 정기적으로 현대 오페라 작곡을 의뢰하여 공연하고 있다. 

 

 

-삼국유사 <처용가>와 한국 오페라 <처용>-

 

37년 전 국립오페라단에 의해 서울에서 초연되었던 <처용>은 방대한 용량의 음악인이 출연하는 대서사시 오페라였다. 당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위촉 받은 작품이니 한국을 알리는 사명을 위임받았다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의 <처용가>는 고려시대 가요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교과서에서도 배우는 천년이 넘는 역사 속의 8구체 향가이다. 통일신라 말 49대 헌강왕 시대(875-886)를 배경으로 동해 용왕 아들 처용이 아내를 범한 역신 앞에서 노여움대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이후 질병을 쫓는 부적처럼 처용의 얼굴을 문 앞에 붙이기도 했다는 한국의 설화와 관습을 포괄한 전설이다. 처용 설화에서 모티브를 입양한 오페라 <처용>은 1988년 초연 이후 두 번 공연되었고 공연 때마다 조금씩 각색되어 고전과 현대를 표현하는 공간 이동을 보여 주기도 하고 특히 2013년 공연에서는 파격적인 변모를 보이며, 귀신을 감동시킨 이야기가 아니라 황금만능을 꾸짖는 강남스타일 <처용>이 연출되기도 했다.

 

 

-운과 끼의 융합-

 

그간 3번에 걸친 한국 땅의 오페라 <처용> 공연이 파리로 소환되었다. 2024년 이번 <처용> 공연도 초연 때가 연상되는 같은 키워드 „올림픽“이 있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손님을 맞이했던 처용(1987)은 2024 제33회 파리 올림픽을 기념하면서 ‚객(guest)‘으로 초대되어 한국 문화 교류를 집대성했다. 처용이 시작되기 전 관객들은 무대 위에 놓인 나무 한 그루를 눈에 각인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1908-2004)의 ‚결정적인 순간‘ 같기도 하고,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의 ‚쓸쓸함‘ 같기도 한 오브제였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니 이 극장의 다음 작품인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1687)의 <아르미데>(Armide: Libretto Quinault 1686.2.15)를 위한 나무였다고 한다. 연출 이지나는 처용과 가실을 륄리와 르노보다 먼저 나무와 매치했다. 운과 끼는 천재일우 했다. 

 

오페라 코미크를 비롯하여 유럽에 있는 모든 공연장은 최소한 2년에서 3년 전에 예약해야 공연에 임할 수 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정해진 문화 행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코미크를 대여받은 일은 대단한 행운이다. 프랑스 파리 교민들 상황까지는 잘 모르지만, 프랑스 한글학교 교사와 교장, 그리고 한글에 종사하는 교육자와 교수들은 모두 <처용>을 기다렸다. 현재 파리에는 올림픽 전에 치러지는 수많은 문화 행사가 있는데, 유독 오페라 <처용>에 관심을 두고 기다렸다 한다. 한국에서 입성하는 최고의 3대 산맥,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지휘: 홍석원), 국립합창단(지휘: 민인기) 그리고 오페라 제목만 봐도 이것은 보나 마나 한국적이겠다 싶은 매력적인 제목 <처용>을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천•지•인 이야기-

 

원시주의적인 스트라빈스키의 리듬이나 3/2/3, 2/3/3, 3/3/2 황금분할의 바르톡의 음색을 간간이 기억하게 하는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무조로 흘러가는성악가의 텍스트가 교감했다. 하늘의 이야기는 흰색으로 의관을 갖춘 합창단과 옥황상제(베이스:권영명) 그리고 멸(滅)하여 가는 신라를 구하겠다고 아버지를 설득하는 처용(테너:김성현)이 텍스추어를 느슨하게 끌었다. 옥황상제는 땅을 표현하듯 그리고 수평선을 그리듯 통주저음 같은 저성부 형태를 지속하면서 합창을 통솔한다. 땅의 이야기는 흰옷 대신 붉은 의상으로 홍익인간을 상징하기도 하고 살과 피를 담은 생명체를 표현하기도 한다. 인간과 공존하는 처용의 몸은 선과 악의 이중성을 표현했다. 태어나기 위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하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결합체 ‚아브락사스‘ 또는 ‘치킬 박사‘와‘하이드 씨‘가 동시에 처용 속에서 의지를 종용하는 듯 주관적인 나와 객관적인 내가 질서 위에서 종횡한다. 땅으로 내려온 처용과 가실의 만남 그리고 역신의 행보에는 작곡가 이영조가 미리 장치해 놓은 음색, 리듬, 멜로디가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작업은 바그너가 도입한 개념 라이트모티프(Leitmotiv 유도동기)와 매우 유사하므로 오페라 <처용>을 논할 때, 인물이나 상황에 반복되는 짧은 주제와 동기를 묘사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이영조의 주제 선율에 관한 고찰을 지나치지 않는다. 이번 유럽 순회 공연 프로그램에는 이영조의 유도동기에 관한 편린이 독일어와 불어로 시사되었다. 

