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황순학의 문화노트] “루이지 꼴라니(Luigi Colani, 1928~2019)를 추모하며!”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 루이지 꼴라니

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

 

 

“바로크 예술에도 직선은 없다!” 

 

“나는 100세까지 사는 집안 출신이다.”라던 루이지 꼴라니(Luigi Colani)가 지난 2019년 9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필자는 그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고 그를 추모하며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이번 문화노트의 주인공으로 모시게 되었다.

 

 

[루이지 꼴라니(Luigi Colani): 그는 늘 흰색의 옷을 입었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길고 깔끔한 갈기의 바다코끼리 같은 콧수염은 국제 콧수염 학회에서 ‘올해의 콧수염’을 수상한 적이 있다.]

바이오 디자인(Bio Design: 생체 공학을 형성하고 있는 곡선을 기조로 하는 디자인))의 창시자이자 살아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란 별명을 가졌던 루이지 꼴라니의 디자인 철학은 그가 남긴 “90%는 자연에서, 10%는 멍청한 번역가 꼴라니에게서!”란 말로 대변된다.

 

꼴라니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자신을 ‘디자이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공기 역학을 공부했고, 철학을 공부했고, 조각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첨단 기술을,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을 공부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그의 독특한 이력으로 인해 그는 작업 방식에 있어서 표준 절차나 프로세스에 관심이 없었고, 그의 작업 방식은 매우 직관적이었다. 그는 자신을 ‘3D 철학자!’라고 불렀고 각 디자인 문제를 디자인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각 프로젝트에서 더 큰 질문에 답하려고 했다.

 

그는 평생 자연과 자연 과정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을 반영하여 자신의 디자인 접근 방식과 스타일을 ‘바이오 다이내믹(Bio Dynamic)’이라고 불렀다. 그는 종종 바다에서 잠수를 즐기며, 자연 생물이 바다에 완벽하게 맞는 몸으로 주변 환경을 매끄럽게 이동하는 것을 보았을 때의 경험들은 그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그의 디자인 철학은 “인간이란 그저 자연을 관찰하면 된다. 그곳에서 우리는 완벽한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디자이너란 무엇인가를 발명해서는 안 된다!” “자연처럼 더 크고 위대한 것을 해석해야만 한다!”라는 게 그의 디자인 철학이었다. 

 

즉 미시적 세계에서도 자연과 생명체가 갖는 곡선의 아름다움은 늘 인간으로부터 큰 공감을 받아 왔음이 아래 1984년에 일본 소니(SONY)사를 위한 그의 헤드폰 디자인에서도 드러난다. 지금의 이어폰 형태의 기원임을 알 수 있다.

 

[루이지 꼴라니의 '1984년 소니 디자인 컬렉션 《코브라》 생체 공학 헤드폰]

지구는 둥글기에 자연은 각(角)을 만들지 않으며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그러므로 나의 디자인 세계는 모두 둥글다. 라는 말을 실현이라도 하기 위해 자연과 생명체 특유의 곡선미와 역동적 속성이 도드라진 1984년 당시로서는 미래지향적 의자라는 것이 느껴진다.

또 다른 그의 디자인 작품을 만나보자. 

 

 

[루이지 꼴라니의 Piano]

그의 쉼멜(Schimmel) 페가수스 피아노 디자인 역시 피아노가 갖는 원래의 직선적 형상을 해체하고 곡선미로 형상화한 바이오 디자인(Bio Design)이 갖는 하나의 생명체 같은 느낌이 강한 역동적 곡선미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많은 디자이너가 그의 이런 조형 능력을 흠모하며 따라 했으나 그의 경지를 넘어서기란 불가능했다. 그의 조형 능력은 섣불리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차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자동차 디자인은 20세기에 21세기를 내다 본 디자인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다음의 작품은 페라리를 위해 제작된 Ferrari Testa d'Oro로 당시 최고속도였던 345Km를 달성하게 된다. 

 

 

다음 작품은 1977년에 디자인한 일명 꼴라니 트럭이다. 21세기 현재 시점에서 바라봐도 여전히 미래지향적 디자인이라는 점에 수긍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의 상상력은 시대를 한참 앞서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그럼 이처럼 루이지 꼴라니(Luigi Colani)의 바이오 디자인(Bio Design)처럼 그의 조형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바로 루이지 예술의 역사에서 현대적 디자인의 영감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새롭게 발견되는 것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루이지 꼴라니(Luigi Colani)의 바이오 디자인(Bio Design) 역시 과거 예술의 역사에서 모두 발견되는 것들이며, 새롭게 해석된 것들이란 것이다. 

