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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경 리뷰]-베를린에서 초연된  임준희 작곡 혼불 7 리뷰-

 타악기와 대금의 조합은 역동적인 터치로 산수화를 그렸다

K-Classic News 노유경 평론가 |

 

2022.7월 1일 ,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혼불7, 대금 이아람 

 

120주년 기념 음악회 오프닝이 된 <혼불>

 

작곡가 임준희의 작품 7번째 < 혼불>이 2022년 7월 1일 베를린 콘서트 하우스에서 세계 초연되었다. <120년 만의 만남, 대한제국 애국가 공식 제정 120주년 기념 음악회>의 오프닝으로 <혼불>이 밝혀졌다. <혼불>이라는 제목을 살펴본다. 혼도 불도 센 단어 같다.  

 

혼이 나간다. 영혼이 사라진다~  처럼 혼에 관한 단어들은 모호하고 경이롭다. 불 또한 만만치 않은 단어다. 5원소에 나왔던 물, 불, 흙, 바람, 그리고 불, 불은 빛이고 열이며 인류와 불과의 관계는 문명이고 전쟁이고 에너지이다.

 

 

2022.7월 1일 베를린 콘체르트 하우스, 임준희 작곡가, KBS인터뷰 중 

 

„그날 밤 인월댁은 종가의 지붕 위로 훌렁 떠오르는 푸른 덩어리를 보았다. 안채 쪽으로 솟아오른 그 불덩어리는 보름달만큼 크고 투명하였다. 그러나 달보다 더 투명하고 시리어 섬뜩하도록 푸른빛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청암 부인의 혼불이었다. (혼불, 3권 107쪽) “ 전라남북도에서 쓰이는 사투리 혼불은 소설가 최명희의 작품으로 인해 국어사전에 새롭게 등재된 단어이다.

 

작곡가 임준희 2002년 최명희 작가의 <혼불>을 운명처럼 만나다

 

2003년 세계 여성 음악회 작품 위촉으로서 전통문화에 담긴 한국인의 삶과 얼을 선율로 표현하고자 했던 작곡가 임준희는 2002년 최명희 작가의 <혼불>을 운명처럼 만난다. 임준희 작곡가는 최명희가 17년 동안 집필한 소설 <혼불>을 통하여 치열한 예술혼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임준희 작곡가는 작가 최명희 보다 더 오래 동안 혼불과 숨 쉬고 있다. 이번 베를린에서 초연을 선보인 작품 혼불은 혼불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이다. 강모와 효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기다림이 만든 소리를 표현했던 혼불 첫 작품 „인성과 가야금과 국악 관현악을 위한 혼불-백초를 다 심어도“ 는 이미 19년 전에 작곡되었다. 혼불 1- 백초를 다 심어도, 혼불2- 나의 넋이 너에게 묻어, 혼불3- 가도 가도 내 못 가는 길, 혼불4- 단 한순간만이라도, 혼불5- 시김, 혼불 6- 무 (무속 무), 혼불 7- 조우(만남, encounter) 등.

 

대금 속에서 밖으로 퍼지는 공기는 콘서트홀 전체를 호흡했다

 

가야금과 해금을 솔로로 지명했던 혼불 시리즈 여섯 작품과는 달리, <혼불 7>은 대금이 합류했다. 만남이란 홀로 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중에서도 우연히 만나는 것, 운명처럼 만나는 것을 조우라고 한다. 쪼개진 대나무를 비유하여 조우 작품 속의 대금 연주에 혼불을 입양했다. 대금 연주가 이아람 교수는 죽을 통한 세 번의 바람 소리로 작품을 열었다. 대금은 주로 타악기와 합쳐지거나 헤어질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타악기와 대금의 조합은 역동적인 터치로 산수화를 그렸다. 이아람은 신과 사람 사이에서 중보적인 역할을 하는 제사장처럼 삶과 죽음 앞에 생성된 정령의 불을 염원하고 속죄제 번제를 드렸다. 대금 속에서 밖으로 퍼지는 공기는 콘서트홀 전체를 호흡했다. 작은 구멍 몇 개로 나라의 국난이 진정된다는 만파식적의 삼국유사가 청중들의 열기처럼 느껴진다.

 

2022.7월 2일 할레 콘서트홀, 혼불7, 대금 이아람과 Kammersymponie Berlin

 

 

 

만파식적과 유사하게 재앙을 물리쳤던 피리가 독일 동화에도 있다. 그림 형제의 „하멜른의 쥐잡이“ 또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다. 재앙과 역병을 음악으로 물리친다는 동서양의 설화나 동화는 어찌 보면 인간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음악이라고 증명하는 것이다. 밝고, 맑고, 아름답고, 길고, 청청하게 뽑아서 뻗는 높은 소리의 멜로디를 청성곡이라 하는데 특정 음을 길게 늘려서 뻗어나가는 이아람의 대나무 소리는 자연스럽고 설득력이 있어서 자연의 일부로 회귀하는 울음 같다. 

 

유난히 크고 뚜렷한 혼불이 푸른 불덩어리가 되어 날아간 뒤

 

대숲에서 나는 바람 소리, 일어나는 바람에 귀가 젖어 그 소리만으로도 날씨를 분별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자잘하고 맑은소리, 타지에서 불어와 지나가는 낯선 소리, 한숨 소리, 별의 무리가 우수수 대밭에 떨어지는 소리가 오케스트라의 비상과 함께 대나무가 쪼개진다. 유난히 크고 뚜렷한 혼불이 푸른 불덩어리가 되어 날아간 뒤, 청중은 감동하고 기뻐했다. 임준희의 조우와 120년 뒤 독일에서 연주된 대한 제국 애국가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 진정한 근원을 복원하는 대한민국 생명체 정신을 시리도록 강렬하게 염원했다. 세대, 역사, 현재, 과거, 대화, 만남, 시도, 동일, 전율, 자부, 감동 이런 키워드가 박수에서 뿜어졌다.

 

 

글: 음악평론가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 쾰른 대학교, 아헨 대학교 출강, 독일 쾰른 거주 ynhovon1@uni-koeln.de