 

1. 처용: 처음부터 변함없이 하강하는 장 2도 (파/미)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처용을 상징하며 그의 이름 두 음절에 해당하는 두 음표로 구성되어 있다. 

2. 가실: 상승하는 증 4도 (시b/ 미)는 가실이 하늘에서 내려온 처용에 대한 숭배의 상징이다. 처용이 역신에게 가실을 넘겨 준 이후에는 하강하는 감 5도의 음정으로 바뀌고, 가실 이름 두 음절에 해당하는 두 음표로 구성되어 있다. 

(1.2 오페라 <처용> 프로그램을 글쓴이가 번역함)

 

이와 같이 연이어 처용과 가실, 역신(바리톤:공병우), 역신의 변신 그리고 멸하는 신라 멜로디의 설명을 프로그램에서 미리 읽을 수 있었다. 듣는 사람들은미리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주 들리는 멜로디와 단어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다. 거의 명확하게 정의된 개별 효과가 지배적이기도 하고 신비로운 비밀이나 자연의 힘이 행동을 지배하지 않는 인간의 감정적 영향의 범위를 표현하기도 한다. 백의민족과 홍익인간을 상징하는 흰색과 붉은색의 의상이 나타나고 사라질 때, 음의 여운은 여전히 나무를 맴돌고 있다. 가실(소프라노:윤정란)이 나무 위에서 자결할 때, 칼로 몸을 찌르는 순간에 관객으로부터 소리가 났었다. 관객이 아파했다. 

 

주프랑스 한국 대사 최재철, 작곡가 이영조,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 오페라 코미크 극장 대표 루이 랑그래 Louis Langrée

 

-하늘과 땅, 신과 사람, 선과 악, 에덴의 동산 선악과의 나무였을까?-

 

오페라 장르 특성상 무대 위의 성악인들이 주목을 받는 것이 사실이나 <처용>의 오케스트라 파트를 따로 연주하면 온전한 관현악의 면모가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서양적이다, 동양적이다”라고 해석하기보다는 "친근한 기억의 소리”였다. 상징할 수 있는 총체 중 듣는 행위만 필터링한다면, 인간의 민낯을 펼쳐놓고 새롭게 심판 받는 사운드가 아니라, 연민이고 사랑을 알리는 소리였다. 수많은 명사와(리셉션에서 인사말을 했던 주프랑스 한국대사 최재철, 오페라 코미크 극장 대표 루이 랑그래 Louis Langrée,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Bernard Werber) 많은 관객 중에 파리나무십자가소년합창단이 눈에 띄었다. 파리나무십자가소년합창단은 100년 이상 역사와 전통을 보유하며 우리나라에도 여러 번 방한하여 특별 초청공연을 갖은 바 있다. 학생들은 틴에이저가 아직 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도 있었는데 숨을 죽이고 집중하다 밖으로 나와 „가실, 가실, 처용, 처용“ 멜로디를 따라 부른다. 학생에게 잠깐 인터뷰를 해보았는데 „비윤리“라든지 „비도덕“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가실이 죽어서 슬프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말로 된 오페라는 처음 경험한다고 하면서 한국인의 이모션이 담긴 성악 실력에 매우 감탄했다. 90분 후에 관객은 처용과 가실을 멜로디로 부른다. 단 2도인지 감 5도인지 알지 못해도그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된다. 마치 십자가나무소년합창단의 소년처럼… 브레송의 오브제 같았던 나무는 에덴의 동산 선악과의 나무로 다가왔다. 

