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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섭 세계현대시 詩 칼럼] 산유화 - 김소월

A Better Me
나에겐 아직도 기다리는
마음이 있어

K-Classic News 원종섭 칼럼니스트 |

 

 

 

 

 

산유화  山有花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산유화》(山有花) 1924년 10월 《영대》 3호에 발표.  1925년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

 

 

 

 

 

아름답습니다.

존재의 근원적 고독이 저만치 흐릅니다.

 

 

탄생과 소멸의 순환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산유화는

산에서 피고 지는 모든 꽃을 의미합니다

실제 꽃이름이 아닙니다.

 

 

우리는 홀로 외롭게 피고 지는 존재

산은 존재의 생멸이 순환되는 근원적

고독감을 발견하는 공간입니다.

 

 

그렇게 시는 고독하게 태어나고

고독하게 살다가 고독하게 돌아갑니다.

 

 

소월 의  시에서는

우리 겨레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민족 동일체적인 얼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김소월  金素月

 

1902-1934. 대한민국 평안북도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김정식  金廷湜, 본명보다 소월  '素月 흰 달' 이라는 아호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토속적인 한과 정서를 그대로 담아낸 시를 써냈습니다.

 

1904년 아버지 김성도가 친척집에 음식을 싸들고 말을 타고 가던 길에 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들이 이 음식을 뺏으려고 그의 부친 김성도에게 달려들어서 마구 구타당해 정신이상자가 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다행히도 목숨은 건졌으나 심한 폭행을 당한 일로 PTSD에 시달리며 음식을 거부하며 집안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어린 김소월은 이런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경멸하는 양가감정에 휩싸였습니다.

 

이후 김소월의 가족은 광산을 운영하고 있었던 김소월의 할아버지 집으로 이사하는데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고 성장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직후인 1905년 훗날 김소월의 민요적 어조에 김억과 더불어 큰 영향을 끼친 계희영이 김소월 집안에 김소월의 숙모로 들어옵니다. 그녀는 어린 김소월을 앉혀놓고 자신이 알던 전래 동화나 민요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소월은 민요시인이라고도 불립니다. 소월은 민요리듬의 시를 쓰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의 시에서 두드러지는 특성  ' 정한의 세계 '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월의 시적 특징은 그 형태상의 정제성과 우리의 전통 시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율격적인 질서를 새롭게 변용한 점입니다. 그는 특히 민요의 3음보격과 4음보격을 적절히 응용하여 이미지의 공간을 확정시키고, 그 환기된 정서를 배경으로 내면의식을 구체화시키는 특징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삶 속에 내재된 응어리진 애환이나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간절한 생활의식과 긴밀한 연계를 맺는다는 차원에서 수용되어, 민요적 정서와도 상통하는 면모를 보여줍니다.

 

 

김동리는 《문학과 인간》(1948)에서

이 시의 형식이 “기적적인 완벽성”을 갖추었으며 “

조선의 서정시가 도달할 수 있는 한 개의 최상급의 해조를 보여주었다”고

극찬하였습니다.

 

 

또한 김종길은 이 시에 대해 “

자연에의 초월이 거의 불가능해진 현대인의 좌절이

숭고한 가락으로 읊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2연의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는 꽃’의 형상에 주목하여 ‘저만치’의 의미를 “인간과 청산과의 거리”,

“인간의 자연 혹은 신에 대한 향수의 거리”라고 풀이한 바 있다.

 

 

 

수미상관, 소박한 시어의 반복

변주의 시상전개, 친숙한  운율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뜻밖의

능력입니다.

 


 한편 같은 시기 김소월은 오산학교에서 같이 수업을 받던 오순이라는 이름의 여성과 교제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김소월은 이미 홍단실과 결혼을 한 상태였기에 두 사람의 인연은 오순이 19살의 나이로 시집을 가게 되면서 끊어졌고 오순은 의처증이 심했던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2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합니다. 이 당시 김소월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탄식하며 김억에게 배운 시 작법으로 많은 양의 시를 썼는데 이들 시는 훗날 김소월 생전에 낸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에 실려서 김소월의 대표적인 서정시들로 자리잡게 됩니다. 김소월의 대표시 중 하나인 <초혼>은 오순의 장례식에 참석한 직후 쓰여졌다고 합니다.
 

 

아내에게 죽기 이틀 전

"여보,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라면서

쓴 웃음을 지으며 우울해했습니다.

 

사망 당일 김소월이 시장에서 아편을 샀다는 기록이 있어서

"김소월이 빈곤에 시달리다 아편을 먹어 자살한거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국인 귀화 필기시험에 <진달래 꽃>의 지은이가 누구냐는 문제가 나옵니다. 즉 김소월을 모르면 한국인이 아니라는,  민족  시인이자 한국 서정시의 원류, 민족시의 발원지로 불리는 우리나라를 대표 하는 시인 김소월 입니다. 

 

 

 

서정시의 무의식

그  불안한 욕망과 억압 

그리고 김소월

 

 

 

 

원종섭   Won  Jong-Sup

시인 , 길위의 인문학자,  대중예술 비평가,   영미시전공 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