 

예술의 역사는 전통에 관한 반역이 성공해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고, 이것은 얼마 안 가 또 다른 반역을 만나고 승리한 반역에 전통의 자리를 내주며 써내려 오고 있는 순환적 역사이기에 어떻게 보면 직선과 곡선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근대적 예술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15세기 르네상스 예술은 선원근법 발견과 그 영향으로 다분히 직선적인 느낌이 강한 예술이다. 다음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 1472》나 미켈란젤로의 《성 가족과 세례자 요한, 1507》의 작품에서도 느껴지듯이 전성기 르네상스 예술이 갖는 안정적이면서 이상적인 기하학적 형태와 구도로 세상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음이 느껴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Annunciazione 1472]

 

l

[미켈란젤로의 성 가족과 세례 요한 Doni Tondo 1507]

 

이후 전성기 르네상스에 반역을 시도한 예술이 나타나는데 바로 16세기 유럽에 유행했던 매너리즘(Mannerism) 예술이다. 매너리즘(Mannerism)이란 용어는 현대인에게는 그렇게까지 좋은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는 점이 사실이지만 루이지 꼴라니(Luigi Colani)를 포함한 유럽의 많은 디자이너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고 오고 있는 바로크(Baroque) 예술의 기원이 매너리즘(Mannerism)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매너리즘(Mannerism) 예술가들은 르네상스 전성기를 이룩한 천재적이었던 선배 예술가들의 크나큰 발자취에 압도당한 나머지 기존의 방식으로는 선배 예술가들 그러니까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전성기 르네상스 예술이 구현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반역을 꾀하게 된다.

 

그 반역의 시작은 아래 그림 오른쪽의 체사레 다 세스토(Cesare da Sesto)의 레다와 백조(Leda col cigno)처럼 왼쪽 자신의 스승이었던 다 빈치의 습작을 그대로 답습해 모방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매너리즘(Mannerism)은 시작된다.

 

 

그리고 전성기 르네상스에 관한 진정한 반역은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의 인물 초상화에서 구현되는데 다 빈치의 라 죠콘다(La Gioconda: Mona Lisa)를 답습하기보다는 완벽한 반역에 성공한다.

 

다음의 그림 《베르툼누스: Vertumnus-Rudolf II 1590》는 당시 신성 로마 황제였던 루돌프 2세(1552-1612)를 정원과 과수원을 관장하는 고대 로마 계절의 신인 베르툼누스로 묘사하며 전성기 르네상스 예술이 구축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인공적인 아름다움에도 인간이 여실히 반응한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시키며 예술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다소 파격적이었던 아르침볼도의 인공미가 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곡선의 아름다움으로 승화한 파르미쟈니노(Parmigianino)가 등장하면서 매너리즘 예술은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열어가며 이전 전성기 르네상스를 완벽하게 극복한다. 

 

다음의 파르미쟈니노의 초상화는 당시 이발소에 걸려 있던 볼록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서 인공적인 볼륨감에 눈뜨게 된 파르미쟈니노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인공적인 볼륨감을 앞세운 바로크가 본격적으로 구현되면서 우리는 그 모습을 다음의 루벤스의 화풍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루벤스의 《십자가를 세움:Innalzamento della Croce, 1611》이란 작품은 바로크 시대 작품답게 화폭을 장식하는 모든 인물은 하나 같이 지금의 헬스클럽 PT 강사 같은 육중한 근육질로 매너리즘의 과도한 과장에서 벗어나 다소 정리된 인공적인 신체적 풍만감을 자랑하며 이전 르네상스 시대 사실적인 인물상과는 거리가 멀다. 

 

바로 과장된 곡선미로 권력 지향적이며 한편으로는 관능적 신체의 풍만함을 좋아하던 17세기 바로크 시대정신과 바로크 예술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과장되고 화려한 곡선의 패턴들은 바로크 이후 유럽 사회에서 귀족적인 면모로 인식되고 정립된다. 이런 이유로 최초의 자동차들 즉 클래식 자동차로 불리는 것은 당시 대부분 귀족의 전유물이었기에 하나같이 루벤스의 작품처럼 바로크적 근육질을 바탕으로 관능적인 자태를 뽐내며 수요자인 귀족의 기호와 욕구를 충족시켰다. 

 

루이지 꼴라니 역시 바로크의 곡선미에 사로잡히는데 그가 세 살 때 집 근처에 주차된 부유한 이웃의 1930년 발표된 메르세데스 벤츠 710 SSK를 발견했을 때 처음으로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는 이 로드스터의 선과 곡선미에 매료된다. 그는 나중에 “나는 이 차 뒤에 서서 트렁크가 얼마나 멋진 모양인지 한 시간 동안 감탄했던 것을 기억합니다.”라 회고하며 이 로드스터가 갖는 바로크 스타일의 화려한 곡선미와 근육질의 볼륨감은 그를 디자인 세계로 인도하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MERCEDES BENZ 710 SSK, 1930]

메르세데스 벤츠 710 SSK 처럼 바로크 시대는 이전 르네상스와는 다르게 신체를 극단적으로 볼륨감을 강조하기 위해 여성은 코르셋을 착용하고 남성들은 허벅지와 종아리를 딱 달라붙는 레깅스로 장식하며 서로의 관능미를 자랑한 시대이다.

 

 

17세기 바로크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메르세데스 벤츠 710 SSK에 이식되고 세 살 나이의 루이지 꼴라니를 홀리게 한다. 그리고 고전 예술을 교묘히 숨겨 놓은 그의 작품은 여전히 미래지향적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클래식은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대변하며 늘 인간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요소들이 숨어 있음을 잘 알려준다.  이 점에서 볼 때 우리는 클래식 그러니까 고전 예술이 선사하는 것들의 의미와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볼 때이다. 

 

뒤늦게나마 루이지 꼴라니의 영면을 바라며, 그의 영감의 원천이었던 고전 예술을 잘 훔쳐 새로운 예술인 양(Bio Design처럼) 세상에 내놓는 또 다른 꼴라니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