 

-처용의 흔적-

 

<처용>은 인문학적인 오페라였다. 오페라의 주제를 보면 유난히 다른 장르보다 비윤리와 부도덕을 테마화한다. 매춘부의 사랑 또는 남의 연인을 흠모하는 사랑을 도식화하고, 신랄하게 경고하며 직접적, 간접적인 인간의 선과 악을 질탄하고 연민한다. 처용은 네러티브하고 정서적 연속성을 제공하며 극적인 표현을 풍부하게 나누었다. 토마스만(Thomas Mann 1875-1955)은 „바그너의 음악은 라이트모티프를 통하여 이야기한다“라고 발언하였는데, 이영조가 사용한 „이영조 유도동기는 토렴하여 의식을 제례 했다“고 덧붙이고 싶다. 오페라 <처용>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다가온 종교처럼 신성했다. 리셉션에서 나누는 대화의 키워드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였고 미래였다. 파리의 공연이 끝나면 베를린과 빈의 공연으로 이어간다. 베를린과 빈은 파리의 무대보다 더 축약하여 콘체르탄테 형식으로 공연된다고 한다. 관현악 연주자들이 모두 무대에 서게 되니 탄탄한 관현악의 진가가 수면으로 올라올 것으로 생각한다. 

 

 

-문화교류 전령사-

 

신화의 근원은 „정신“에 기초한다. 제대로 적거나 흔적이 없어도 입으로 전해지고 행동으로 저장한다. 신화에서는 자연과 사람이 자주 동일시된다. 초이성적인 힘이나 직관을 통한 계시력을 보편성에 깔고 설득한다. 수많은 예술가는 신화를 재해석해 왔다. 새롭게 해석된 신화에서 최고의 신성한 본질을 꺼내문학작품에서 얻고자 한 프리드리히 횔덜린(Friedrich Hölderlin 1770-1843)의 노력처럼, 이번 오페라 <처용>을 통한 음악적 설화 해석은 한국의 신성한 예술적 실체를 잉태했다. 오페라 앞편과 뒤편, 보이지 않는 곳에 서 있던 음악인들, 그리고 중심에 서 있던 음악인들 (테너 김성현: 처용, 소프라노 윤정란: 가실, 베이스 권영명: 옥황상제, 바리톤 공병우: 역신), 한 꼬집의 사프란처럼 향료 여운을 남겼던 음악 옆에 춤사위(류재혁), 작곡가와 연출가, 제작진과 출연진, 스태프까지 150여 명의 문화교류 전령사는 „설화 재탄생“을 정비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공통 역사에 해당하는 <롤랑의 노래>(La Chanson de Roland) 는 현존 프랑스 문학작품 중 가장 오래된 시이며, 이슬람 세력을 프랑스의 샤를마뉴 대제가 막아내는 서사시이다. 같은 800년 시기의 왕인샤를마뉴 대제의 시기(747-814) 롤랑과 신라 헌강왕의 처용은 다른 역사 속에서 기거하지만, 예술의 지평선에서 상봉하는 벗인 것이다. 

 

-프롤로그-

Wenn man jemandem Hals- und Beinbruch wünscht? Man wünscht ihm oder ihr viel Glück und dass alles gut geht - besonders im Theater-Umfeld, zum Beispiel kurz vor einem Auftritt.

누군가가 목과 다리가 부러지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라며 특히 공연 직전과 같은 극장 환경에서 „모든 일이 잘 진행되기를바랍니다“ 라는 뜻으로 통용되는 마치 영어 속담 „break a leg„와 비슷한 독일 속담이다. 이번 공연의 두 지휘자가 다리를 다쳤다고 한다. 혹자는 처용가의 네다리를 비유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글쓴이는 독일어로 된 „행운의 상징“ 속담을 남긴다.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 주프랑스 한국 대사 최재철, 오페라 코미크 극장 대표 루이 랑그래 Louis Langré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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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노유경 프리뷰] 

“처용업고튀어” 심판 받는 K-신의아들, 처용

http://www.kclassicnews.com/news/article.html?no=153210

 

 

글: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 쾰른대학교/아헨대학교 출강, 전통음악앙상블K-Yul 음악감독, 국제독일교류협회대표, 음악학박사, 공연평론가, 한국홍보전문가, K-Classic 쾰른지회장, 독일/서울 거주, Ynhovon1@uni-koeln.de, 인스타그램: Hangulmanse, kyul-germany

 

 

노유경 평론가 기자 atonal15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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